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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슴에는 무슨 꽃이 펴 가는가.】

『1』 《시는 바람인지 꽃인지》

시는 반응의 예술이라고 한다.

[대중문화평론가 이승섭시인]

또한 시는 시대가 변할수록 시는 인간의 마음을 정화 시켜주며 자정할 수 있게 하며 감성의 물상을 포착하게 하며 자정 능력을 높게 해준다는 것이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인간사 모두가 대상에 반응하는 인간의 특성과 맞물리고 있음을 상기하면 시에 어떤 반응이 나오는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닌가.

더구나  감동을 주요임무로 하는 시에 바람의 충격을 자극하지 못한다면 그 시인의 임무는 이미 도태된 운명을 예고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무심하게 않아있는 산 속 나무와 바위를 예를 들기로 하자

사람이 않아 쉬는 고마움에 감성을 나타낼 것이고 어떤 사람은 형상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아름다움에 심취할 것이다.



이 둘의 경우에서 어느 것이 가치의 개념이라는 단언을 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다.

그러나 예술은 전자보다는 후자 쪽에 고귀성을 부여한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은 상상력의 무한 에너지를 발휘하는 또다른 속성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자에 안식을 취한다면 그 또한 생활의 활력을 충전하는 의미 역시 무시할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시를 읽는 마음은 수면상태의 상상력을 갖는 일이고 이로부터 삶의 건강을

충족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때 한편의 시에서 받는 바람은 거대한 에너지를 충전하는 계기로 인식될 것이다.

물론 감흥이 없는 사람에게는 어떤 미적 대상도 무의미하다는 것 일게다.

미적 인식이 깨어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적어도 문화 의식을 가졌는가. 아닌가는 삶의 질과 상관이 있기 때문이다.

시는 문화의 중심축인 인간 정신의 깨어 있음을 측도하는 예술이기 때문인 것이다.

시를 읽으면 가슴에서 바람을 일으킨다. 멋진 시를 읽으면 행복한 감흥이 절로 솟구치고 상상력의 무한 여행을 떠나는 길로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위를 바위로 바라보는 사람과 상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과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시는 좋아하고 가슴에 담아야 한다. 이때로부터 마음의 눈이 떠지고 넓은 세계의 지평이

열리기 때문이다. 단순히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밑에 있는 고임을 꺼내는 노력이 있다면

시는 어느 날 향기 있는 꽃처럼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시란 언제나 그렇다

위의 글은 순전히 내 개인적으로 배우고 터득한 그리고 사 사를 받은 스승에게 배웠다고 하겠다.


『2』 김신정 < 바위 꽃이끼를 보니 >  


시는 늘 창작의 감성으로 바라보아야 감동을 받고 상상을 하게 되면 교훈은 어느 순간 에피그람(풍자시)이 되어 정신 내부에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다.

하여 시의 역할은 사람에 따라 반응의 형태는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김신정의 꽃은 인생을 말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위에 핀 꽃 화려하게 살아나는

   환한 봄 햇살 한 줌 초록으로 다가서는

   늦은 봄

   비 온 뒤에

   이끼 꽃이 피웠다네.


   처음 볼 때는 녹조 낀 초록이

   봄비 오는 사이 청록색으로 빚나니

   뿌연 숲 헤집고 간 자연은

   또 인상을 찌푸린다.


   관조하는 인생이 어쩌면 인간이라

   어느새 주름진 살결이

   나이테 같아

   갈일만 남았네.


                     <김신정> 《바위 꽃이끼를 보니》


3연 중 2연은 3연을 말하기 위해 비유인 것이다. 늦은 봄에 바위에 낀 이끼가 꽃으로 변하는 아름다움의 표현이 주름살로 바뀌고 다시 그 조락의 이름을 마주할 때면 즉 우듬지 이끼의 끝이 주름살로 변하는 인생의 과정을 그리고 삶의 아림을 그리는 시에서 바위의 이끼를 축도로 바라보는 데서 많은 의미를 느낀다.


『3』 이정석 <작약 꽃>


시인이 보는 입장에서 어떤 사물이던지 고정된 것은 없는 것이다. 같은 정물이라 해도 시간과 때에 따라 변하고 말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시인 2명이 한 사물을 보고 시를 그리라 했는데 완전히 다른 시향을 보였다. 똑같이 한 사물을 보았다고 해서 글이 같을수 는 없다는 것이다. 즉 똑같은 시인이 똑같은 꽃을 볼지라도 어떤 시인은 동적인 느낌을 자극하고 어떤 시인은 고정된 시를 그려낸다. 그래서 시인은 이런 감수성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이정석의 작약 꽃에 대한 비유는 경험으로 미화해 보련다.



   깊은 산 속에 외로이 않아서도

   언제나 아름다운 것은

   삶이라고

   웃음 짓는 네 모습

   너무도 아름다워

   너에게 다가가

   꽃을 안고 싶다

   사나흘 후면 사라진다 해도

   서럽지 않게

   사랑하고 싶다.

   작약 꽃


                     <이정석> 《작약 꽃》


이정석시인은 외로운 가운데에서도 꽃을 사랑하고 싶다는 아름다움의 비유로 결부시키는 은유야말로 상상의 창작을 배울 수 있게 한다. 특별한 명칭이 아닌 지극히 일반적인 특성을 사랑으로의 의미가 외로운 상황 속에서도 아름다움이 보인다는 것에 방점을 찍고 싶다.

순수한 꽃의 사랑을 접목 시키는 비유가 이정석 시인에게는 메시지가 강하기보다는 사라진다 해도 사랑하고 싶다는 직유에서 더욱 꽃의 아름다움이 등가로 부각된 아주 포괄적이라서 더욱 빛나는 것 같아 맑은 연혼의 시인이다.


     

『4』 홍기영 <수석>


시인이 사랑을 빼놓고는 시를 잘 그릴 수가 없다. 물론 사에는 여러 가지의 형태로 포괄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사랑, 연인과의 사랑, 부부간의 사랑, 등 순수하고 투명한 이름이 따라 다닌다. 물론 자식과의 사랑은 믿음과 신뢰의 영원성이 일반적이지만 인간의 사랑 혹은 종교의 사랑, 어느 것이든 사랑은 인간에 의해 탄생되는 영원한 이름일 것이다.

이 영원성은 고귀하고 순수하고 또한 인간의 가치를 숭고미로 장악하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홍기영시인의 사랑은 남보다도 더욱 투명하고 깊이가 있는 듯하다.


   너무나 오래도록 하루같이

   사모하며 사랑하다

   수석이 된 사연


   강 숲이 노래하는 피리 소리에

   움푹 언덕 진 숲에

   작은 잉어들이

   자기 집이라 꼬리를 흔드는 사랑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강가에서

   이래저래 지낸 세월

   이 세상 끝까지 사랑 하겠노라

   약속하고 예쁘고 아름다운 수석이 되어

   오늘도 변함없이 사랑으로 바라본다.



                        <홍기영>  《수석》 중


시의 맥을 찾는 일은 매우 어렵다.

사실 시의 구조나 은유는 매우 간단하다.

오랫동안 갈고 닦아 예쁘고 멋지고 아름다운 수석을 보면서 그 긴 세월을 거치며 고이 간직하고 닦고 쓸어주고 수석의 존재 이 둘 사랑의 의미가 결부된 데에는 아주 농도가 깊다.

얼마나 아고 애지중지한 수석이 변함없는 염원의 상상으로 시를 그려내는 것에 홍기영 시인에게 감동한다.  

홍기영시인은 사랑의 영원성을 지고의 가치로 인식하기 때문에 수석이라는 물상에서 비유의 숲을 시로 환치하는 재치가 유연하다.


   

『5』 김규희 <목련 꽃>


시인은 시로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어떤 물상인가도 시의 특성을 분석한다면 가능하다. 이러한 심리적인 방편은

시의 비유에서 확실하게 접근 될 수 있으나 미래를 바라보는 풍경까지도 보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은유로 그리는 이유도 시인이 가지고 있는 고독의 함량까지도 측량할 수 있다는 뜻이다.

홍기영시인은 동심적인 발상과 외적인 성격은 아니나 성품이 내성적인 것 같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시인인 것 같다.


앙상한 꽃대로 살며시

올라오는 수치에서 고개 숙이고

멋지고 아름다운 꽃망울


바람타고 한 닢 한 닢

에고 띄어

깊은 향기 마음으로

언제라도 꺼내 봐야지

목련 꽃을 ...  

                  

                 <김규희>  《목련 꽃》 중


앙상한 꽃대와 수줍음을 안고 뾰족이 올라오는 꽃망울을 보면서 깊은 향기에 빠지며 언제라도 꺼내봐야지 라는 김규희 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김규희의 의식은 목련 꽃을 비유로 아름다움을 표시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충실히 표현하는 시인이다.

왜냐하면 진한 향기를 발산하는 것 보다는 제라도 꺼내볼 수 있다는 마음에서 그의 미적 일상의 표정을 감지할 수 있다.

삐죽이 올라오는 촉수를 포착하려는 의도를 확인할 수 있으며 물상의 움직임을 열린 마음으로 필요한 이유로부터 김규희 시인의 내면을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바로 이것이 무안한 상상의 창작이라 하겠다.

또한 시는 시대가 변할수록 시는 인간의 마음을 정화 시켜주며 자정할 수 있게 하며 감성의 물상을 포착하게 하며 자정 능력을 높게 해준다는 것이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인간사 모두가 대상에 반응하는 인간의 특성과 맞물리고 있음을 상기하면 시에 어떤 반응이 나오는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닌가.

더구나  감동을 주요임무로 하는 시에 바람의 충격을 자극하지 못한다면 그 시인의 임무는 이미 도태된 운명을 예고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무심하게 않아있는 산 속 나무와 바위를 예를 들기로 하자

사람이 않아 쉬는 고마움에 감성을 나타낼 것이고 어떤 사람은 형상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아름다움에 심취할 것이다.



이 둘의 경우에서 어느 것이 가치의 개념이라는 단언을 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다.

그러나 예술은 전자보다는 후자 쪽에 고귀성을 부여한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은 상상력의 무한 에너지를 발휘하는 또다른 속성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자에 안식을 취한다면 그 또한 생활의 활력을 충전하는 의미 역시 무시할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시를 읽는 마음은 수면상태의 상상력을 갖는 일이고 이로부터 삶의 건강을

충족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때 한편의 시에서 받는 바람은 거대한 에너지를 충전하는 계기로 인식될 것이다.

물론 감흥이 없는 사람에게는 어떤 미적 대상도 무의미하다는 것 일게다.

미적 인식이 깨어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적어도 문화 의식을 가졌는가. 아닌가는 삶의 질과 상관이 있기 때문이다.

시는 문화의 중심축인 인간 정신의 깨어 있음을 측도하는 예술이기 때문인 것이다.

시를 읽으면 가슴에서 바람을 일으킨다. 멋진 시를 읽으면 행복한 감흥이 절로 솟구치고 상상력의 무한 여행을 떠나는 길로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위를 바위로 바라보는 사람과 상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과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시는 좋아하고 가슴에 담아야 한다. 이때로부터 마음의 눈이 떠지고 넓은 세계의 지평이 열리기 때문이다. 단순히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밑에 있는 고임을 꺼내는 노력이 있다면 시는 어느 날 향기 있는 꽃처럼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시란 언제나 그렇다

위의 글은 순전히 내 개인적으로 배우고 터득한 그리고 사 사를 받은 스승에게 배웠다고 하겠다.


『2』 김신정 < 바위 꽃이끼를 보니 >  


시는 늘 창작의 감성으로 바라보아야 감동을 받고 상상을 하게 되면 교훈은 어느 순간 에피그람(풍자시)이 되어 정신 내부에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다.

하여 시의 역할은 사람에 따라 반응의 형태는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김신정의 꽃은 인생을 말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위에 핀 꽃 화려하게 살아나는

   환한 봄 햇살 한 줌 초록으로 다가서는

   늦은 봄

   비 온 뒤에

   이끼 꽃이 피웠다네.


   처음 볼 때는 녹조 낀 초록이

   봄비 오는 사이 청록색으로 빚나니

   뿌연 숲 헤집고 간 자연은

   또 인상을 찌푸린다.


   관조하는 인생이 어쩌면 인간이라

   어느새 주름진 살결이

   나이테 같아

   갈일만 남았네.


                      <김신정> 《바위 꽃이끼를 보니》


3연 중 2연은 3연을 말하기 위해 비유인 것이다. 늦은 봄에 바위에 낀 이끼가 꽃으로 변하는

아름다움의 표현이 주름살로 바뀌고 다시 그 조락의 이름을 마주할 때면 즉 우듬지 이끼의 끝이 주름살로 변하는 인생의 과정을 그리고 삶의 아림을 그리는 시에서 바위의 이끼를 축도로 바라보는 데서 많은 의미를 느낀다.


『3』 이정석 <작약 꽃>


시인이 보는 입장에서 어떤 사물이던지 고정된 것은 없는 것이다. 같은 정물이라 해도 시간과 때에 따라 변하고 말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시인 2명이 한 사물을 보고 시를 그리라 했는데 완전히 다른 시향을 보였다. 똑같이 한 사물을 보았다고 해서 글이 같을수 는 없다는 것이다. 즉 똑같은 시인이 똑같은 꽃을 볼지라도 어떤 시인은 동적인 느낌을 자극하고 어떤 시인은 고정된 시를 그려낸다. 그래서 시인은 이런 감수성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이정석의 작약 꽃에 대한 비유는 경험으로 미화해 보련다.



   깊은 산 속에 외로이 않아서도

   언제나 아름다운 것은

   삶이라고

   웃음 짓는 네 모습

   너무도 아름다워

   너에게 다가가

   꽃을 안고 싶다

   사나흘 후면 사라진다 해도

   서럽지 않게

   사랑하고 싶다.

   작약 꽃


                     <이정석> 《작약 꽃》


이정석시인은 외로운 가운데에서도 꽃을 사랑하고 싶다는 아름다움의 비유로 결부시키는 은유야말로 상상의 창작을 배울 수 있게 한다. 특별한 명칭이 아닌 지극히 일반적인 특성을 사랑으로의 의미가 외로운 상황 속에서도 아름다움이 보인다는 것에 방점을 찍고 싶다.

순수한 꽃의 사랑을 접목 시키는 비유가 이정석 시인에게는 메시지가 강하기보다는 사라진다 해도 사랑하고 싶다는 직유에서 더욱 꽃의 아름다움이 등가로 부각된 아주 포괄적이라서 더욱 빛나는 것 같아 맑은 연혼의 시인이다.


     

『4』 홍기영 <수석>


시인이 사랑을 빼놓고는 시를 잘 그릴 수가 없다. 물론 사라에는 여러 가지의 형태로 포괄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사랑, 연인과의 사랑, 부부간의 사랑, 등 순수하고 투명한 이름이 따라 다닌다. 물론 자식과의 사랑은 믿음과 신뢰의 영원성이 일반적이지만 인간의 사랑 혹은 종교의 사랑, 어느 것이든 사랑은 인간에 의해 탄생되는 영원한 이름일 것이다.

이 영원성은 고귀하고 순수하고 또한 인간의 가치를 숭고미로 장악하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홍기영시인의 사랑은 남보다도 더욱 투명하고 깊이가 있는 듯하다.


    

   너무나 오래도록 하루같이

   사모하며 사랑하다

   수석이 된 사연


   강 숲이 노래하는 피리 소리에

   움푹 언덕 진 숲에

   작은 잉어들이

   자기 집이라 꼬리를 흔드는 사랑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강가에서

   이래저래 지낸 세월

   이 세상 끝까지 사랑 하겠노라

   약속하고 예쁘고 아름다운 수석이 되어

   오늘도 변함없이 사랑으로 바라본다.



                        <홍기영>  《수석》 중


시의 맥을 찾는 일은 매우 어렵다.

사실 시의 구조나 은유는 매우 간단하다.

오랫동안 갈고 닦아 예쁘고 멋지고 아름다운 수석을 보면서 그 긴 세월을 거치며 고이 간직하고 닦고 쓸어주고 수석의 존재 이 둘 사랑의 의미가 결부된 데에는 아주 농도가 깊다.

얼마나 아고 애지중지한 수석이 변함없는 염원의 상상으로 시를 그려내는 것에 홍기영 시인에게 감동한다.  

홍기영시인은 사랑의 영원성을 지고의 가치로 인식하기 때문에 수석이라는 물상에서 비유의 숲을 시로 환치하는 재치가 유연하다.


   

『5』 김규희 <목련 꽃>


시인은 시로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어떤 물상인가도 시의 특성을 분석한다면 가능하다. 이러한 심리적인 방편은

시의 비유에서 확실하게 접근 될 수 있으나 미래를 바라보는 풍경까지도 보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은유로 그리는 이유도 시인이 가지고 있는 고독의 함량까지도 측량할 수 있다는 뜻이다.

홍기영시인은 동심적인 발상과 외적인 성격은 아니나 성품이 내성적인 것 같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시인인 것 같다.


앙상한 꽃대로 살며시

올라오는 수치에서 고개 숙이고

멋지고 아름다운 꽃망울


바람타고 한 닢 한 닢

에고 띄어

깊은 향기 마음으로

언제라도 꺼내 봐야지

목련 꽃을 ...  

                  

                 <김규희>  《목련 꽃》 중


앙상한 꽃대와 수줍음을 안고 뾰족이 올라오는 꽃망울을 보면서 깊은 향기에 빠지며 언제라도 꺼내봐야지 라는 김규희 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김규희의 의식은 목련 꽃을 비유로 아름다움을 표시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충실히 표현하는 시인이다.

왜냐하면 진한 향기를 발산하는 것 보다는 어제라도 꺼내볼 수 있다는 마음에서 그의 미적 일상의 표정을 감지할 수 있다.

삐죽이 올라오는 촉수를 포착하려는 의도를 확인할 수 있으며 물상의 움직임을 열린 마음으로 필요한 이유로부터 김규희 시인의 내면을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바로 이것이 무안한 상상의 창작이라 하겠다.


2023. 02.20.


[대중문화평론가/칼럼리스트/이승섭시인]

[감동으로 환치하는 시간]
[이승섭시평집]
[이승섭칼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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