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다시 하나

적은소설 003

by 숲풀 supul

약을 먹으니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이럴 때 더 얹어서 먹으라고 처방받았던 진통제를 어디에 두었더라.

계속해서 생각에 금이 가고 있는 탓에, 머릿속에서는 도움이 되는 답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몸은 착실하게 기분 나쁠 정도로 하얀 약통이 있는 곳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두통뿐만이 아니었다. 잠깐 고민하는 그 사이, 속도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히려 다행인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확실하게 느껴지는 위화감 덕분에 심장 부근을 둥둥 떠다니는 것 같던, 그 말로 표현 못 할 감각이 둔해지고 있었다.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은 어지러움에 제대로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온몸이 저항 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이것 역시도 오히려 다행이었다.

앉아있으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리게 되지만, 포기하고 누우면 되는 일이었다. 숨쉬기가 편해졌다.


그렇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호흡하며 눈을 감았다.

뇌 속의 생각들이 마치 유화를 그리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퍼졌다가 멋대로 뭉쳤다가, 다시 일렁거렸다.


하나,


둘.


다시 하나.


눈을 감고 몸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되찾을 생각조차 하지 앉은 채 누워있으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이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을 세어보는 것뿐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더 이 삶을 이어가기 위해 애쓰는지, 그 횟수를.


잇새 사이로 스치는 소리를 내며 공기가 밀려들었고, 조금은 한숨의 그것과 닮아있는 소리를 내며 공기가 빠져나갔다.

타인의 숨소리를 듣는 것처럼 아무런 감정이 떠오르지 앉았다.


'가끔은, 나 자신의 숨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져.'


애써 가끔이라는 표현으로 지워보려 했지만, 사실은 꽤나 자주 그렇다는 걸 스스로 모를 리가 없었다.

거슬리는 것을 하나씩 치워가다 보니, 방 안은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그 작은 시계의 초침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방이었다.

누군가 움직여주는 상대가 없이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소리도 없이 썩어갈 무생물들 뿐.

스스로의 의지를 갖지 못하는 장식들 뿐이었다.

비슷한 색감의 나무 가구들. 의자. 책상. 책장.

한 때는 매일같이 손길을 받았던 소도구들. 책들. 공책. 연필과 만년필.

누가 밟지 않으면 삐걱이는 소리조차 내지 않는 바닥의 나무판과 칙칙한 색의 벽지.

그리고 시체처럼 누워있는 사람 하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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