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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Dec 15. 2020

우리 부모님이 낸 세금으로 월급 받잖아요

그러니까 저한테 잘하세요

'선생님은 우리 부모님이 낸 세금으로 월급 받는 거잖아요'라는 말.


틀린 말이라는 게 아니라, 그 말속에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라'를 함축한 그런 말. 실제로 들어본 선생님도 꽤 있을 테고, 혹은 몇 반 누구가 어느 선생님께 그런 소리를 했다더라, 하는 소리를 들어본 선생님들도 많을 거다. 꼭 악의를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더라고, 가끔 아이들은 머릿속에 있던 말의 수위조절을 전혀 하지 못한 채 농담이랍시고 해서 사람을 당혹스럽게 할 때가 있다. 나는 아직 이 말을 직접 들어 본 적은 없지만, 주변 선생님으로부터 사회시간에 경제 수업을 하다가 이런 말을 들었노라고, 이 말을 뱉어놓고 아이는 웃더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실은 초등학생의 경우 스스로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세금이나 공무원, 월급의 관계를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가 드물다. 초등학생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의 이유는 대부분 하나다. 집에서 부모님이 아이 앞에서 '선생이 우리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아놓고-'식의 소리를 한 거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집에서 있었던 일, 부모가 했던 소리를 학교에 와서 그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나는 체육 대회 다음날 아이가 활짝 웃으며 다가와 '선생님, 저희 아빠가 선생님 보고 '완전 애' 래요.'라는 소리를 한 적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아이들은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안다기보다는 집에서 부모가 웃으며 하길래 교사도 따라 웃을 줄 알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렇게 어른의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듣고 기억하고 교사에게 전달하던 아이들은, 자라면서 그 말의 가치관까지 흡수하기 시작한다.




요즘 교사들의 처지는 그렇다. 물론 교사뿐만 아니라 많은 공무원들의 처지가 그렇다. 나는 내 자리에서 맡은 바 임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일하는데 마치 세금을 축내는, 국민이 준 월급 받아놓고는 아무것도 안 하는, 그러면서도 철밥통을 가진, 그런 집단으로 여겨진다. 안타깝게도 요즘 교사의 처지는 완전한 '을'이라 학생에게도 학부모에게도 항변할 수 없다. 참 이상하다. 새 갤럭시 스마트폰을 샀다고 삼성에 쫓아가 내가 너희 월급 줬다!라고 소리칠 것도 아니면서 공무원이나 교사가 받는 월급에 대해서는 굉장히 부정적이다. 실은 모든 이의 수입은 다 당신의 지갑에서 나온 돈, 또 내 지갑에서 나온 돈과 복잡하게 관련되어 있을 텐데. 아마 세금이라는 게 대가 없이 돈을 내는 거라는 느낌이 들어서 그러나 보다.


어떤 이들은 조금만 수가 틀리면 교장실로 뛰어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학교에서 일단 큰 소리를 내고 보는 사람들 대부분은 세금을 냈으니 내가 고용주다, 그러니 내가 낸 돈으로 월급 받은 서비스직 피고용인인 너희는 알아서 내게 잘해라, 라는 표현을 꼭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런 부모의 가치관을 흡수한 아이들은 어느덧 교사들에 대해 '우리 부모님이 고용했으니 내게도 잘해라'라는 마음을 가지기 시작한다. 아이들에게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그저 돈의 흐름에 따라 강자와 약자가 양분되는 피고용인과 고용주의 자녀 정도의 관계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교사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기 시작한 아이들은 매사에 교사의 의도를 삐뚤게 보게 된다.


마음이 아프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아무리 우리를 미워하고 돈을 아까워해도 이미 낸 세금은 환불이 안된다. 우리는 또 당신들이 낸 세금이 한 방울 들어간 월급을 받고, 묵묵히 일을 해 나갈 거다. 당신들이 아무리 불평을 해도 거기에 대해 반박할 말도 없고, 당신들과 싸울 수도 없다. 실은 싸우고 싶을 만큼 그렇게 미운 감정도 없고, 과거의 기억 혹은 편견으로 인해 우리를 싫어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도 이젠 그다지 상처 받지 않는다. 그저 그런 생각을 갖게 될 동안 그들이 겪었을 많은 부당한 일들에 대해서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우리, 흔히 말하는 요즘 젊은 교사들이 바라는 것은, 당신들이 그렇게 아이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했을 소리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해서 부모가 한 말도, 그 말에 실린 감정도 그새 알아차리고 쭉쭉 흡수해낸다. 부모가 아무 생각 없이 신세한탄처럼 했을 말이 아이에게는 교사에 대한 묘한 불편함을, 사회에 대한 경계심을 심어줄지 모른다. 우리는 월급 받는 대로 열심히 일하는 요즘 세대의 교사들이라, 어떤 아이들이든 차별 없이 품어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으나, 품어지는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이미 아이의 머릿속에 당신들이 만들어준 세상이 결정한다.


과거에 묶여 사느냐, 현재를 살아갈 것이냐에 대해 우리가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당신이 살았던 사회와 아이가 살아갈 사회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당신이 묶여있는 오랜 전의 기억을 아이의 머릿속에 심어둔다면, 아이는 자신의 앞에 새롭게 펼쳐질 사회를 30년쯤 전의 사고방식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사회에 대한 무조건적 적대감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편견보다는 열린 마음을 심어주기를. 요즘 교사들이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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