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짚고 헤엄치기' 같은 '일'은 없다. 땅이 꺼지거나 물이 불기도 하는 게 사람살이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시작하면 가슴 쓸어내릴 일 없이 순탄할까. 완벽한 계획이란 말은 따뜻한 냉커피 같다. 계획이란 최대한 공들여 내 멋대로 그은 '선' 같은 거다. 휩쓸리고 떠내려 갈 때 원래의 내 위치라고 믿었던 데서 얼마나 앞으로, 옆으로 혹은 뒤로 밀려났는지 가늠케 해주는 기준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사업은 다소간 도박의 성질을 띄고 있다. '마침'과 '하필'이 난무하는 판이다. 구사일생, 간신히 성장 곡선 구간에 발을 디딘 토스뱅크처럼 그토록 어렵다는 신규 은행 면허 발급을 풀겠다는 정권이 마침 그때 들어서는 운이 따르기도 하고, 독서 기반 스타트업 트레바리처럼 대규모 투자 유치(2019년 12월) 직후 코로나가 발생해 그 자금으로 망하지 않고 버틴 운도 있고, 부동산 디벨로퍼 OTD 코퍼레이션처럼 아크 앤 북 서점부터 성수연방까지 승승장구하며 유니콘 기업으로까지 선정된 그때 하필 터진 코로나로 명줄만 겨우 붙어있는 처지로 내몰리는 운도 있다. 간 작은 사람은 경기(驚氣) 들기 딱 좋은 판이다.
젊은 시절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말을 참 싫어했다. '기칠운삼'이라야 한다고 핏대 세우고 떠들고 다닐 만큼 운보다는 경영자의 기량이 더 중요하다고 굳게 믿었었다. 이젠 아니다. 더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운. 중요하다. 그게 타이밍이든, 귀인이든. 바이러스든, 하다못해(?) 로또 당첨이라 하더라도.
어느 누가 코로나를 예측할 수 있었을까. 음모론자들과 언론에서 떠들듯 빌 게이츠는 미리 알았을까. 미리감치 '경고'를 했을 수는 있다. 게이츠의 말은 예언이 아니다. 세계 인구가 늘어나는 속도와 수를 기반으로 한 미래 예상 시나리오 중 하나일 따름이다. 일본의 지질학적 위치와 역사 데이터를 근거로 큰 지진을 예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언젠가 한 번은 터질 스페인 독감 같은 치명적 전염병이 그해에 터진 것뿐이다. 큰 대출을 끼고 차렸을 게 분명한 대형 명륜진사갈비를 2019년 11월 오픈한 우리 동네 모 사장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무능한 사람일까. 바이러스가 퍼지던 초기에 얼른 가게를 정리하지 않고 빚만 늘린 판단력 모자라는 경영자일까. 극단적인 예지만,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곳이 비즈니스 판이다.
얼마 남지 않은 전재산을 걸고 마지막 베팅을 하는 심정이었다. 달달 긁어모은 한 줌의 내 재산은 '시간'이다. 범인(凡人)의 인식으로 육십 세는 노년의 시작이다. 60대 최수종과 황신혜, 최화정의 매스컴 기사는 거의 항상 동안(童顔)이 주제다. 뭔 옷을 입어도, 어떤 프로그램에 캐스팅이 돼도 '환갑 나이에도 여전히 어쩌고' 하는 제목이 상례다. 사람의 인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업과, 운과, 판과 씨름하다 보면 세월 금방 간다. '어, 어'하면 몇 년 후딱이다. 그러면 내 나이 앞자리도 6자로 바뀌는 날이 올 것이다. 원하는 결과를 손에 쥐고 맞는 환갑과 그렇지 못한 환갑은 하늘과 땅 차이다. 궤도 수정하고 자시고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두려움은 공황으로 나타났다.
봄 내내 불안에 시달렸다. 따지고 보면 별 것 아닌 일이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일도 아니고, 대책회의 잘못된다고 죽을 일도 아니다. 오프 진출을 시도하고 확장하는 대략 1~2년의 시간을 까먹는 일일 뿐인데, 그게 그렇게 무서웠다. 예기치 못한 우연들이 발목 잡는 것이 두려웠고, 이 산 아닌가베 하고 내려와 다시 다른 산을 오를 시간이 없다는 것이 두려웠다. 내가 내린 결정이, 내가 만든 계획이, 예전의 커다란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무의식이 지어낸 허상은 아닐까. 또 한 번 헛꿈에 남은 시간 다 털어 넣고 허비하게 되는 건 아닌가. 스스로를 의심하며 잠이 깨고, 차가운 커피와 담배 한 대로 다시 확신의 불씨를 겨우 불어 살리고 출근했다.
온라인 모임으로 사람을 모으는 시기는 심적 부담이 작았다. 이백 명이 넘는 회원이 모이면서, 작게 나눠 담은 내 꿈의 소분(小分) 통 하나는 맛나게 나눠 먹은 셈이다. 여기서 멈춘다고, 지금 상태로 만족한대도 탓할 사람 없고 잃을 것도 없다. 이 정도의 회원이 있는 모임을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 작은 보람도 남는다. 그런데 초봄부터 여름 초입까지 공황장애 증상이 도졌다. 조증과 울증이 번갈아 나타나고 불면의 밤이 늘었다. 우울이 심할 때는 나 없는 세상까지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 자신에게 놀라기도 했다. 뭐든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설렘과 불안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내 증상은 내가 생각해도 과했다. 내 마음에는 아주 작은 불안조차 곧장 공황장애로 달려가는 아우토반이 뚫려있는 것 같았다. 그 길로 얼마나 뻔질나게 다녔으면 이만큼 탄탄대로일까 싶었다.
왕래가 잦은 길은 번듯한 대로(大路)가 되고, 오가는 이 드문 길은 잡초 무성한 오솔길이 된다. 사람 마음에도 넓고 좁은 길이 여러 갈래 나있다. 어떤 길이 넓은지가 내가 살아온 삶이다. 받아들이자.
불안을 회피하는 심정으로 미루고, 간혹 피치 못할 상황으로 미뤄지던 오프 진출은 봄과 여름이 겹치던 무렵에 이뤄졌다. 구두 약속으로 샵인샵 입점을 예약한 업체는 여섯 군데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다음 또 그다음 입점의 디딤돌이 될지, 스노볼 효과가 생길지 고심했다. 딱히 더 보태고 뺄 것도 없는 준비 상태를 재점검한답시고 시간만 축내고 있었지만, 실은 불안 때문에 차일피일하고 있는 것임을 나 자신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지경에 내몰려 첫 입점을 하고서야 공황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저지르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한겨울 계곡물 입수처럼, 눈 질끈 감고 뛰어들면 성취감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과 비슷하다.
회광반조(回光返照)란 (슬픈) 사자성어가 있다. 네이버 사전에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1.「해가 지기 직전(直前)에 잠깐 하늘이 밝아진다.」는 뜻으로,
2. 머지않아 멸망(滅亡)하지만 한때나마 그 기세(氣勢)가 왕성(旺盛)함.
3. 죽기 직전(直前)에 잠깐 기운(氣運)을 돌이킴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이런들 어떠랴, 저런들 어떠랴. 비록 잠깐 타오르다 피식 꺼진다 해도, 해보기나 할걸 후회하는 삶보다는 낫지 않겠나.
에라 모르겠다.
첫 입점과 두 번째 입점까지는 근 한 달의 간격이 생겼다.
역시나, 세상에 쉬운 일 없다.
계획은 희망 설계도일 뿐이다.
또 실망하고 또 고민하고 또 뚫고 나가는 이야기는 다음 글에 이어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