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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Dec 04. 2020

교수님, 일방적으로 수업 일정을 바꾸시면 곤란한데요.

오스트리아와 한국의 대학, 학생과 교수의 관계

그러니까, 수업 중에 있었던 일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계획되어있었던 수업이었고, 9시에 수업에 들어가 보니 교수님은(정확히 말하면 교수님들이었다. 한 과목을 여러 교수님이 나눠서 가르치는.) 오늘 수업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있을 거라고 하시며 오늘 수업 계획에 대해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교수님, 예정되어있던 수업 시간을 바꾸시면 곤란한데요.

저는 다섯 시에 약속이 있어서요."


수업을 듣는 열한 명의 학생 중 한 학생이 말했다. 교수님은 이주 전쯤 학교 모듈에 공지한 사항이라고 설명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수강 신청 당시 계획되어있던 수업 일정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것은 곤란하다고 학생은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영어로 진행된 대화이기에 번역하며 나름 당시의 상황과 어감을 옮기기 위해 노력했다.)


오전 수업을 마무리할 때에는 다른 학생이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수업 스케줄은 너무 무리한 진행인 것 같네요. 

강의에 토의에 발표까지, 하루만에 하기엔 너무 많은 것 같은데요."


그리고 다른 학생들도 저마다 동의한다며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교수님들은 다소 당황하신 것 같았으나 학생들의 의견을 듣고는 오늘의 일정도 최대한 조정해보고, 다음 수업 스케줄 역시 다시 한번 확인해보겠다고 답변했다.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때, 3학년 때쯤인가, 그러니까 7년 전쯤 있었던 일이다.


교수님 한 분이 일방적으로 수업을 취소하시더니 수업이 없던 다른 날로 보강을 잡으셨다. 내가 다녔던 교대 특성상 시간표를 개별적으로 짜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 과별로 구성하고, 그렇기에 한 과 학생들이 모두 같은 시간표를 가지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날 이미 오래전부터 잡힌 일정이 있었고, 교수님께 따로 찾아가 상황을 설명해보았지만 교수님은 결석을 잡으셨다. 출결이 중요한 과목이었기 때문에 덩달아 내 성적은 한 단계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당시 학생이었고, 교수님께는 또 무척이나 공손한 편이었던지라 '네, 알겠습니다, ' 하고, 더 보태서 '죄송합니다.'라고 사과까지 드렸다. 물론 마음속은 물음표로 가득 채운채. 물론 수업을 빠지는 건 결석이 맞지만, 기존에 있던 일정을 교수님 재량대로 바꾸는 건 괜찮고 학생의 상황은 고려되지 않는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논리대로라면 교수님 일정 때문에 수업 시간을 바꿨으니, 내 일정도 고려해서 수업시간을 다시 바꿔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



한국에서 '교수'의 권위는 그야말로 대단하다. 많이 배웠고, 대학교에서 성인인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그 직업이 주는, 특히 대학생들에게 주는 성적 결정권을 쥔 자라는 그 위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분들이 수업 일정을 바꾼다면 바꾸는 것이고, 학생은 양해를 구하기 위해 애쓰거나 아니면 그 결정을 따르는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업이라는 건 원래 학생과 교수, 혹은 교사가 함께 하는 것이고 모두가 동의한 기존의 계획에 변경이 있어야 한다면 다시 모두에게 동의를 구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한 사람의 상황에 맞춰 수업 일정이 이리저리 변경되는 건 불합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교수든 학생이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오스트리아 수업은 실은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이고, 나는 점심시간을 틈타 글을 쓰고 있다. 한국에서 29년을 살아오고,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한국에서만 다녔던 나로서는 오늘 경험은 상당히 인상 깊은 일이었다. 라트비아의 경우 일정을 변경할 경우 사전에 학생들에게(우리 7명에게) 모두 동의를 받고 진행되었기에 수업 중 학생들이 수업 일정에 대해 항의하는 일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물론 문화적 차이라는 요인을 무시할 수는 없으나, 나는 이게 맞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시간도 소중하다. 학생들의 일정도 존중되어야 한다. 교실 안 모든 결정권을 가르치는 사람이 가졌다고 생각하는 시대는 벌써 전에 끝났어야 했다. 이것은 단순히 수업 일정을 바꾸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 결정 과정의 문제이고, 소통 방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7년쯤 된지라, 지금의 대학 문화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사회가 변화하고 우리의 생각이 변하고 있기에, 대학의 모습도 이에 발맞추어 가고 있는 중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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