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사촌 동생은 돈을 빌려주면 얼마나 버틸 수 있냐고 물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사실대로 대답했다.
"한 달 반 정도.... 그렇지만...."
3살 어리지만 어느새 40대 초반에 접어든 동생은 내 말을 그만 들어도 다 알겠다는 듯이 자르고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형수... 미안한 얘기지만 몇 년 고생할 각오 하세요. 그리고 앞으로... 당분간 형 전화는 안 받을 거예요. 형수 전화는 받을게요. 많이 힘드시면 연락하세요."
며칠 동안 전화를 받지 않던 동생과 겨우 연락이 닿아서 대구에서 인천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충혈된 눈으로 동생을 만나고 오겠다며 집을 나서는 내가 불안해 보였던지 아내가 따라나섰다.
아내 친구 집에 들러서 여비로 쓸 20만 원을 빌렸고, 둘이 교대로 운전을 했다.
하늘이 흐려서 벌써 해거름 한 늦은 오후.
기분 탓까지 겹쳐서 낡은 호텔 커피숍 통유리를 통해 보이던 회색빛 서해바다는 스산했다.
아직 낮이었지만 내 용건을 뻔히 짐작하는 동생은 술을 시켰다.
마셔도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긴 대화를, 아니 일방적인 내 말을 쏟아냈고 동생은 거절을 했다.
아내에게 각오하라는 말을 하고 동생은 이백만 원을 줬다.
돌아갈 기름 값하고 조카들 고기라도 사 먹이라면서.
그날 밤 집에 도착하고 소주 한 병을 마셨다. 그리고 잤다. 죽은 듯이 잤다.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몇 년을 눈만 뜨면 돈을 구하고 이자를 막으며 지냈다.
그게 끝이 났다. 스스로 끝내지 못한 일이 그렇게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을 치는 일도, 까무룩 하다가 정신을 차리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일도, 식은땀으로 베개가 푹 젖는 일도 이제는 없을 게다.
미안하다. 식구들에게도, 직원들에게도, 거래처에도, 은행에도... 미안하지 않은 대상이 없다.
폐인처럼 며칠을 보냈다. 자고 깨고 한숨 쉬고 아주 가끔 울었다.
후회는 파괴적인 감정이다. 확정된 과거를 돌아보며 드는 감정이라 처리할 방법이 없다. 피할 도리도 없다.
껴안고 삭힐 수밖에. 아프고 또 아프고, 쓰리고 또 쓰렸다.
한동안 내게 말을 거는 가족은 없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으랴.
나로 인한, 나의 실패로 인한 고통을 각자 오롯이 받고 견디고 있었다.
생활비를 주지 못했고, 월급을 주지 못했고, 이자를 내지 않았고, 납품을 하지 못했고, 결제를 중단했다.
전화가 빗발쳤다. 몇 년 전부터 벨소리에 놀라는 게 힘들어서 진동으로 해놓은 휴대폰은 온종일 쉬지 않고 징징 거린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방법을 찾겠습니다.
일과다.
월세가 밀려 보증금도 다 까먹은 텅 빈 공장 사무실에서 사과하고, 후회하면서 지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들은 무겁다. 기약도 없고 희망도 없다. 끝이 안보이던 시간은 겨우 끝이 났다.
그리고 미안하고 또 미안한 시간을 견뎠다. 계속 견디기만 해서 나아갈 길이 생길까?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방법도, 알고자 하는 생각도 없었다.
성난 목소리의 전화도 잦아들 무렵.
그즈음 내가 먹고 자고 하던 사무실로 아내가 찾아왔다.
"인자 우짤 끼고?" 하고 묻는다.
"글쎄...."
나는 답이 궁하다. 계획이 없으니까.
잠시 서로 말이 없다.
"그래도...." 아내가 말을 잇는다.
"밉지만, 내가 옆에 남으께."
아내의 말에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사업에 실패한 주변 사람을 많이 보았다. 그중 많은 이들이 이혼을 한다. 위장이혼이나 별거로 시작하지만 그 끝은 진짜 끝인 경우가 많다.
"고맙다.... 근데 우째...?"
겨우 입을 뗐다.
"아직도 밉고 한심하고 화나고... 그렇다. 그래도 당신은.... 지금까지 아빠로서는 백점이었다. 그래서.... 애들 봐서..."
아내의 말이었다.
아내가 돌아가고 내내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밤이 깊어서야 마음이 딸깍하고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내가 좋은 아빠였구나. 아. 그랬구나.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
그 늦은 밤에 집으로 가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큰 아들과 이야기를 했다.
아빠가 사업실패를 했다고, 이 집에서도 곧 이사를 나가야 한다고, 아주 작은 집으로 가게 될 거라고, 생활이 조금 힘들어질 거라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묵묵히 듣는다. 그리고 알겠다고 한다.
중학교에 들어가는 둘째 아들과 초등학생인 막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 보겠다고.
곁에 남아줘서 고맙다고.
다음 날 아침부터 바빠졌다.
잠잠해진 휴대폰을 들고 내가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폐를 끼친 업체 사장님들껜 죽을죄를 지었다고 하고 그래도 잠시 기다려 달라고 부탁을 했다.
다시 시작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격려하는 사람은 적었고, 욕하는 사람은 많았다.
오롯이 받았다. 내 탓 아니던가. 내 잘못 아니던가.
하루 종일 시달렸다.
저녁 무렵 한숨 돌리며 담배를 물었다.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들이키는데 몇 년 만에 달았다.
동생의 거절은 진짜 끝이 아니었다.
그 날 내가 마침내 끝을 냈다.
그렇게 내 인생의 한 시절이 진정 끝이 났다.
이튿날부터 열흘 동안 도서관으로 출근을 했다.
궁리를 거듭하고 계획서를 쓰고 제안서를 썼다. 내 브랜드를 포기하고 OEM으로 방향을 틀었다.
큰 유통업체 한 군데에서 오케이 사인을 받았고 공급처에서는 여신을 다시 열어주었다.
작은 매출과 꺾어진 이익이지만 다시 시작을 했다.
그리고 20kg들이 쌀을 살 수 있었고, 차 기름을 만원 어치씩 넣을 수 있었다.
진정한 끝은 내가 맺는 것이다.
내가 결심을 하고 내가 마무리를 해야 했다.
새로운 시작도 스스로 해야 한다.
결심과 시작은 무겁고 어렵다.
아내의 말 한마디가 스스로 부정하며 무너지고 있던 나를 받쳤다.
다 잘 못 하고 산 건 아니었구나 싶었다.
가족이 옆에 있는데, 살아야 하는데 못할 것은 없다.
아내의 웃는 얼굴을 다시 보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