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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의미

by 수필버거

지금까지 나는 반응하는 글쓰기를 했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썼다. 안 떠오르면 안 썼다는 뜻이다.

쓴 글 중 비슷한 뉘앙스의 글을 (브런치) 매거진에 모으고 두루뭉술한 제목을 붙였다. 사실 같은 카테고리로 모았어도 남이 읽으면 맥락을 찾기가 어려웠을 게다. 그 글을 쓴, 내 눈에만 보이는 연관성은 있겠지만.

가을이 오고, 브런치에서 출간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알림을 받으면 그렇게 대충 모아놓은 글들을 일관성 있어 보이게 조금 고쳐 쓰고 급하게 몇 개 더 보태 써서 최소 응모 (글) 숫자를 채워 응모하고 떨어지고 그랬다. 참으로 보람 없는 짓, 눈 가리고 아옹하는 멘털 마스터베이션 같은 짓을 두 번 반복했다.

그래도 쓴다는 행위는 좋았다. 그게 보람이라면 보람일까. 그렇게 3년간 50개의 글을 드문드문 썼다.


2021년. 왔나 싶던 가을이 금방 떠나고 아침이 차가워지며 겨울이 왔다. 곧 해가 바뀐다. 이맘때면 늘 마음이 조급해진다. '올해는 도대체 뭘 했지?'와 '내년엔 뭔가 이루고 싶다.' 사이에 대롱거리는 시기다.

상을 받지 못해도, 돈이 되지 않아도 계속 글을 계속 쓰고 싶은 이 마음은 뭘까를 생각했다.

끝까지 가볼까? 기왕 쓸 거면 제대로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고, 그렇게 닿을 끝(?)도 궁금했다.


쓰는 것도 아니고 안 쓰는 것도 아닌 회색지대를 벗어날 경로를 그렸다.

첫 단계. 매일 쓰기까진 바라지 않지만 자주 쓰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그것이 첫 단계가 될 수밖에 없다. 쓰지 않으면 어떤 경로를 그리고 어떤 계획을 세워도 소용없다.


12월부터 2월까지 석 달간 '랜선 매일 쓰기 모임'에 가입하여 쓰고, 인증을 하며 익숙함을 얻었다. 내 속도와 분량을 확인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나에겐 이틀에 한 꼭지, 주당 3개의 글이 적당함을 알았다. 큰 소득이다.

대략 100일(실제론 90일) 했다 치고, 좀 속성이긴 하지만 그다음 단계인 책 쓰는 훈련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한 권 당 3개월씩, 반년 간 두 권을 쓰는 게 경로의 두 번째 단계다.


장과 절이 있는 얇은 책을 써보자고 마음먹었을 때, 쓸 주제가 네 개 있었다. 이건 아니야, 이건 나중에, 하며 추려서 두 개로 압축했고 그중 비교적 손쉬워 보이는 주제로 시작하기로 했다. 글쓰기에 손쉬운 주제 같은 건 없다를 곧 알게 됐지만.

브런치에 해당 주제에 대한 매거진부터 만들었다. 매거진 만들기는 금방 한다. 생성, 제목 달기만 하면 되니까. 이제 목차 만들기를 하고 첫 절부터 쓰면 된다. 쉬워 보였다. 책 쓰기는 설계도 혹은 지도가 필요하다고 들었다. 그 설계가 목차이고, 그래야 책의 흐름과 메시지가 일관성을 지닌단다. 맞는 말이다. 계획 없이 쓰다간 이제껏 쓰던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갈겨쓰고 덧붙여 쓰고 지워야 할 땐 종이에 연필로 쓰는 게 제격이다. 새 노트 한 권을 찾아 펼치고 절 제목 몇 개를 떠오르는 대로 썼다. 흠... 바로 지웠다. 단어를 바꾸고 순서를 흩트려서 다시 몇 개를 종이 위에 적었다. 또 지웠다. 생각하고 구상할 땐 많고 쉬워 보였는데, 머리가 텅 빈 느낌이다. 왜 이러지?

그러고 나서는 노트북을 열고 하얀 워드프로세서 화면 위에서 깜빡이는 커서만 노려보다가 덮고, 휴대폰 네이버 메모장 앱을 열어놓고선 뉴스만 읽다가 폰을 끄고, A4 용지를 펴놓고 약지, 중지, 검지 손가락 사이로 볼펜만 오르내리게 돌리다가 책상에서 일어나길 반복했다. 며칠 동안 이 짓만 했다.

이렇게 막막할 수가. 아, 글 한 개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구나.

왜 글을 '짓는다'라고 하는지가 막 와닿았다. 벌판에 맨손으로 집을 짓는 느낌이었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을 무렵엔 글 한 개 완성하는 것도 버거웠지만, 지난 삼 년간 50개를 쓰고 삼 개월간 집중적으로 자주 쓰는 연습을 하면서 글 1개 정도는 어떻게든 쓰니까, 나름 자신감을 갖고 시작했는데 이 사달이 났다. 책 쓰기를 시작하기로 한 날로부터 일주일 가량을 허망하게 흘려버렸다.


실력이 부족한 사람은 스스로를 더 높이 평가하고, 반대로 실력이 뛰어난 사람은 오히려 스스로 낮춰 평가하는 현상'을 일컬어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고 한다.

Unskilled and unaware of it :
how difficulties in recognizing one's own incompetence lead to inflated self-assessments (논문 제목)


이래선 안된다. 시작도 못하고 엎어지겠다는 경고음이 들리는 듯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책장과 밀리의 서재 앱을 뒤져서 읽었던 작법서와 글쓰기 책들을 다시 훑었다. 그래, 모를 땐 카피다. 좋은 말로는 벤치마킹 또는 분석이라고도 하지.

남들은 어떤 목차로 책을 지었나 참고서 보듯 살폈다. 잘 팔리는 책 두 권과 덜 유명하지만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는 책 세 권, 모두 다섯 권을 골라 목차를 옮겨 적었다. 그리고 이틀 동안 일하는 짬짬이 내 눈에 분량을 채우기 위한 사족 같은 소제목은 글자 위에 빨간 펜으로 가로 줄을 그으며 제거했다. 5권의 목차에서 남은 문장을 합쳤다. 채 10개가 안된다. 이게 핵심이구나. 우려낸 공통점을 뼈대 삼아 내 기준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한 항목을 덧붙였다. 바로바로 떠오르는 게 아니라서 이틀 걸렸다. 이제 대강의 얼개는 만들었다. 프린트를 하고 흐뭇한 기분으로 의자 등받이에 깊게 몸을 묻고 인쇄된 내용을 읽다가 화들짝 의자에서 일어났다. 광야 같은 종이 위에서 길을 잃었던 막막함에 이은 두 번째 벽을 만났다.


이 목차대로 쓰면, 똑같은 책 하나 보태는 꼴밖에 안된다. 기존의 작법서들과 뭐가 다른가. 그 사람들은 유명하다는 세일즈 포인트라도 있지. 이럴 거면 차라리 필사를 하는 게 낫지 않나 싶었다. 아무 의미 없는 글쓰기 놀이가 될 판이다. 큰일 났다. 일주일의 고민이 무용지물이 되겠다. 이 책은 조금이라도 다른 무엇이 되면 좋겠는데 방법이 안 보인다.


뛰어난 사업가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사업을 하면 안 되는 걸까? 중요한 건 ‘뛰어난 사업가가 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이 사업으로 내가 무엇을 얻을까’다 - < 책 한번 써봅시다, 장강명 지음 > 중에서


그래, 지금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거야. 독창적이고 뛰어난 책은 못 쓸 거란 걸 인지해야 한다.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이루지 못한 평범한 아저씨인 내가 처음으로 책이라 불릴만한 분량의 긴 글에 도전하는 과정의 기록이라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자. 쓰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나이테 같은 글을 쓰는 거야. 나만의 기록이지만 혹시 한 사람이라도 시간을 들여 읽었을 때 부끄럽지 않을 정도면 만족하자. 난생처음 긴 호흡의 글을 쓰는 경험과 그 고단한 여정을 마쳤을 때의 기쁨이 내가 얻을 그 무엇이다.

영화도, 드라마도, 소설도 결국은 성장 서사 아니던가.


글쓰기의 핵심 요소는 비슷하다. 작가마다 본인의 경험으로 걸러낸 해석이 다르게 남겠다. 핵심은 누구에게도 핵심이다. 해석과 경험이 개인적인 거지. 목차를 성장에 초점을 맞춰 새로 고쳐 썼다. 여기서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지만, 그만큼 이 부분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기획의도와 목차가 책 쓰기의 첫걸음이며 가장 중요하다. 다음 책을 쓸 때 명심하자.


내가 쓰면서 무엇을 경험하고 얻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이 책의 의미가 될 것이다.

의미를 짓고서야 쓸 힘을 얻었다. 역시 사람은 '의미의 인간'이다.


6개의 장과 52개의 절이 있는 지도를 들고 '책' 쓰기를 시작한다.

부디 길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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