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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버거 Sep 19. 2021

비를 좋아하시나요?

쉰, 삶은 여전하다


오후 세 시쯤의 유명 커피숍은 도떼기시장 같다. 입구를 들어서며 동서남북 구석자리부터 살핀다.
매장 안이 한눈에 들어오는 모퉁이 자리를 선호한다.
자리를 잡고 커피와 노트북 세팅까지 마치니 그제야 그득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CCTV 관점.

툭 트인, 넓고 높은 공간은 사람들의 소리로 금세 가득 찬다. 구별되지 않는 소리의 합은 소음이다.
쏟아지는 소나기를 우산 없이 맞는 기분.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 플레이 리스트 중 '집중'을 틀었다. 뉴에이지와 낮은 BPM의 하우스 뮤직 그리고 가벼운 클래식을 모아 놓은 폴더. 글 쓸 때 주로 듣는 커튼 같은 음악들.
소음은 음악으로 대체되고 사람들은 음소거 화면처럼 모습만 남는다. 그림만 남은 사람들을 배경 삼아 생각을 자막과 지문으로 입힌다.

'저 이는 영업을 하는구나', '저 테이블은 소개팅 같네', '흠....' 같은 생각들.
통유리창 안에서 내다보는 비 오는 날의 풍경 같다.
안전하고 편안하다.

나는 참 싫은데 다른 사람들은 너무 좋아하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궁금해진다.
'저는 비가 엄청나게 싫어요'라고 얘기하면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자기는 비가 너무 좋다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구질구질한 비가 왜 좋지?
알 듯한데, 구체적이지 않았다. 딱 잡히지 않는다. 흐릿.
몇몇에게 물어도 '그냥 좋잖아요' 같은 막연한 답만 돌아온다. 계속 흐릿. 공감 불가.
커피숍에서 소음으로 쏟아지는 말소리를 음악으로 차단하고서야 얼핏 알아챘다.
거리와 안전 아닐까? 비로부터, 소음으로부터.

삶이 고달프던 시절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사업이 엎어진 건 내게는 큰 사건이었고 당연하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비를 대하는 태도도 그중 하나였다.
폭망 이전에는 비에 대한 느낌을 특정하지 않고 살았다. 그냥 호불호가 때마다 달랐다. 여느 사람들처럼.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고부터 비가 싫었다. 다 떠나고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선 비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다.
빗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우산을 쓰거나 지붕이 있는 곳에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옷도 젖고 물건도 젖는다. 기분도 젖어 축축 눅눅해진다.
뽀송한 장소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 낭만일 텐데, 추진 옷으로 빗속에 있으면 피할 수 없는 차감움이니까.
그때부터였다. 비가 차츰 싫어진 게.

지금도 그렇게 비가 싫은가? 자문해봤다. 
그 정도는 아니다 라는 답이 속에서 올라온다.
내 상황이 그때와 많이 달라져서 그럴까?
노.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그러면?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해석한다.
내가 싫어한다고 내릴 비를 막을 방법은 없다.
싫다고 징징거려도 오던 비가 멈추않는다.

퍼부을 땐 잠시 일을 멈추면 된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된다.
그런다고 죽지 않는다.

그때도 그랬을 텐데. 그랬으면 됐을 텐데.
마음과 생각의 여유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걸 지금 안다.
멈춰봤자 몇 분에서 몇 시간이었을 것을. 그날 못하면 다음 날 했어도 됐을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은 초조함과 조바심. 그런다고 얼마나 빨라진다고.

자학 같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지경에 이르게 한 내가 미워서, 미워 죽겠어서.

피할 수 있지만 피하지 않고 젖으며 자기 연민의 덫에 빠지면서. 애먼 비에게 전가했던 건 아닐까.

나이가 들어 좋은 것 중 하나는 관대해진다는 거다.
그때 나와 지금 나 사이의 적당한 거리감.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의 폭.
내가 나를 버리면, 누가 나를 안아주나.




 




휴지통(2)              

비우기


글        : 수필버거

사진     : 이상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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