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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gooni Jan 05. 2021

그때는 틀리고 지금도 틀리다

'라떼는 말이야'에 대한 고찰

‘라떼는 말이야’는 최근에 나온 현상은 아니다. 


예전부터 과거의 영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던 말이다. 


옛날에는 어른들이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과거의 얘기를 하더라도 모든 말을 들어주고 순응했겠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라떼는 말이야가 너무 길어지거나 너무 자주 반복되면 듣기 힘들다고 얘기하거나, 그래서 하고 싶으신 말씀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씀해 주세요라며 (옛날 기준으로) 눈치 보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에는 특별한 현상이 아니었던 '라떼는 말이야'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이라며 화두로 떠오르게 되었다.


예전에는 틀린 것을 틀리다고 말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여 말하지 않았다. 


참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하여 본인이 힘들면서도 모든 것을 참아내 또 참아내며 살았다. 


학교에서는 일부 선생님들로부터 폭언을 듣는 이 일상이었으며 지금 기준으로 볼 때 폭력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자주 맞기도 했다. 


학교 선배들 말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며 살았고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말을 듣지 않거나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하면 버릇없이 말대꾸한다고 욕을 먹거나 때로는 맞는 일도 빈번했다. 군대에서는 고참들이 말도 안 되는 명령을 하며 괴롭히더라도 부하로서 참아내며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군인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틀린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면 옳지 않다고 말한 그 사람이 모든 것을 뒤집어써야만 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했을 뿐인데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잘못된 것을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매도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한 사람으로 인해 공동체가 단합이 되지 않는다며 단체 기합을 주고 연대책임을 강요하며 틀린 것을 말할 수 없도록 분위기를 만들어나갔다. 


잘못된 것을 보고도 말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조용히 지내면 모두가 편해진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그때는 그랬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변했다.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면서도 내부 고발을 하며 하나 둘,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윗사람이라고 이유 없이 아랫사람을 함부로 하거나 때리는 사람들이 있으면 문제를 제기했다.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기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렇게 세상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으며, 핸드폰 등의 기술 발달로 세상의 변화는 가속화됐다. 


누군가가 옳지 않은 방법으로 강요하거나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려고 할 때 사람들은 핸드폰을 들어 잘못된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카메라에 담긴 영상이나 사진은 SNS를 타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또한 곳곳에 설치된 CCTV는 그동안 숨겨져 왔던 많은 잘못된 행동들을 세상에 공개했다. 그동안 암묵적으로 어쩔 수 없이 참아오던 것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사랑의 매 또는 예의범절을 가르치기 위한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됐던 폭력이나 강요들이 줄어들었다. 


일각에서는 이런 현상들로 인해 선생님의 권위가 무너졌다고 하거나 요즘 애들은 위아래가 없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권위가 무너졌다고 보기보다는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제는 예전과 같이 선생님이나 웃어른을 무섭고 큰 존재로 여기며 무조건적으로 공경하는 일은 보기 어려워졌다. 이제 더 이상 선생님이라고 해서, 웃어른이라고 해서 무조건 공경하지는 않는다. 


존경할만한 선생님이어야 존경하고 배울 점이 있는 어른이어야 존경한다. 단순히 나이가 많은 어른이라고 해서, 무언가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해서 존경하거나 공경하지는 않는다. 


선생님이라고 해도 잘못된 점이 있으면 지적하고 어른이라고 하더라도 고쳐야 할 점이 있으면 말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세대가 변하고 시간이 흘렀다고 하더라도 참 스승, 참 어른이 있다면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을 존경하고 공경한다. 


무조건 적인 공경이 아닌 자발적인 공경과 존경의 마음으로 그들을 대한다.


길게 얘기했지만 이렇게 시대가 변했다.


'떼는 말이야'를 외치는 사람들이 그렇게 힘든 시기를 보낸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다.


많은 언론매체와 책들이 '라떼는 말이야'를 소개하고 요즘 밀레니 세대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라고 설명함과 동시에 밀레니얼 세대들의 특징을 이야기한다.


‘90년대생이 온다. ‘ 등의 책이 출간되고 90년대생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활발 일을 해야 할 90년대생들과 함께 협업하여 업무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그들이해하고 그들에게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마치 그동안 세상을 이끌어왔던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는 기성세대들은 문제가 없지만 90년대생하고 함께 일하기 위해서 맞춰줘야 한다는 식의 표현이 대부분이다.



출근시간 10분 전이 아닌 정시에 출근하거나 퇴근시간을 칼같이 맞춰서 퇴근하더라도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상사가 일을 다 끝내지 않았는데 자기 할 일을 다 끝냈다고 퇴근하는 90년대생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리 얘기하지 않고 당일에 회식 가자고 하면서 회식에 오지 않는 90년대생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속으로는 출근 시간 30분전에 와서 준비해, 상사가 일하고 있으면 퇴근하지 말고 기다려야지, 오늘 회식 무조건 참석해라는 생각이 가득하다. 


이따금씩 마음속의 생각이 겉으로 튀어나오는 경우 90년대 생들이 왜 그렇게 해야 되죠?라고 이유를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똑같다. 


나 때는 그랬으니까.


나 때 그렇게 했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상사를 대접해줬는데 후배 사원들이 대접해주지 않는 것 같아서 억울한가? 


라떼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출근 시간보다 먼저 출근하고 퇴근시간 이후 한참 동안 야근해서 좋았는가? 상사가 일이 끝나지 않아서 당신이 일을 끝냈는데 집에 못 가서 좋았는가? 


회식에 가서 죽기 바로 직전까지 술 마시고 집에 새벽에 들어가는 것이 좋았는가?

당신이 싫었다면, 싫었던 것을 강요하지 말자. 


그때의 당신이 좋았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후배들이 싫다고 하는 것은 강요하지 말자. 


90년대생들을 이해해야 할 일이 아니라 꼰대라고 불리는 당신들이 바꿔야 한다.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면 이유를 설명하면 된다. 이유를 설명했을 때 90년대생들이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꼰대 짓이 아니다. 


이유없이 강요하기 때문에 꼰대라는 비판을 받은 것이다. 이유가 정당하다면 90년대생들도 받아들인다.


주 40시간, 하루 8시간 근무는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것으로 정시에 출근해서 정시에 퇴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추가로 일을 시키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맞다. 


정해진 출근시간보다 늦게 오거나 정해진 퇴근시간보다 먼저 가는 게 아니라면 그들의 생활을 존중해주자.

  
상사가 일을 다 끝내지 않았다고 해서 일을 다 끝냈는데 왜 집에 못 가고 기다려야 하는가? 상사가 하는 일이 나눠줄 수 있는 일인가? 


나눠줄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보고 부탁을 하자. 


부탁하는데도 들어주지 않을 90년대생은 없을 것이다. 


부탁을 통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자기 일만 다 하면 퇴근할 수 있도록 평소에 분위기를 만들어주자.


회식의 목적이 무엇인가? 


갑자기 오늘따라 집에 일찍 가기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면 미리 회식 계획을 공유하고 회식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자. 


회식자리에서 술만 먹지 말고 그리고 가능하면 얘기를 많이 하지 말고 너무 들으려고만 하지도 말자. 


평소에도 그래야 하겠지만 특히 회식 자리만큼은 상사와 부하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그들을 존중해주자.

결론은 그렇다. 


90년대생들이 뭔가 잘못하는 것처럼 매도하며 그들을 이해해주는 척하지 않았으면 한다. 


라떼는 말이야라고 말하며 자신이 고생한 것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다. 


90년대생을 이해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기성세대가 빨리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달라고 이해를 구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동안 이렇게 살아와서 바꾸고 싶어도 잘 안되는데 노력해볼게 라고 말해야 되는 문제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90년대생들이 문제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잘못을 인정하고 고칠 수 있어야 한다. 속으로는 그렇지 않은데 겉으로만 이해하는 척한다면 90년대생들은 그모습을 보고 당신에게 꼰대라고 할 것이다.  


잘못된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소통이 시작된다. 다른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서로 납득할 수 있도록 이유를 설명하면 된다.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내가 살아온 방식이 맞다고 강요한다면 자기 스스로 꼰대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만약 나름의 이유를 아무리 설명해도 상대방이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이다. 


그때는 서로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며 서로 양보해야 한다. 


70년대생만의 세상 또는 90년대생만의 세상이 아닌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리는 충분히 서로를 존중하며 살 수 있다. 내가 힘들었으면, 후배들이 힘들지 않도록 배려해주자.


'라떼는 말이야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을 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았어. 


그래서 너무 힘들었지. 부끄럽지만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어


그래서 잘못된 것이 잘못된 것인지도 잘 모르고 살았네


만약 잘못된 것을 알려주면 고칠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라고 말할 수 있는 라떼가 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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