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의 습관을 만들어준 시작에 관하여
일기 쓰기가 필수 숙제이던 시절이 있습니다. 현재는 아이들의 사생활 침해 등의 이유로 모두가 쓰는 분위기는 아닌 듯 하지만 말입니다. 그때에는 일주일에 3번 정도 일기를 썼고, 그 일기를 선생님한테 제출해서 검사를 받았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보통 '그림일기'라는 것을 썼습니다. 위에 년, 월, 일을 쓰고 그날의 날짜에 동그라미를 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가운데 넓은 부분에 그 일기의 내용을 담은 그림을 그리고, 그 밑 부분부터 뒷장까지 이어지 네모네모 칸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곤 했었습니다. 이 시절에는 아이들이 글자를 작게 쓸 수 없어서 그런지 일기장도 큼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크레파스로 칠하면 앞 장에 묻곤 했지만 어느 날은 크레파스로, 어느 날은 사인펜이나 색연필을 써가면서 누군가에게 보여 줄 일기를 열심히 쓰곤 했죠.
몇 년이 지나고부터는 일반 노트 사이즈의 일기장을 사용했습니다. '일기장'이라고 쓰인 노트 역시 날짜와 날씨 등을 기록하는 칸이 있었고, 그림일기와는 다르게 공백 없이 줄이 늘어져 있었습니다. 이 역시 넓은 칸과 좁은 칸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일기를 쓰고, 일기를 검사하는 날이면 교실 맨 앞에 있는 선생님의 책상 위에 그 주의 새로운 일기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펴서 엎어서 쌓아두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놓은 일기장은 선생님은 거의 당일에 모두 검사하셔서 나눠주셨는데 일기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으면 밑줄도 쳐주시고, 재미있었겠다 등의 코멘트도 달아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문법이 틀리거나 표현이 잘못된 부분을 고쳐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린 시절의 마음을 기록하는 동시에 글쓰기를 연습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일기는 방학 때에도 이어졌습니다.
문제는, 방학 때에 노는 것은 너무 재밌고 매일매일 숙제를 생각하고 쓸 만큼의 자제력이나 통제력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몇 번이나 방학이 끝나기 일주일 전 즈음에 그동안 써야 했던 일기를 손으로 열심히 세서 열 몇 편씩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날씨를 기록하는 칸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도 기억 못 하시고, 딱히 개의치 않으셨을 듯 하지만 그때에는 막 지난주에 비가 왔냐 안 왔냐 엄마나 친척 언니한테도 물으면서 선생님이 내가 일기를 한 번에 썼다는 것을 알아채실까 봐 무서워하면서 숙제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팔이 저리도록 하루 종일 쓴 일기가 무사히 통과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했었죠.
그렇다고, 매 방학마다 이렇게 보냈던 것은 아닙니다. 아직 기억나는 4학년인지, 5학년의 어느 방학에는 저와 제 동생뿐만이 아니라 사촌 동생도 할머니 댁에서 꽤나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러면서 저희는 삼촌을 따라 낚시를 가서 차 안에서 만화만 보기도 하고, 개구리를 만나서 도망가기도 하고, 바다며 계곡에 놀러 가기도 하고 우리만의 모험을 하겠다면서 밖에 나갔다가 엉엉 울면서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때 숙제도 할 겸 그 당시 누군가 웃기기를 좋아했던 제 욕망을 채우기도 할 겸 '일기 낭송회'를 열었습니다. 그날 재미있게 놀고 나서, 일기를 각자 쓰고 각자 쓴 일기를 읽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동생들과 이런저런 재미있는 표현도 쓰면서 깔깔 웃으며 그날 밤을 보냈던 기억은 아직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아쉽게도 이사도하고, 커가면서 이때의 일기장은 버려졌습니다.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것은 저의 중학교 시절부터의 기록입니다. 일기를 쓰던 것이 습관이 되어서, 매일이 아니라 간간히더라도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가끔 들춰볼 때면 그때의 고민이나 감정들, 있었던 일들을 보면서 미소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하면서도 일기를 쓰고, 다른 나라에서 생활을 하면서도 일기를 쓴 덕분에 좋은 추억들을 남겨 놓을 수 있었고, 저의 좋은 자산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숙제로 일기를 쓰는 것은 쉽지는 않았지만, 그때 선생님과 나만 무언가 공유하는 것 같던 그 감정. 엉뚱한 내용을 써서 아이들 앞에서 읽고 같이 깔깔 웃기도 했었던 기억. 동생들과 열심히 일기를 써서 발표했던 기억들은 여전히 미소가 지어지는 소중한 추억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