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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버거 Oct 04. 2021

동사의 꿈

쉰, 삶은 여전하다

JYP 박 진영은 존경받는 사람이 꿈이라고 한다. 존경받다의 형용사형으로 삶의 지향을 묘사한다. 

(프로그램 '집사부일체' 중에서)

작가 은유는 작가라는 단어보다 글 쓰는 사람이 자신을 표현하기 더 적합하다고 한다. 글쓰기는 창작 행위보다 사는 행위에 가까워서 라고, 동사로 정체성과 나아갈 길을 표현한다. (쓰기의 말들 / 은유 저 중에서)

대통령, 장군, 의사, 판사, 변호사. 어릴 적 꿈을 묻는 어른들이 바라는 답이었다. 죄다 직업이고 명사다. 역할 수행의 방법은 다양하겠으나, 닫힌 느낌이다.
형용사나 동사로 꿈을 표현하니 갑자기 선택지가 확 늘어난다. 평생을 걸을 수 있는 무수한 길이 열리는 느낌.

나는 자동차가 신발이라고 생각한다. 관점과 가치관의 차이라서 누구와 비교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그저 다름일 뿐이니까.  
자동차를 보여주는 물건이 아니라 내가 움직이는 수단으로 본다.
그러면 목적지가 중요해지고, 선택하는 길 그리고 동승자가 중요해진다. 신발은 발이 불편하지 않고 다치지만 않으면 된다. 가닿을 곳은 다양하고 경유할 루트는 자유롭다. 일행과 즐거울 수 있다면 쉬엄쉬엄 가도 된다.  

여전히 필요성은 못 느끼지만 상위 클래스의 차를 살까 하는 생각을 요즘 가끔 했다.  
벤츠, BMW 같은 차. 못 살 것도 없지 싶다. 확 사버려?
아주 가끔 보지만, 나를 오래 아는 업계 사람들이 조심스레 질문할 때가 있다. 망한 지가 언젠데, 그이의 기억에 남아있는 마지막 장면이 나의 폭망일 경우가 그렇다. 아주 조심스럽게 '얼굴은 좋아 보입니다만, 이 코로나 시국에 좀 어떠세요?' 하고 묻는다. 코로나를 굳이 넣는 의도는 바로 알 수 있다. 내가 '아주 좋습니다'라고 답할 경우의 웃고 넘길 퇴로다.
이래서 저래서 괜찮고 이렇게 저렇게 잘해나갈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라고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는 나를 문득 깨달을 때, 내가 벤츠를 타고 왔으면 이런 질문과 답을 하고 있지 않을 텐데 하고 느낀다. 소지품 하나가 많은 것을 대변하기도 하니까.

구차한 긴 설명은 변명이기 십상이다. 무엇을 하거나 사고, 누구에게 설명을 길게 하노라면 합리화라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차를 바꾸면 가끔 보는 사람에게 하는 긴 설명은 벤츠로 대체하겠지만, 아내에겐 더 긴 변명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허세냐는 표정으로 한참을 쳐다볼 게 뻔하다. 무섭구로. 매를 벌긴 싫다.

사업을 시작할 때 '기회를 주는 사람'이 되고자 했었다. 물론 창대한 연매출과 직원수도 목표였지만.

행복할, 성공할, 웃을, 꿈꿀 기회를 열어주는 사장이 되고 싶었다. 나도 동사의, 형용사의 꿈이 있었던 기억이 났다. 나와 내 곁의 사람들이 다양한 기회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었다.
아직 유효할까. 오히려 실망과 상처를 주기도 했는데.

온전히 이루지 못한 꿈을 향한 넓은 도로를 낡은 내차로 시원스레 달리고 싶다.
벤츠 대신 밝은 낯빛과 넉넉한 표정으로 구구한 설명을 대체하면서.

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아니까. 그이들이 진정 궁금해서 묻는 것도 아니니까.
이 도로를 또 어떤 이와 함께 달릴까. 마음이 들썩인다. 폴짝폴짝.

여전히 유효하다. 내 꿈은.
  

사진 이상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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