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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Jan 05. 2021

호칭은 생명이다.

말이 생각을 조종하는 법이라니까.

"자기는 진짜 특이하더라?"

"네?"


"왜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을 그냥 선생님이라고 불러?"


내가 일을 시작한 첫 해에 어느 날 교무부장 선생님이 다정하게, 그러나 용건이 있는듯한 목소리로 말을 붙여왔다. 그리곤 영문을 몰라하는 내게 금세 본론을 꺼내셨다. 그렇다.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을 그냥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 거였다. 대학교를 갓 졸업한 내가 '교장'과 '교감'이라는 호칭의 중요성을 알 리 없었다. 일가친척 중 선생님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교대 수업시간에 가르쳐주지도 않았으니까. 학교에서 일하는 모든 분들은 모두 똑같은 선생님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어이없는 소릴지 모르지만 내게 이 일은 제법 큰 충격적이었다.


그래,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은 그냥 선생님들과는 다르구나. 그때 처음 선생님들의 호칭 앞에 붙는 직급이 이들 사이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다. 조금 더 지나서는 또 그 안에서 다시 그냥 선생님들과 '부장 선생님'들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또 조금 더 지나서는 '부장 선생님'들 중에서도 '교무부장 선생님'은 또 좀 더 특별하다는 사실을 알음알음 깨닫게 되었다. 어린아이에게서 사회화가 일어나듯 나 역시 직장 생활 속 규율을 하나하나씩 습득해갔다.




이전까지 나에게 호칭이란 마음의 거리를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정중하던 느낌의 '어머니', '아버지' 보다는 '엄마', '아빠'를 선택해 내 애정을 보이고, 친한 친구나 연인에게는 나만의 애칭을 붙여 우리의 가까움을 더 강하게 느끼게 했다. 그래서 사회에서도 같을 줄 알았다. 처음 발령받아 어색한 사이의 모든 분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다가, 더 가까워지면 ㅇㅇ쌤~ 하며 살갑게 변화하는 마음의 거리도 드러나는. 직장에서 친구 사귀는 거 아니라지만 어쨌든 더 가깝게 느끼는 사람은 생기는 마련이니, 그런 내 마음을 드러내는 수단 정도라고 느꼈었었다. 그러나 '교장 선생님'이 주는 호칭의 무게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나의 생각과 사회 속 호칭이 다르구나를 깨닫게 해 주었다.


생각해보면 여느 회사들도 다들 직급을 호칭으로 활용하니, 그다지 놀라운 발견도 아니었다. 부장님은 부장님, 과장님은 과장님이듯 교장선생님도 교장선생님, 교무부장 선생님도 교무부장 선생님이었을 것이다. 조금 길긴 하지만, 그게 뭐 별거라고. 단지 이제껏 직급이 들어간 호칭을 겪어보지 못했던 내게는 다소 새로운 세계였다. 놀랍게도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이라고 호칭이 못 박힌 순간 상하관계가 명료해지고, 나는 그 호칭을 부를 때마다 한번 그분들은 관리자이고 나는 일개 교사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으니까. 내 윗사람으로 타인을 명명하는 순간 나는 이유 없이 작아짐을 느꼈다. 호칭의 힘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언어란 참 신기하다. 우리가 의사소통을 하게 해주는 도구이면서 또 은근슬쩍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니까. 호칭에 상하관계를 부여하는 순간 알게 모르게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위치로 인식하게 된다. 호칭이 먼저인지, 직급이 주는 위력을 인지한 내 감정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둘은 상호작용을 하며 사회적 상하관계를 더욱 공고히 한다. 수직적인 관계가 좋네, 나쁘네 식의 가치판단도, 필요하네 필요 없네의 당위성도 논하지 않겠다. 어쨌든 우리 사회의 모든 곳에 직급은 존재하니까. 그러나 호칭이 가진 힘이 업무에 필요한 직급을 넘어 사람 간 상하관계를 만들어내는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분명 문제다.


최근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직급을 없애고 상호 간에 ㅇㅇ님으로 부르기로 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호칭이 권위적인 기업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했음을 인정하는 사례이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의 움직임에 발맞춰 거듭된 혁신을 필요로 하는 기업에는 과거의 권위주의가 넘어야 할 장벽이었을 것이다. 요즘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가족 간 호칭 개선'도 이러한 이유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시댁'과 '처갓집'. 세세하기 들어가지 않고 대표적인 두 단어만 두고 비교해도 하나는 '댁', 하나는 '집'으로 한쪽을 높여 부른다. 당연히 단어에서 느껴지는 무게가 다르니까. 이제껏 당연한 듯 사용해 왔더라도, 불합리한 상하 관계, 사람 간의 '급'이 발생하게 하는 호칭은 개선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호칭은 생명이다. 이것은 살아 움직이고, 무의식을 잠식하고, 끝내는 조종 한다. 어찌 보면 고작 남을 부르는 수단에 불과한데, 알고 보면 우리의 감정이 그들을 따른다. 우리는 평생 남들을 만나고, 그들에 합당한 호칭을 부르며 살아갈 것이다. 호칭이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불합리한 관계를 조장하지 않도록 우리는 언제나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이전에 '이모와 고모의 차이'라는 글을 썼을 때 한 분이 댓글로 '이모는 또 다른 엄마, 고모는 높은 엄마'라는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그 말이 참 와닿았었는데, 이 글을 쓰며 어쩌면 제가 느꼈던 심리적 거리감의 차이도 여기서 기인한 건 아닐까 다시 한번 더 생각해봅니다 :)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을 그냥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다는 내용의 글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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