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소설 004
행복해지거나 또는 잠시 도망치거나.
요즘의 나에게 행복은 거의 도망과 동의어의 모습을 하고 있다.
눈을 감고 행복한 자신을 떠올려본다.
하나,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주변에 보이는 것은 등 뒤로는 끝없이 새하얀 모래사장, 눈 앞으로는 끝없이 새파란 바닷물, 머리 위로는 끝없이 청명한 하늘뿐이다. 어느 쪽으로 발걸음을 떼어도 나 하나 정도는 간단하게 집어삼킬 수 있을 것 같다.
둘,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내 머릿속의 생각마저도 텅 비어있다. 어느 것 하나 결정할 필요가 없고, 어느 것 하나 생각하거나 고민할 이유조차 없다.
셋, 그리고 그저 숨 쉬는 것이다. 하나, 둘. 들숨, 날숨. 셋, 넷. 들숨, 날숨.
다시 눈을 뜬다.
주변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 나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 나에게 일어난 수많은 일들 중에 나의 의지가 섞인 것은 얼마 없다.
주변에는 뭐가 너무 많다. 소음, 버그, 불행, 비극, 먼지와 쓰레기까지 하나같이 가득하다. 그것들은 왜 하필이면 나를 찾아낸 건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숨이 막힌다.
아침에 눈을 뜰 때에는, '일어나고 싶지 않다. 어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숨고 싶다.'
밤에 침대에 누울 때에는, '이대로 내일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어쩌고 저쩌고...'의 반복.
나는 대체 무엇으로부터 이렇게 간절하게 도망치고 싶은 걸까.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하루의 시작과 끝을 같은 생각으로 가득 채운 채 보낸다는 건 정말 간절한 것이 아닐까.
아마 나는 회사가 싫은가 보다. 아니,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 가는 게 싫은가 보다. 아니면 돈을 벌어야 하는 것 자체가 싫은가 보다. 그것도 아니면 자본주의 자체가 싫은 걸까?
아마 나는 인간관계나 사회생활도 싫은 것 같다. 아니, 회사든 지인이든 친구든 가족이든 그 모든 연결고리가 지치는가 보다. 아니면 그 작은 고리를 유지시키기 위해 들어가는 그 모든 행동들이 지치는가 보다. 그것도 아니면 그냥 사람 자체가 싫은 걸까?
아마 나는 사는 것 자체가 싫은 걸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처럼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벅찬가 보다. 아니면 더는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 벅찬가 보다. 그것도 아니면 그냥 나 자체가 싫은 걸까.
언제부터인가, 행복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꿈꾸는 듯한 이상항보다도 발밑에 펼쳐진 시궁창을 벗어나는 것을 그리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행복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하늘의 별을 향해 손을 뻗기보다는 발목을 붙잡는 늪을 빠져나가는 것을 그리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언제부터인가...
그럼 이제 내 발밑을 보며 내가 묻는다.
나는 왜 이 진흙탕에 들어온 걸까, 나는 왜 여기서 나가는 것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걸까.
나는 왜...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어쩌면 별로라고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로.
어차피 죽으면 도망칠 수 있을 테니, 조금만 더 발버둥 쳐보자.
어차피 끝은 스스로가 도망이라 부르는 행복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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