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익~'
잘 달궈진 불판에 막창을 쭉쭉 깐다. 두툼하게 썰어놓은 감자도 몇 점 얹고. 빨리 익는 대패 삼겹살은 불판 둘레에 앉힌다. 저녁 7시 반에 시작된 동호회 모임을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두 시간 이상 버텼으니 허기가 진다. 목도 칼칼하고. 둘러앉은 우리들은 먼저 맥주에 소주 약간 섞은 컵을 단숨에 들이켠다. 약간의 뒷담화를 양념처럼 버무린 모임 얘기로 가볍게 술자리를 시작한다.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마음 맞는 몇몇의 뒤풀이. 창가 쪽 우리 테이블 옆의 큰 창이 있다. 환기 겸 창문을 열었다. 비가 와서겠지? 7월 밤 같지 않은 시원한 공기가 상쾌하다.
편안한 술자리에선 슬쩍 무장해제가 된다. 각자 자기 얘기를 주섬주섬 꺼낸다. '아빠" 이야기가 나왔다. 아버지 말고 아빠. 많이 다르다. 한 친구와 또 다른 친구가 각각 자신의 아빠 이야기를 한다. 무슨 얘기로 촉발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맞은편에 앉은 후배가 본인의 아빠 이야기를 한다. 나이차 이런 거 이제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 나이라 친구라고 내 멋대로 생각을 한다. 후배의 배려 깊고 사려 깊은 아빠와의 따뜻한 추억들을 들었다. 치장도 없고 과장도 없다. 담백하고 따뜻하다.
이 친구를 처음 봤을 때가 기억난다. 미소 때문이다. 원래 웃는 얼굴인지 훈련이 된 건지 아니면 본인이 노력을 했는지 아무튼 미소가 아주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 후로도 이런저런 모임에서 몇 번 보면서 감탄을 한다. 늘 한결같은 미소. '아마, 훈련일 거야...' 혼자 생각했다. 코 앞에 벼락이 떨어져도 그 미소를 유지하며 차분히 대처할 것 같은 안정적인 태도가 인상적인 사람. 타인의 시선을 크게 의식치 않고 자기 할 말과 행동을 뚝딱뚝딱, 거침없이 하는 사람. 묘한 부조화. 내 느낌이었다. 독특한 매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S야. 너를 보면서 약간 신기하게 생각했던 게 오늘 니 얘기 들으며 이해된다." 내가 말했다.
"뭐가요?" 예의 그 미소를 지으며 후배가 묻는다.
"니 그 단단함은 아빠의 선물 같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도 아빠와의 추억을 주섬주섬 끄집어낸다. 나이차 많은 오빠들 속에 막내딸로서 아빠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추억들과 장면들을 말한다. 이 친구는 나 보다 두 살 작은 여자 사람 H이다. 역시 친구라고 내 멋대로 칭한다. 당당하고 거침없다. 무엇보다도 참 밝은 사람이다. 이 친구가 자리에 끼면 시끌벅적, 하하호호가 된다.
이 둘은 결이 다른 사람들인데, 내가 받는 느낌은 닮았다.
뭐가 비슷할까?
아이에게 부모는 온 우주와 같다고 한다. 아이가 지지받는 느낌, 사랑받는 느낌, 보호받는 느낌을 가지며 쭉 성장을 하는 일은 생각보다 흔치 않다. 안전한 환경은 스스로를 중요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한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지간한 바람엔 흔들리지 않는다. 유년기와 성장기를 아주 잘 통과한 사람들을 만나면 단단하지만 부드럽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친구들처럼. 아직 깊이 알지 못해서 생긴 예단일 수도 있지만. 이런 사람은 단단한 무엇 위에 서있는 듯 보인다. 살면서 만난 '잘 자란 사람'의 공통점이다. 쉽게 흔들리지 않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기복이 작다.
자신이 단단하니 타인에게 너그럽다.
내 아이들은 잘 자랐을까? 단단한 받침 위에 서 있을까? '나는 어떻게 키웠지?' 생각했다.
가족은 CCTV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감시를 목적으로 한 카메라라는 뜻은 아니다. 무의식 중에도 서로를 24시간 보게 된다는 뜻이다. 부부는 서로 살피는 것일 수 있지만, 아이는 다르다. 보면서 흡수한다. 부모의 생각과 행동이 아이에게 스며든다.
내 아이들이 보고 배우기를 바란 것은 두 가지이다. 비교적 책을 자주 오래 붙들고 있는 내 모습과 운동을 꽤 챙기는 내 모습. 그 외의 내가 사는 모습은 아무리 의도하고 기획해도, CCTV 앞에서 평생 연기를 하긴 힘들다. 기자불립이라 했으니.
알아서 보고 알아서 흡수했겠지. 좋은 모습만이길 바라지만, 알 수 없다.
이 녀석들이 운동은 좋아한다. 내가 잼병인 구기 운동도 곧잘 하고 즐긴다. 그런데, 책 읽는 습관은..... 아니다. 내가 잔소리도 더러 했지만, 잘 안 된다. 훗날 지들이 필요할 때 읽겠지. 뭐, 뜻대로 다 되기야 하나.
아이들은 초등학교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걱정 없었고, 집안 공기 편안했다고. 유년기와 성장기를 잘 통과한 것 같다. 제법 단단하다. 내가 영 못 살지는 않았나 보다.
단단하고 너그러운, 여백과 여운이 있는 멋진 사람으로 아이들이 자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