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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Nov 09. 2024

용서, 할 수 있을까요?

지나간 일이, 그저 밑거름이 되는 순간이 올까요?

 용서를 하는 것은 '나'를 위해서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저는 이 말이 너무나 나쁜 사람을 옹호하고 보호하기 위한 말로 들려서 싫어했어요. 용서를 하든 말든 그것은 피해자의 자유지 그걸 왜 더 좋다 말다 하면서 더 괴롭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물론, 무조건적으로 누군가를 용서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 저를 위해서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에 대해서 왕왕 생각하곤 합니다. 용서를 한다는 것은 그 일을 없었던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슨 일은 했는지 똑바로 마주하고, 내게 입힌 피해도 무엇인지 알되 내게 그 일을 한 사람이, 그리고 내게 일어난 그 일이 더 이상 제 인생에 한계가 되고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차단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그 사람을 '용서'함으로써 저는 더 이상 상처받은 피해자가 아니게 되고, 그 사람 역시 제가 이를 갈면서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됨으로써 제 인생에 더 이상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어려워지죠.


 말은 이렇게 간단한 듯 하지만 그래도 쉽지 않은 일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제가 요즈음 용서를 생각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너무나도 용서를 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이유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저는 더 이상 자기 연민에 빠지는 피해자로 살고 싶지 않고, 그 사람들이 내가 내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두고 보고 싶지 않아서 이기도 합니다. 내게 한 일들 때문에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았으면 하다가도, 사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도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에너지 역시 좋은 방향으로 사용하고 싶어지기도 했고요. 


 제대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아빠는, 위협적이었던 단 하루의 사건으로 인해서 더욱더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몇 년 전, 남이 보기에는 큰 일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제가 당시에 가지고 있던 문제와도 부딪히면서 당당하게 미워할 명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얼굴도 잘 안 보게 되었고, 말을 섞는 것도 싫었습니다. 처음에 공포심으로 시작하여, 과거에 있던 모든 일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이를 갈 정도로 화가 나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다른 땅. 먼 곳에서 좀 더 시간을 가지게 되니 조금씩 마음이 정리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처음 몇 달은 계속해서 화가 나기도 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아빠가 내 어린 시절을 힘든 게 만든 것은 맞기는 하나 제 어린 시절이 불행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친구들도 있었고, 든든한 엄마도 있었으니까요. 교과서에 나오는 것 같은 가족은 아니었지만, 힘들었지만 좋은 순간들도 있었으니까요. 저를 불쌍해하고 안타까워하면서 '그래서 나는 ~도 못해'와 같은 태도를 더 이상 가지지 않기로 했습니다. 더 이상 아빠 핑계를 대거나, 아빠를 미워하기 위해서 제 가능성에 제한을 두는 짓은 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제 저는 어른이고, 제가 행복하고 잘 살고 잘 크기 위한 노력은 제가 기울이는 것이 맞으니까요. 저는 아빠의 일과 상관없이 남자들과도 잘 지낼 수 있고, 원한다면 결혼도 할 수 있고, 남자친구와도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전 약하기만 한 피해자가 아니니까요. 아빠의 잘못이 저의 인생을 더 이상 망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 잘못들을 다 덮어놓고 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두렵고 힘듭니다. 어디선가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듣는 것만 해도 스트레스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제게 조언해 준 것처럼 이제 저는 어른이고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바라는 것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그날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날의 진실을 알고, 상황을 알고, 어쩌면 감사하게도 사과를 받는다면 계속해서 말하지 않아서 마음속에 불편하게 자리 잡아서 뾰족뾰족 가시 돋친 말을 내뱉기도 하고, 순간 제 심장을 죄어오기도 하던 그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용서'라고 하면 이렇게 용서하고 싶은 사람 말고도 아직 화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던 사람들도 생각이 납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나를 깎아내리려고 하고 곤란하게 만들려고 해서 너무나도 힘든 시간을 보내게 했던 사람들. 타국에서 엉엉 울면서 결국 한국으로 돌아오게 했던 사람. 너무나도 좋았지만 몇 년 동안의 기다림에도 돌아오지 않은 친구 등등이요. 


 누군가는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고, 누군가는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이 들고, 누군가는 내심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 그리 관계 맺은 사람이 없는 이의 마음에도 이렇게 걸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저를 위해서도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도 그들을 용서하고 싶습니다.

 마음을 열고, 상황을 정확히 보고. 화를 내지도 격해지지도 않은 채, 그저 그 사람의 한 못난 순간이었겠으려니 하고 멋지게 용서하고 훌훌 털면서, 피해자가 아닌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바라고 그리다 보면, 언젠가는 저도 조금은 멋진 어른이 되는 길에 한 발짝 다가서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용서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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