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은 아까시입니다."
고향은 북아메리카이고요 130여 년 전에 이 땅에 강제 이주하였습니다. 그때는 이 나라 산 대부분이 황폐하고 척박하였습니다. 다행히 제 뿌리에 함께 사는 뿌리혹박테리아가 질소를 풍부하게 만들어 산에 많은 식물들이 잘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 덕에 산사태도 막고 홍수도 줄었으니 참 다행입니다. 아! 가끔 제가 묘지 주위에 많이 사니까 제 뿌리가 관까지 파고들어 간다고 오해하시는데 저는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고 얕고 넓게 뻗어가는 "천근성(淺根性) 식물"이랍니다.
"제 이름은 아카시아가 아니라 아까시입니다"
우리 땅 어디에서나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는 일명 아카시아, 바른 이름 아까시나무의 서러운 타국살이에 대해 잠시 들어 보자.
첫째 우리가 아카시아라고 부르는 나무의 진짜 이름은 “아까시나무”이다. 아카시아 나무는 따로 있는데 한반도와는 기후가 맞지 않아 우리나라에서 자생하지 않는다. 가끔 TV에서 아프리카의 기린이 아주 맛있게 먹는 나무가 아카시아라고 한다.
둘째 아까시나무의 뿌리혹박테리아는 질소를 고정하여 식물에 공급하고 식물로부터 이산화탄소를 공급받아 상생하는데 이는 비료를 안 줘도 토양을 비옥하게 한다는 것이다. 즉, 황폐화된 토양의 토질을 향상하는 역할에 아주 알맞다는 것이다. 이 아까시나무가 자라는 토양은 다른 식물들이 자라기에 좋은 토양으로 바뀌어 주변 식물이 덩달아 잘 자라게 된다.
셋째 우리나라에서도 6.25 직후 산림녹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전국에 심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까시나무를 일제의 잔재하고 아주 적대시해 왔다. 번식력이 너무 좋아 우리 고유 생태계를 해치는 이미지로만 인식되어 왔던 것이다. 물론 아까시나무가 번식력이 좋아 집단 군락에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까시나무는 황폐한 곳을 비옥한 토지로 만들면 오히려 다른 나무가 잘 자라게 되어 그 번식력에 밀려 사라지고 만다.
또 아까시나무의 수명은 100년 안팎인데 우리나라 토양에 잘 맞지 않아 50년도 못 산다고 한다. 성장 속도는 빠르지만 뿌리가 얕아서 나무가 커질수록 비바람에 쉽게 쓰러지고 속이 잘 썩는 것도 큰 나무가 없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큰 나무라면 경북에 100년생이 두 그루 있다고 하고 광릉에서 100년 산 아까시나무가 133그루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서러운 타향살이를 겪은 아까시나무! 이제 칭찬 좀 해보자.
아까시나무는 뭐니 뭐니 해도 꿀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우리나라 꿀 생산량의 70% 이상을 이 나무에서 딴다. 이 70%라는 수치에서 무얼 더 말하랴. 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인데 아까시나무는 장작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재료다. 나무의 재질이 물참나무만큼이나 강하고 천천히 연소되기 때문에 오랫동안 화력이 유지되는데 무연탄의 열 함량에 필적한다고 한다. 게다가 어느 정도 습기가 있어도 쉽게 점화될뿐더러 연기도 거의 없다. 캠핑용 장작으로 쓰면 아주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장점 때문에 1950년대까지 일본에서 가장 추운 지역인 홋카이도에 아까시나무가 많이 심어져 장작으로 쓰였다고 한다.
또 요즘 목공방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집성 판재가 바로 아까시 판재이다. 경도도 높고 습에도 강해서 가구와 내장재에 모두 인기가 많다. 필자의 집 다용도 탁자도 아까시나무로 만들었는데 만든 지 10년이 다 되지만 틀어짐이나 흔들림이 없어 만족도가 높다. 온 가족의 식탁이자 공부하는 터로 잘 쓰이고 있다.
아까시나무!
이름도 제대로 불러주지 못했고 산림녹화와 맛있는 꿀의 공적도 알아주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싶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앞으로 함께 잘 살아 가자.
내년에도 맛있는 꿀 잘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