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관조

당신 인생의 이야기, SF #2. 어바웃 타임

by 수필버거

모든 배우의 미소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보는 이 조차 예쁜 미소를 짓게 하는 사랑스러운 영화입니다.


제목대로 인생의 바탕인 시간이 주제이고,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SF적 설정입니다.

서브 장르는 '타임 리프'입니다. 과거나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본인의 의지로 다녀올 수 있습니다.

부계로만 유전이 되는 시간여행 능력이지요.


시간을 다루는 SF 물은 흔히 `선택`을 이야기합니다. 선택은 필연적으로 결과를 낳지요.

한참 시간이 지나고 보면 일희일비했던 그 결과도 더 큰 과정 중에 일부라는 걸 알게 됩니다만.

싸이의 노래처럼 `어땠을까"에 기반한 장치입니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이 많이 나아졌을 거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갖지만, 현실은 점점 꼬이거나 미궁으로 빠지는 경우를 많이 다룹니다.

물론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지요. 관객들이 원하니까.


사람의 감정 중에서 가장 자기 파괴적인 것은 `후회`라고 생각합니다.

미어지고 찢어지고 피눈물이 나지만, 돌이킬 수 없는.

그래서 시간 소재의 SF물이 그리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변주되나 봐요.


플롯은 전형적인 소년 성장기입니다.

한 소년이 성장을 하여 나의 뿌리이고 신화이며, 동시에 극복의 대상인 아버지를 떠나고, 보내는.

그리고 비로소 어른이 되는 이야기.


저는 영화에서 두 가지를 보았습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선택`이고 나머지 하나는 `관조`입니다.


영화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주인공 팀(남자 주인공/도널 굴리슨 분)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인생의 빛나는 초입에 평생을 함께 하고픈 여인을 만납니다.

그녀의 관심을 얻기 위해 타임 리프를 거듭하며 그녀에 취향을 외워며 반복해서 다가가는 팀.

그리고 점점 마음의 문을 여는 메리(여자 주인공/레이철 맥아담스 분).

시간을 되돌리고 또 돌리며 '선택'을 바꾸고 또 바꿉니다.

마침내 그녀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합니다.


폭우 속의 결혼식으로 영화는 클라이맥스에 이릅니다.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 재난 같은 폭우가 쏟아지지만, 영화는 유쾌한 관점의 편집으로 보여줍니다.

축제지요. 상징적입니다. 폭우와 결혼식의 조합도 어떻게 보느냐와 받아들이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는.


암에 걸린 아버지는 더 이상 사랑하는 아들 곁에 있을 수 없음을 알게 되고, 시간여행 능력의 마지막 비밀을 이야기해 줍니다.

나는 이 능력을 이렇게 사용하였다고 말하며, 너는 무엇을 위해 쓸 것인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아버지의 비밀처럼 하루를 두 번 살아봅니다.

보통 우리는 마구잡이로 닥치는 듯 보이는 상황에 대해, 생각에 기반한 행동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조건반사 같은 반응을 하기 십상입니다.

조마조마, 우왕좌왕. 번잡하고 피곤한 하루라고 느낍니다.


결과를 이미 아는 그 하루를 다시 한번 살 때 우리는 어떻게 변할까요?

이게 어떻게 될까, 저게 원하는 결말로 이어질까 하는 조바심을 지우고 다시 그 상황을 맞아봅니다.

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말하는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을까요.

순간순간 당황하지 않고 넓게 깊게 보는 담담함이 생기겠지요.

점에 연연하지 않고 선과 면을 보게 될 거라고, 영화는 얘기합니다.


다시 하루를 살면서 팀은 감정의 일렁임에서 한걸음 비껴 나 상황을 봅니다.

감정의 폭풍이 사그라드니 관조를 하게 됩니다.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고 그 순간의 맛을 비로소 음미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타임 리프 능력 사용에 제약이 생깁니다.

출생 전의 시간대로는 가지 못합니다.

억지로 가면, 아기가 랜덤으로 바뀝니다.

팀은 마지막으로 아빠를 만나고 작별을 합니다.

다운로드.jfif

이제 팀은 그 능력이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충분히 지금에 충실할 수 있는 힘을 가졌습니다.

성장을 한 것이지요. 어른이 되었습니다.


작든 크든, 성공이나 실패를 겪으며, 내가 처한 상황을 냉철하게 보기가 참 어렵습니다.

마약 같은 환희나 지옥 같은 절망이 파도를 치기에 정신을 차리기가 쉽쟎습니다.

그때의 선택의 무게에 짓눌리게 됩니다. 관조나 객관화는 언감생심이지요.


나를 객관화하고 먼 산 바라보듯이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성장이겠지요.


현실을 차분히 바라보기는 몹시 어렵지만, 그런 순간은 문득 옵니다.

언제인지는 모릅니다.

사람마다 맞춤복처럼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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