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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쓰기의 시대는 갔다

by 수필버거

중학교 2학년 되던 해, 음력설을 하루 앞두고 아버지가 쓰러졌다.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다가 바로 중환자실로 옮겼다. 아버지는 지병인 당뇨를 오래 앓았다. 제수 음식에 반주 한 잔 하던 그 밤에 저혈당 쇼크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사업을 하던 아버지는 매일 술이었다. 주사 같은 건 없었다. 아무리 마셔도 늘 멀쩡하고 단정했다. 사소한 말실수조차 없었다. 70년대 대기업에 납품하는 하청업체 사장은 접대가 필수였다는 걸 내가 어른이 되고 알았다. 제법 큰 공장을 운영했으니 구청, 시청, 소방서, 경찰서 등 개발도상국 관청 공무원들과 꺾기와 리베이트가 관행이었던 그 시절 금융권 임원 상대 술자리도 잦았다고 들었다. 의사는 아버지 몸 안에 제대로 기능하는 장기가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집안 어른들은 아버지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 장남은 학교에 가지 말고 임종 대기를 하라고 했다. 두 달쯤 병원 생활을 했을 때, 의사가 퇴원 지시를 했고 아버지는 집에서 눈을 감았다. 나는 임종을 지킨 효심 깊은 아들이 됐다.


4월인가 5월에 새 학년 첫 등교를 하는 날, 나는 교무실부터 가야 했다. 내가 몇 반인지도 몰랐으니까. 알려주는 교실에 겸연쩍게 들어서니 일제히 나를 쳐다보던 70명이 넘는 아이들 중에서 아는 얼굴은 없었다. 교실 제일 뒤 빈자리에 앉았다. 짝 이름표를 보고 양현아 니 공부 잘하나, 물었다. 커다란 머리를 주억거리는 짝에게 전 과목 필기 노트를 빌려서 과목별로 근 한 달 동안 베껴 썼다. 이응이 유난히 큰 동글동글한 글씨체가 여자애들 것 같아서 짬짬이 놀렸다. 필사한 노트 덕에 공부는 뒤처지지 않았고 중간고사에서 1학년 때 정도의 성적을 받았다. 떳떳한 표정으로 내민 성적표를 보고 웃는 어머니의 환한 얼굴을 오랜만에 보았다.


초겨울에 접어들면 벌써 업무용 다이어리가 몇 개씩은 들어왔다. 삼성, 3M, 현대자동차, MBC의 업무용 다이어리. 그해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 돈 주고 양지사 최신 판이라도 샀다. 예년 같으면 반나절은 걸렸던 전화번호 옮겨 적는 수고는 휴대폰 덕에 줄었다. 1월 1일이란 큼직한 활자와 밭고랑 같은 라인이 선명한 첫 페이지를 펴고 첫 글자를 쓰는 순간엔 괜한 긴장감이 들었다. 첫날 첫 글자를 망치면 일 년 재수에 옴 붙을 것 같은 재수 없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펜 끝을 떨며 자음 하나를 겨우 안 틀리고 쓰면, 이번엔 힘 조절에 실패하기 일쑤였다. 너무 눌러써서 뒷장까지 글씨 자국이 베거나 너무 연하게 써서 평소 내 글씨체보다 흐릿하면 윗니로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에이 씨, 샤프로 쓸걸.


몇 해 전 회사 내방을 뒤집어엎는 정리를 한 적이 있다. 혼자 끙끙대며 커다란 책상을 옮기고 책장에 꽂힌 책을 다 끄집어내고 새로 분류해서 위치를 옮겨 꽂았다. 책장과 책상이 겹치는 아래쪽 사각지대에서 먼지 잔뜩 뒤집어쓴 다이어리 더미를 찾아냈다. 이삿짐 싸다가 옛날 앨범 뒤적이느라 시간 다 보내듯, 한 권씩 꺼내 걸래로 먼지를 닦아내고 펼쳐 보았다. 회의록, 일정표, 미팅 자료, 업체 상담 내용, 계획. 휘갈겨 쓴 메모도 있었고 각 잡고 책상에 앉아 쓴 일지인지 일기 같은 짧은 글도 있었다. 내 손으로 필기한 글자 한 자 한 자에는 당시의 기억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전전긍긍하던 마음, 손이 떨릴 만큼 설렜던 마음. 그때 그 사무실의 CCTV처럼 다이어리에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학기가 바뀌거나 학년이 올라가면, 아빠 회사에서 만든 노트 좀 주세요 했다. 그것도 한 녀석 당 몇 권이 고작이었다. 아이들이 차례로 대학에 들어가면 노트북을 사줬다. 태블릿도 꼭 필요하다니 장만. 이젠 내가 묻는다. 노트는 안 필요하나? 아니요, 괜찮아요. 그라믄 필기는 어디다 하노? 필요하면 태블릿에 쓰고 파일로 주고받고 그래요. 아... 알았다.


작년 여름, 이 연 작가(브런치 작가명 여름) 출간 기념회에 간 김에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들렀다. 너무 오랜만이었다. 십 년은 족히 된 것 같았다. 조도가 확 낮아져 있었다. 창백하게 쨍하던 백색 형광등 불빛은 은은한 노란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짙은 톤의 나무 서가와 넓고 긴 원목 탁자 형태의 진열대, 은근한 노랑 조명, 발소리를 빨아들이는 카펫 바닥. 츠타야에 온 건가, 했다. 책 코너와 핫트랙스, 문보장으로 나뉘어 있던 구획 경계는 흐릿해져 있었다. '문구' 하면 종이와 연필인데, 노트류는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필기구는 고가의 외국 브랜드가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전자제품과 액세서리, 패션 소품인 가죽 상품, 가방류들이 메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노트는 구색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종이와 연필로 상징되던 문구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느꼈다.


거래처와 미팅을 하면 누군가 한 명은 노트북을 꺼낸다. 젊은 직원은 태블릿을 탁자에 올리기도 한다. 크로버앱으로 녹음을 해도 회의록 문서로 금세 변환 할 수 있는 세상이다. 아이들도 선생의 수업을 녹화하거나, 칠판 사진을 찍으면 텍스트만 추출할 수 있다. 누구의 필사 노트를 빌려도 사진으로 찍어서 글자로 변환하면 끝. 이제 작가가 글 쓰는 장면을 떠올려도 노트북이 빠진 그림은 이상하다. 펜과 원고지는 엔틱 한 로고에나 어울리겠다.


필기는 수동(受動)의 상징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의 말을 받아 적고, 누가 쓴 내용을 옮겨 쓰고, 남의 문장을 베끼는 필사 행위.


모든 사람이 방송국을 차릴 수 있는 시대.

누구나 언론이 될 수단이 널려 있는 시대.

맘만 먹으면 누구라도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

기획을 돕는 도구가 수북한 시대.

바야흐로 개인 창작(創作)의 시대.


자신만의 고유의 생각을, 나만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나의 번뜩이는 창의(創意)를 잡아야 하는 시대고, 그래야만 살아남는 시대다.

날아가기 전에 스케치로 낚아채고 메모로 잡아 가둬야 한다.


상품 개발을 위해 오래 생각한 결론이다.


필기(筆記)의 시대는 갔다.

이젠, 메모의 시대다.


노트에 촘촘히 그어진 라인이 벽과 담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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