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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문방구는 다 어디 갔을까

by 수필버거

빛바랜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주인아저씨가 큰 아이에게 아는 체를 하며 환하게 반겼다. 소리 높여 인사하는 올망졸망 세 아이의 눈은 반짝이고 입꼬리는 흥분해서 분홍빛이 된 볼을 광대까지 밀어 올린다. 아무거나 고르고, 무엇이던 먹으란 내 말은 백 미터 출발선의 총소리였다. 교대로 내 손을 끌며 이거 이거 외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얼굴은 허허허 녹아내렸다.


이른 저녁을 먹고 심심하면 아들 셋을 데리고 큰 애가 다니는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 갔다. 첫째가 열 살 쯤일 때 종종 갔으니, 둘째는 일곱 살, 막내는 다섯 살이었다. 개구진 얼굴이 똑 닮은 머스마 셋이 든든한 물주 손 잡고 가게로 들어서면, 무료하게 앉아있던 문방구 사장 낯빛은 형광등 켜지듯 밝아졌다. 저녁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소스 듬뿍 바른 염통 꼬치, 설탕통에 돌돌 굴린 핫도그에 콜라 슬러시까지 먹고 마시며 문방구 매대를 샅샅이 훑고 다니는 아이들에게 이보다 더 신나는 장소가 있었을까.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 앞에는 문방구가 두 개 있었다, 우리 학교는 학생이 많지 않아 노트, 연습장, 필통, 샤프, 연필 같은 기본적인 문구와 학습 준비물 같은 것만 팔았다. 학교 파하고 큰길을 돌아 아이 둘이 겨우 교행 할 만한 좁은 골목을 통과하면 대구국민학교가 있었다. 한 학년 아이 수가 우리 학교 전교생만큼 많은 학교였고 교문 앞에는 커다란 문방구 예닐곱 개가 잇달아 있었다. 우리 학교 앞 문방구에 비해 크기도 지만 떡볶이부터 당면 만두 튀김, 멀건 미숫가루 냉차, 정체불명의 주스까지 어지간한 분식점 뺨치게 다양한 군것질 거리를 팔았다. 별이 그려진 동그란 종이 딱지나 종이 인형 놀이, 부품 대여섯 개짜리 단순한 플라스틱 조립식 장난감도 있었다. 주머니 속의 동전을 세가며 버스비만 남기고 탕진했다. 문방구 아줌마가 그 학교에 다니지도 않는 내 얼굴을 알아볼 만큼 자주 갔었다.


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2010년대만 해도 학교마다 문방구 한두 개는 남아있었다. 온갖 문구류가 가득한 도심의 대형 문구센터나 교보문고 문구코너에 비할 바 아니지만 나름의 역할이 있었다. 공책과 샤프만 사는 가게가 아니었다. 학원 가기 전에 자투리 시간을 보내고, 데리러 오는 엄마를 기다리기도 하는 공간. 단순한 게임기에 동전 넣고 쪼그리고 앉아 온정신을 쏟는 곳. 분식점과 문구점, 서점, 쉼터가 섞인 작은 복합 문화 공간이라 할 만했다. 집과 학교(원) 사이의 숨구멍. 내 어릴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업 준비물은 최저가 입찰로 일괄 구매해 학교에서 나눠준단다. 문방구 먹거리는 불량식품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고 그 자리는 골목마다 자리 잡은 편의점이 대체했다. 노트는 학기가 바뀔 때 마트에서 묶음으로 사거나 급한 필요는 다이소 천 원짜리로 해소한다. 온라인 쇼핑의 침투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겠다.


작년인가, 미장원에서 우리 집 삼 형제가 다닌 초등학교 입학생이 한 자리 숫자라는 말을 들었다. 머리를 맡기고 졸고 앉았다가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말을 거들까 입술을 딸막이다 이제 이 동네는 아이들이 너무 적다는데 생각이 미치고, 학교가 곧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어 애틋한 마음이 됐다. 초중고등학교 한두 개 없어지는 건 이제 뉴스도 아니다. 폐교 숫자는 몇백 개씩 묶은 통계로만 인용된다. 끌끌 혀 차는 안타까움의 대상일 뿐,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며칠 전 평일 오후에 그 초등학교 앞을 지나 보았다. 하나 남았던 문방구 유리창에는 노란 임대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학교 담벼락 끝 모퉁이 동네 슈퍼는 편의점이 돼 있었고, 상가 한 칸짜리 미술학원은 불이 꺼져 있었다. 애들의 힘찬 기합소리가 창으로 새 나오던 태권도장은 위치가 어디였는지 찾지도 못했다.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목소리와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운동장의 함성을 기대했던 학교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텅 빈 듯 고요했다. 잠시 차를 세우고 바라본 학교 운동장은 비스듬한 늦봄 햇살만 가득했다.


가격을 앞세운 진격의 다이소.

롱테일 구색과 로켓배송의 쿠팡.

먹거리의 편의점.

줄어든 아이들

학원과 게임 탓에 시간 없는 아이들.

노트와 볼펜을 대신하는 태블릿과 휴대폰, 노트북.

시대의 변화 속에서 그로기 상태로 숨만 깔딱이던 동네 문방구는 코로나 결정타에 절멸했다.

대형 문구 센터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다이소와 쿠팡의 직격탄에 생기를 잃고 시름시름 앓고 있다.


추억의 문방구는 정말 추억 속으로 퇴장하고 마는 걸까, 환골탈태의 진화를 할 수는 없는 걸까.

종이와 연필의 수요는 분명히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종이와 연필이 사라지지 않는 한 문방구는 어떤 형태로라도 존속을 할 것이고, 했으면 좋겠다.


전자책과 종이책의 동거처럼 어떤 돌파구를 만들 수는 없을까.

오래 생각하고 가설(假說)을 세웠다.

다음 글에 쓴다.


* 제목은 고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빌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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