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R Dec 21. 2020

직장인에게 교통사고란

교통사고가 난 후 가장 먼저 한 것은 출근 걱정이었다.

'저 차가 왜 나한테로 오지?'


여느 때와 같은 평화로운 출근길이었다. U턴을 하기 위해 1차선에 나란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차들 옆으로 나는 3차선을 타고 직진을 하고 있었고 곧 차선을 바꿔야 해서 왼쪽 사이드미러를 보는 순간, 왠 SUV 한 대가 줄지어진 차들 뒤로 중앙선을 넘더니 대각선으로 내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저 차가 나를 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차가 부딪혔다. SUV는 내 차의 운전석 쪽을 친 후 다시 회전하면서 차량의 뒷부분으로 내 차의 뒷문을 긁고 도로 한가운데 섰고, 튕겨나간 내 차는 인도 바로 옆에 가서야 멈춰 섰다.


사고를 겪어본 건 처음이라 머릿속이 하얘졌고, 충격을 받아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웃기게도 그때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학교였다. 당장 내가 출근하지 않으면 담임 없이 남겨질 우리 반 아이들과 한 달 후 있을 감사로 인해 처리해야 할 산더미 같은 서류들. 덜덜 떠는 손으로 교감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내가 사고 소식을 전했고, 걱정하시는 교감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내 현재 상태에 대한 자각이 되기 시작했다. 사고 당시 충격으로 머리와 어깨를 차 프레임에 부딪혔고, 길가던 사람들은 아침부터 난 소란을 구경하러 창문 주변을 기웃기웃했다.


심호흡을 두어 번 하고 밖으로 나가려 문을 열었는데, 앞문이 찌그러져 아무리 힘껏 밀어도 열 수 없었다. 다시 내 속 깊은 곳에서 공포감이 올라왔지만 애써 침착해보며 몸을 틀어 조수석 문을 열고 나왔다. 주변을 보니 그 차의 것으로 보이는 번호판과 파편들이 즐비하게 늘어져있었고, 내 차의 앞유리엔 금이 가고 사이드 미러는 빠져서 덜렁거렸다.


부들부들 떠는 내 위로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졌고, 보험 회시 직원들이 도착하자 나를 친 SUV차랑 운전자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내게 자신이 신호를 받고 U턴을 했는데 맞은편에서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던 차가 자신의 차를 쳤고, 충격으로 자신이 다시 중앙선을 넘어와 당신의 차를 쳤다,라고 내게 상황 설명을 했고 나는 여전히 거기까지 신경 쓸 새가 없어 '아 네, '하는 짧은 대답과 함께 보험사 직원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보험 회사 직원들끼리 이야기가 오가고, 내 차의 사진을 이 사람 저 사람이 찍고, 곧 보험회사에서 부른 견인 차량이 도착해 내 차를 견인해갔다. 견인 직전 그간 내 차 안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트렁크에 보관해왔던 유학 관련 서류들을 다급히 챙겼고, 나 대신 여기저기 깨지고 찌그러진 내 차가 견인되어 가는 것을 허망하게 바라보아야 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내 차를 친 SUV 차량은 불법 유턴을 한 거였고, 맞은편에서 오던 차량에 치여 반 바퀴를 돌아 다시 중앙선을 넘어 나를 친 거였다. SUV와 1차로 추돌한 차량도 충격으로 반대편으로 튕겨나가며 반대쪽 갓길에 있던 차량 두대를 받아서, 총 5대의 차량이 박살난 제법 큰 교통사고였다. 입원한 뒤 정확한 사고 경위를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아 맞은편 차량의 잘못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나는, 나중에 병원에서 만난 맞은편 차량 운전자의 설명을 듣고서야 상황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병원에서 마주친 그가 내게 인사를 할 때면 '교통사고를 내놓고 내게 저렇게 살갑게 인사하다니!'라고 마음속으로 구시렁거리곤 했었는데, 나중에 전말을 알고서는 되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더랬다.




그 교통사고의 여파로 나는 9일간 입원해있어야 했고, 그 뒤로도 통원치료를 받으러 먼길을 제법 오랫동안 왔다 갔다 해야 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SUV가 사이드미러 아래쪽을 쳤다는 것인데, 만약 조금만 뒤쪽이었다면 정확히 운전석을 덮쳐 모든 충격을 내 몸으로 받아낼 뻔했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나빴다고 해야 하나. 출근을 해 보니 입원 기간 동안 동료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많은 일이 처리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내가 책임지고 해야 할 부분이 있어서 다시 출근을 시작한 후에는 통원치료와 야근을 번갈아가며 해야 했다. 담임 선생님의 사고 소식에 덩달아 놀란 아이들도 진정시키고 그간 다소 엉킨 수업 진도도 다시 바로잡아야 했다.


교통사고 후 충격은 내 머릿속에서 제법 오래 지속되었다. 차가 내게 달려오는 것을 직접 목격한 탓에 다시 운전을 하기까지 꽤 오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고, 교통사고 순간 이외에도 입원 기간에 생긴 일들, 차량 수리, 조금 미심쩍은 합의 과정까지 많은 일들을 짧은 기간 동안 겪어내야 했다. 그러나 그 많은 사건을 뒤로하고 지금 와서 그 교통사고를 떠올릴 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교통사고 직후 가장 먼저 한 생각이 출근 걱정이었다는 것이다. 사고 직후 가장 먼저 전화 한 곳이 학교였고, 쌓인 업무와 우리 반 아이들 생각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서글프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렇지 않을까. 자신이 맡은 일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기면 출근 걱정부터 하게 되는 것. 더 나아가 교사들은 우리 반은 어떻게 하지, 라는 걱정까지 한 스푼 더 얹어진다. 나는 교통사고를 겪으며 현대인의 책임감과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사는 사람들 현실이 다 그렇다. 온갖 걱정에 마음대로 아파보지도 못하는 것. 사람이 일하는 이유가 다 잘 살아보겠다고 하는 건데, 정작 내 몸 걱정보다 일 걱정을 하다니, 뭔가 주객이 전도된 듯, 아이러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그 아이에게 이기적으로 살라고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