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공모전 알람이 왔다. 이번 공모전은 넉넉히 시간을 갖고 준비하자고 연초에 다짐을 했는데 또 코 앞에 닥쳐서 호들갑을 떨게 생겼다.
나란 사람의 이런 일관성이란. 이젠 놀랍지도 않다.
'쉰, 삶은 여전하다'는 주제는 정했고 글 숫자를 채워야 한다. 최소 10개는 써야 '브런치 북'을 발행하고 응모할 수 있다. 이제 달랑 4개 썼네.
쓴 것 중에 쓸만한 게 있을까 하고 브런치와 블로그를 뒤적였다.
찾으면서 읽은 글 몇 개가 눈에 거슬린다. 대체 이런 글을 왜 발행했을까 싶은 부끄러운 글이다.
글을 쓰면 한두 번은 읽고 고쳐 쓴다. 그때도 이 정도면 됐다고 판단을 했으니 발행 버튼을 눌렀을 게다.
내가 쓰고, 혼자 너무 좋아서 발행을 서둘렀던 특이한 기억도 몇 번은 있다.
지금은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그때는 왜 좋다고 생각했을까? 어렵던 쉽던 한 꼭지를 써냈다는 성취감이 있었겠고, 쓸 당시에 꽂혀있던 무언가가 착시를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겠다.
뭉뚱그리면 '자뻑의 순간' 같은 거.
자뻑은 (속되게) 자기가 잘났다고 믿거나 스스로에게 반하여 푹 빠져 있는 일이라 한다.
지금 50대다. 적잖은 나이다. 산 날이 살 날보다 많다.
못난 내 글을 읽으며 지난날의 부끄럽고 후회되는 장면도 고치거나 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다. 지난 시간은 고치지도 지우지도 못한다. 끌어안고 사는 부끄러움과 후회라는 놈은 약해지지만 가시지는 않는다.
지금은 외면하고 싶고 삭제하고 싶은 내 삶의 장면과 결정도 당시엔 최선이었다.
사업을 하던 직장 생활을 하던 실수와 실패가 목적 일리는 없다. 모두들 잘하려고, 잘 되려고 깊이 생각하고 고민한다.
장면과 결정 중엔 이거다 싶어서 쾌재를 부른 경우도 꽤 있다.
자뻑. 그랬다. 취했었다. 그땐. 그 생각에.
"가수는 얼마간의 '자뻑'이 있어야 해요."
가수 양 희은의 말이다. 공감한다. 가수가 노래를 발표하며 '이 곡은 버림받을 거야'라고 생각할까? 모두 자기 곡이 사랑받기를 원하고 사랑받을 거라고 믿으리라.
믿어야 한다. 자뻑은 자신감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믿는 마음. 취해야 취한다.
'가수'의 자리에 작가, 직장인, CEO를 대입해도 과히 다르지 않다.
삶에는 완벽한 순간도, 완전한 것도 없다.
뭐든 그렇다. 그 순간 그것이 최선이라면 내질러야 한다고 믿는다.
훗날 땅을 치고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했으면 내놔야 하고 저질러야 하지 않을까.
완전하게, 완벽하게 준비되면 하겠다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일 일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겪지 않고 성장할 수는 없다.
글을 훑어보며 '더 쓸걸.' 하고 생각했다. 부끄러운 글이라도 더 쌓았으면 좋았겠다. 그래도 뒷 글이 앞 글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게 보이니까. 부끄러워 죽을 지경인 글은 고치거나 삭제하면 된다. 그러나 쓴 모든 글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고치고 다듬고만 있으면 새 글은 언제 쓰나.
낯간지럽고 부족한 글도 내 성장의 발자취라고 생각하고 그냥 두기로 한다.
(사진 : 이상희 작가)
"책을 낸다고 하고서는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말도 안 되고 문장도 안 되고 더더욱이나 생각의 깊이란 게 너무도 보잘것없는 것이 수두룩하다.
뺄까 말까 하다가, 그냥 둔다. 어차피 지금 쓴 글들도 시간이 가면 지금처럼 낯간지러울 게 뻔하다.
나이가 들어가며 좋은 게 있다. 험한 말로는 뻔뻔스러움이요, 조금 포장을 하면 어떤 성과도 과오도 시간이 가면 다 별것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 중에서
자뻑이 나를 내딛게 한다. 자뻑이 삶을 풍부하게 하는 동력일 수 있다면, 뻔뻔함은 내 청춘에 대한 따뜻한 포옹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