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엉 울었던 고통에 관하여
저는 아픔을 잘 참는 아이였습니다. 지금도 잘 참는 편이긴 하지만, 그 당시 어린 나이임에도 정말 꾸욱 잘 참았습니다. 주사 맞는다고 땡깡 부리는 일도 없고, 치과도 잘 갔던 아이로 의사 선생님들과 간호사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곤 했었습니다. 눈물을 꾹 참고 나서 주시는 사탕을 얌얌 먹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이빨이 반쯤 빠졌을 때도 울지 않았던 제가 딱 한 번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던 날이 있습니다. 머리가 찢어졌었는데, 머리만 마취가 되지 않는다고 하여 결국 생으로 살을 꿰매었던 날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엉엉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크게 우는 제게 당시 의사 선생님은 울지 말라고 시끄럽다는 식으로 말씀을 하셨고, 20여 년이 지났지만 엄마는 그날을 아직도 분하게 기억하고 계시는 합니다. 소독약 냄새인지 기분 나쁜 냄새와 여러 기구들이 있었던 곳에서 빽빽 울었던 기억. 한동안 머리를 감지 못한 채 보호용으로 헤어 밴드처럼 생긴 것을 하고 유치원에 갔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그때 그렇게 다쳤던 이유가 바로 장난감 칼이었습니다. 당시에 저희 앞집에는 사실상 저와 동갑이지만, 제가 2월 생이라 조금 일찍 유치원을 들어간 저를 '누나'라고 꼬박꼬박 부르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남자아이였기 때문에 같이 팽이 게임도 하던 그 친구였는데, 외동이어서 그런지 저를 많이 따랐었습니다. 집이 바로 앞이기도 하고 해서 곧잘 그 친구 집에서도 놀곤 했는데 어느 날은 장난감 칼싸움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란 손잡이 위에 흰색 플라스틱 모양의 칼이 얹어진 형태였지만,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용사가 될 만큼의 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크고 치열하게 칼싸움을 하진 않았습니다. 친구는 순하고 착한 아이였고 우리는 그저 기분이 너무 좋아서 칼을 맞대며 꺄르륵 웃었으며 놀았을 뿐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칼싸움의 장소가 침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폭신하고, 내가 준 힘보다 더 폴짝 부드럽게 뛰어오를 수 있는 침대는 정말 매력적인 녀석이었습니다. 당시 저희 집에 침대가 없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요. 한참 신나게 놀다가 너무 신이 난 저는 더욱더 폴짝거리면서 뛰었는데 그러다가 실수로 모퉁이 같은 곳을 밟는 바람에 그 집 텔레비전 쪽으로 점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머리를 모서리에 쾅하고 박았고, 큰 소리에 달려온 아주머니는 제 머리에 피가 나는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셨습니다.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는 기억이 안 나고, 엄마랑 같이 병원을 가서 빽빽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주 어렸을 때지만 정말 너무 아팠다는 것은 기억이 납니다. 마취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렸을까요?
여하튼 장난감칼이 딱히 위협적인 장난감도 아니고, 별 거 아니어 보기 이도 하지만 가끔 볼 때면 머리가 다시 조금 아파오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