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로도, 저 말로도 설득이 되지 않는 수감자에게 변호사는 지친 표정으로 말한다. 다시 자유를 찾고 싶으면 국선 변호사의 조력을 받으라고.
피식 웃으며 수감자가 묻는다.
당신은 자유로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질문이냐는 듯 예스!라고 변호사가 답한다. 몇 시에 출근하느냐, 점심시간은 몇 시냐, 나의 변론을 맡은 건 너의 선택이냐, 수감자의 질문이 이어진다. 대답을 하는 변호사의 어조는 점점 늘어지고 목소리는 가늘어지며 표정은 확신을 잃어간다.
옛날에 본 영화의 한 장면이다. 제목은 잊었고 딱 이 장면만 기억한다.
최소한의 해야 할 일만 했다. 더 했어도 됐을 텐데.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지만 딱 해야 할 만큼만, 일정이 헝클어지지 않을 만큼만 했다. 일이 뭐, 다 그렇지. 일이 좋아서, 재밌어서 하는 사람도 있나. 변명 같다.
퇴근 시간을 조금 당겨 회사를 나와 카페로 갔다. 출근하면 맨날 앉는 사무실의 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허구한 날 보는 익숙한 구조를 그만 보고 싶었다. 오늘이 월, 화, 수, 목을 지난 뒤의 금요일이라서 그랬을까.
커피숍으로 쉬러 간 건 아니다. 산책을 하다가, 일을 하다가, 운전을 하다가 떠오른 생각의 단서들을 최대한 되살려 기록으로 남기려 했다. 그리고 짧은 독서와 글쓰기를 하려 했다.
단편적인 기억만 있는 영화의 장면을 내가 작가란 생각으로 이어봤다. 수감자는 계속 질문한다. 변호사가 되기로 한 건 너의 결정인가,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가, 네가 원해서 어려운 공부 끝에 변호사가 됐지만 기대보다 행복하지 않다면 훌쩍 떠날 수 있는가. 변호사는 답이 궁하다. 다 그렇게 산다고 작게 입을 벌려 조그만 소리로 답한다. 수감자는 크게 웃는다.
이어폰 볼륨을 높이고 아이스 라테를 마셨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까. 멍하니 창 밖을 봤다. 딱히 초점을 맞출만한 대상을 찾지 못한 내 시선은 방황했다. 한 10분, 아니 20분쯤 흘렀다고 생각했다. 시계를 봤다. 채 오 분도 안 지났는데 벌써 마음이 불편하다.
전자책 아이콘을 클릭하고 이 책, 저 책을 열었다 닫았다 열었다 닫았다 했다. 같은 문장을 두 번, 세 번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책을 닫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낮에 떠오른 영화의 장면까지 겨우 쓰고 또 밖을 봤다. 노트북을 덮고 백팩을 쌌다.
집엔 아무도 없었다. 설거지를 했다. 내친김에 청소기도 돌렀다. 놀란 고양이를 달래며 소파에 앉아 오늘을 생각했다.
해내야 하는 일을 적당히 했고, 해야 하지만 늘 시작이 힘든 운동을 했고, 하고 싶은 만큼 하기 싫은 글을 썼다. 설거지와 청소도 했다.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자유라고 한다.
나는 자유로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