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상자: 숟가락통

달그락달그락.

by 지현

저도 커가면서 급식실에 수저와 젓가락이 구비되어서 사용했지만, 초등학교 시절에는 숟가락통을 들고 다녀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급식판도 있었고, 배식도 해 주셨는데 숟가락과 젓가락은 없어서 집에서 챙겨 와야 했거든요. 숟가락과 젓가락만 들어간 통만 들고 다니기도 했는데 이것도 자크로 여는 형식과 플라스틱 통 같은 데에서 뚜껑을 여는 방식이 있었습니다. 왠지 후자가 조금 더 멋져 보였는데, 위의 뚜껑을 잘 안 덮으면 수저와 젓가락이 튀어나오는 불상사가 자주 발생하곤 했습니다. 그렇다고 자크가 안전하냐 하냐면 그것도 아닌 것이 저는 항상 자크를 끝까지 잘 안 잠가서 젓가락이 꼭 하나씩 탈출해서 집에서 설거지 통에 넣기 위해 가방을 뒤지곤 했습니다.

그렇게 가방의 작은 앞 주머니 같은 데에 숟가락 통만 넣기도 했지만, 엄마가 작은 주머니에 넣어주시기도 했습니다. 그중에 제 기억에 가장 잘 남아있는 것은 파란색 주머니였습니다. 실로 뜬 것 같은 녀석이었는데 노란색과 초록색 등의 실이 무늬를 만들어서 올라가는 형태였습니다. 엄마는 여기에다가 물통이나 손수건 등도 함께 넣어주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때에는 교무실은 추워 죽어도 교실 내에 냉방기구를 잘 안 틀어주곤 했습니다. 더위를 더 많이 타던 저에게는 너무 힘들었는데, 그때 엄마가 가끔 얼음물을 싸 주시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물 통과 숟가락통을 주머니에 넣으면 주머니가 아주 빵빵해지는데, 얼음이 녹으면서 그쪽 부분의 천만 젖어있었던 기억이 나곤 합니다.


지금도 깜빡깜빡 잘하는데, 아무리 알림장을 쓰고 엄마가 잔소리를 한다고 한들, 무언가 한 번씩 빠뜨리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실내화도 들고 다녀야 했고(그것도 일주일에 한 번씩 잘 빨았나 검사도 했습니다.), 준비물도 따로 사서 들고 와야 했고,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들이 많은데 인터넷도 안되니 말도 안 되는 초등학생의 글씨로 쓴 알림장에 의존해야 했거든요. 이것저것 챙길 게 많으니 자잘한 실수는 당연히 나오는 게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각설하고, 그렇게 수저통을 안 가져온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선생님마다 다르지만, 아이들이 쓸 수 있는 숟가락 여분을 준비해 두신 분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담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그걸 쓰기도 했었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친구들끼리 빌려주곤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젓가락을 빌려주는 편이었습니다. 숟가락이 활용성이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밥이랑 국도 먹을 수 있고, 반찬들도 대강 숟가락으로 잘라서 퍼먹으면 되니까요. 어떤 아이들은 젓가락을 빌려주고, 국을 마지막에 식판채로 들고 먹기도 했습니다. 가끔은, 그렇게 한 개씩 빌려주는 바람에 숟가락통을 챙겨 오지 않은 아이만 온전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용한 숟가락은 집에서 잘 닦아서 다음날도 가져와야 하니 등굣길에도, 하굣길에도 저와 함께 하게 되는데 아까 말씀드린 플라스틱 수저통을 쓴다면 이게 부딪히면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뛰기라도 하면 천둥소리처럼 시끄러운 소리를 냈죠. 기분 좋게 통통 걸어가면 그것에 맞춰서 잘그락거리던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집에 가는 길도 이렇게 저렇게 걸어보고 뛰기도 하면서 그 소리르 마치 음악인 양 즐겼던 기억도 납니다.


또, 가끔 새로운 주머니가 숟가락 통을 받았을 때의 기쁨도 생각이 납니다. 물론, 들어가는 숟가락 디자인이 아주 미묘하지만 새 걸로 바뀔 때도 행복했습니다. 집에 잔뜩 있는 숟가락과 젓가락 중에서 '나만의 것'이 따로 있다는 것도 괜한 설렘과 즐거움을 주기도 했었고요. 지금은 멀리 다른 나라도 떠날 때가 아니면 챙길 일이 없는 숟가락 통이지만, 볼 때마다 몽글몽글 소중한 추억들이 떠오르는 물건 중 하나입니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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