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글쓰기 러닝메이트

by 수필버거
이 글은 '진짜 작가가 돼 보기로 했다'란 제목의 (브런치) 매거진 연재 글입니다. 준비한 목차대로 다 쓰면 같은 제목의 브런치 북으로 묶을 겁니다. (브런치 북은 훌륭한 전자책 툴입니다.) 종이책으로 출간은 못하더라도 카카오의 의도대로 '책'의 형태로 발행할 예정이고요. 그래서 앞으로 본 매거진을 '책'으로 칭합니다. 감히 '책'이라는 단어를 쓰는 저도 쑥스러우니, 여러분께서 읽으면서 '이까짓게 뭔 책이야'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저, 철없는 꿈을 꾸는 아저씨의 대리만족 역할극 정도로 너그러이 양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자격.

목차라는 기둥과 지붕을 세우고 잇기 위해 글쓰기 책들을 다시 읽으며 든 생각이다. 글은 읽혀야 생명을 얻는다. 책은 팔려야 출판사와 나무한테 덜 미안하다.

셀링 포인트(세일즈 포인트와 같은 말이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를 자연스레 떠올리며 내가 글을 읽을 때와 책을 살 때 무엇을 보는지 상기했다.

제목-목차-저자-첫 문장 순이다. 순서의 차이는 있겠지만, 남들도 과히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목차는 기획의도의 해부도이다. 주제 또는 메시지를 정했더라도, 목차를 쓰기 위해선 이 책을 내가 왜 쓰는가를 거듭거듭 고민해야 한다. 숙고 없이 덤볐다가 곤란을 겪은 내용을 앞 글에 썼다. 왜 이 책인가, 왜 쓰는가를 조곤조곤 알려주는 것이 목차임을 찐하게 배웠다.

제목이 눈에 띄면 목차를 훑는다. 마음에 들면 저자 소개글을 본다. 이런 책을 쓸 만한 사람인가를 보는 거다. 고개가 끄덕여지면 구매를 한다. 책은 내용과 저자가 셀링 포인트라 볼 수 있겠다.

많이 팔린 책들의 저자를 살피니 두 갈래로 나뉜다. 주관적인 분류다.

이미 유명한 사람이 저자인 경우. 성취가 있는 사람이 책을 쓴 경우다. 유시민과 스티븐 킹의 글쓰기 책이 그런 경우다.

유시민은 자신만만한 태도로 가르쳐준다. 그의 책 제목이 '글쓰기 특강'인 이유와 '유시민'이 제목에 들어간 이유는 그의 삶에서 찾을 수 있다. 민주화 운동가, 베스트셀러 작가, 정치인, 논객, 인플루언서, 평론가로 이미 일가를 이룬 사람. 탁탁 끊어 쓰는 문장은 거침없는 느낌을 준다. 지적 배경에 대한 자부심도 보인다. 이념이나 정치색에 대한 평가는 논외로 한다.

스티븐 킹도 그렇다. 글쓰기 책을 집필할 때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소설가였다.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팥으로 메주를 쑬 수 있다고 해도 믿을 판이다.

이 두 작가는 글쓰기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책의 저자들이다. 책을 쓰려는 사람이라면 책 제목을 들어봤거나 이미 샀을 확률이 높다. 나는 그저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며 읽었다. 내가 그들처럼 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했다.

두 번째는 유명해질 사람이 저자인 경우다. 글쓰기를 해볼까 하던 무렵과 브런치에 막 쓰기 시작했을 때 많은 글쓰기 책을 접했다. 글쓰기에 마음이 가 있는 상태라서 뉴스를 보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이런저런 글쓰기 책이 좋다는 말은 바로 안테나에 잡혔다. 다 읽진 못했지만 뒤적여 본 책은 많다. 주로 한국 작가의 책이다. 앞글에서 언급한 대로 목차의 핵심 내용은 거의 비슷하니 차별화가 되는 것은 저자이다.

소설가, 에디터, 방송작가, 교수, 기자, PD, 광고기획자, 카피라이터, 마케터... 말과 글을 다루는 직군이 태반이다. 저자의 직업과 이력을 보는 순간 설득이 된다. 아, 글을 잘 쓰는 사람이겠구나. 거기에 수상 이력이나 성공한 프로젝트명, 널리 알려진 광고 카피가 표지 위 띠지로 붙어 있으면 지갑을 열 확률이 높아진다. 책은 잘 팔릴 테고, 저자는 강연부터 인터뷰와 원고 의뢰까지 많은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서서히 유명해지는 선순환에 발을 들이게 된다.

자격을 생각한 이유다.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나는 저자의 자리에 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하다가 유튜브를 떠올렸고 브이로그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공부하는 모습을 긴 시간 찍어 올려서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유튜버를 안다. 그렇다면? 하는 마음에 검색을 해봤다. 편집된 영상이지만 또닥또닥 글을 쓰고, 쓰다가 때가 되면 밥 먹는 영상이 제법 있다. 조회수가 높진 않지만 어느 정도 나오긴 한다. 보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이미 이룬 저자, 이룰 가능성이 큰 이력의 저자가 쓴 책은 많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작가의 꿈을 꾸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브이로그처럼 기록한 책은 찾지 못했다. 나의 글이 서점에 걸릴 책으론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만개하지 못했어도 작가의 꿈을 꾸준히 꾸는 사람이 많은(많다고 믿는) 브런치에선 이런 글(책)의 자리도 있지 않을까.

‘39km까지 달리면 그동안 달린 게 아까워서라도 완주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무색할 정도로 25km 지점의 나는 당장 고통스럽고 괴로웠다. 그즈음 아버지도 서서히 지쳤는지, 처음보다 속도가 줄어들었고 어느새 내가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 완주를 결심했던 것 같다.

25km 이후부터 결승선까지 나보다는 러닝메이트를 위해 달렸다. 내가 그동안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힘을 냈으니, 이제는 내 등을 바라보며 뛸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걸 책임감이라 부르든 끈기라 부르든, 어쨌든 러닝메이트가 없었다면 롱런은커녕 도중에 포기하지 않았을까?
- < 글쓰기의 쓸모, 손현 지음 > 중에서

나는 브런치를 악스트나 chaeg, 월간 에세이 같은 문예잡지로 읽는다. 내 글의 구독자보다 관심작가가 몇 배로 많은 이유다. 그중 몇 분은 내 앞에 달리는 러너 같고 몇몇은 나란히 달리는 크루 같다. 물론 나 혼자 그들을 러닝 메이트로 여기지만.

앞서 뛰는 작가의 등을 보며 배우면서 분발심을 얻고 지치지 말자고 마음을 다진다. 옆을 보며 외롭지 않음을 느끼며 쓴다. 어쩌면 내 등을 바라보고 뛰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글은 혼자 쓴다. 독서도 혼자 한다. 작가와 독자는 책에서 만난다. 고독하게 쓰는 작가와 좋은 글을 갈망하는 독자는 책에서 만나 마지막 페이지까지 함께 뛰는 러닝메이트 같다.

쓰면서 점점 선연해진다. 내 글, 내 책도 작은 쓸모라도 있을 거라는 생각 혹은 바람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돈을 주지도 않지만 홀로 쓰는 이글이 여러분들의 글쓰기 러닝메이트였으면 좋겠다.

목차 쓰기부터 휘청한 어설픈 아저씨가 써나갈 이 부실한 기록이 읽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나 위안이 되길 바란다. 글쓰기를 글로 배운 사람이 실제로 책 한 권을 쓰려고 덤비면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성장하는지가 궁금한 분들이 읽어 주면 좋겠다.

누가 알겠는가. 이 책이 올해 브런치 북 출간 프로젝트에 덜컥 당선이 될지.

그러면 이 책은 해피엔딩의 동화 같은 책으로 바뀌겠다. 하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