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상자: 인라인 스케이트

넘어지는 게 무섭지 않던 시절

by 지현


저는 자전거를 못 탑니다. 정확히 말하면 평지에서 직진정도는 할 수 있지만, 방향을 바꾸는 것도 못하고 내리막에서는 굴러 떨어지기 일쑤죠. 자전거를 못 탄 다는 사실에 가끔 놀라시는 분들도 있는데, 제가 자전거를 못 타는 이유는 어린 시절 자전거 대신 인라인 스케이트에 푸욱 빠졌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아무래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쓰던 인라인 스케이트를 받으면서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빠가 저를 한강 공원에 데리고 가서 인라인을 가르쳐줬었는데 너무 신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조금 겁먹거나 신나서 무게중심을 뒤에 두면 쿠당탕 넘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처음에 한 발 한 발 걷는 것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밀면서 타는 법도 배우고 나중에는 쌩쌩 달릴 수 있을 정도로 꽤나 잘 타게 되었습니다.


아빠가 퇴근하고 나서 같이 밥을 먹고 가족들이 다 같이 밤에 한강공원에 갈 때면 차 안에서 기쁨이 가득했던 기억이 납니다. 가끔은 시험도 못 봤는데 놀러 가는 거 아니냐며 엄마의 장난 섞인 핀잔을 받기도 했지만, 하루를 보내고 좋아하는 취미를 즐기기 위해서 이동하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는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아빠 없이도 탈 수 있게 되고부터는 엄마의 친구분과 저와 동갑이었던 남자아이와도 한강이며 다른 공원에 인라인을 타러 가고는 했었습니다. 한 번은 속도 줄이는 걸 실패해서 강 쪽으로 떨어질 뻔하기도 하고, 크게 넘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무서워하지 않고 바로 일어나서 또 속도를 내곤 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무언가를 빨리 배우려면 넘어지고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씽씽 달리다 보니, 제가 꽤나 잘 타 보였는지 그 친구가 저를 스승님이라고 부르면서 열심히 쫓아왔던 기억도 있습니다.


너무 인라인을 좋아해서 그렇게 타다가 삼촌에게 새로운 인라인을 선물 받기도 했었습니다. 제 발에 꼭 맞는 새로운 인라인이 얼마나 좋았던지, 그 붉은색 인라인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인라인은 생각보다 무겁고 꽉 조여서 신느라 몇 시간을 내리 열심히 타고나면 발이랑 발목도 조금 아파오고 저릿해지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그 바람을 가르는 즐거움에 모든 것을 잊었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 전에 친구와 여의도에 갔는데 아직 공원에 인라인을 가르쳐 주는 곳이 있었습니다. 한 번 타보자고 하면서 대여를 했는데, 예전처럼 씽씽 탈 수는 없었습니다. 아빠가 맨날 몸이 다 기억한다고 했는데 수영하는 거나 인라인 실력을 생각해 보니 어느 정도 지나면 몸도 다 까먹나 싶습니다. 넘어지는 게 무서워서 힘을 줘서인지,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런 건지 힘들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지만, 그래도 옛날 생각도 나고 주르륵 미끄러지는 느낌에 기분이 좋았었습니다. 어렸을 때 좋아하던 취미생활을 언젠가 다시 한번 시작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언젠가 다시 인라인을 타는 날이 올 수도 있겠죠?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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