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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Dec 12. 2020

학생들 화장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초등학생들의 화장과 교사의 역할

"ㅇㅇ선생님, 애들 화장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동학년의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나는 아차, 싶고 난감함이 몰려온다. 우리 엄마 또래의 옆 반 선생님은 다년간의 교직생활로 쌓인 학생 생활 지도 능력과 탁월한 교과 지도, 확고한 교직관으로 내가 항상 존경하던 분이다. 항상 본받고 싶었던 분이지만, '화장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하는 질문 앞에 내 말문이 턱 하니 막히고 말았다.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고, 다만 살짝 눈치를 보고 어색하게 웃고 있었을 내 표정은 대충 상상이 간다.


아이들 앞에서는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한다고 하는데, 실은 조심해도 그다지 소용이 없을 때가 많다. 아이들의 구전은 어른들의 것 보다 변화무쌍해서, 내 입에서 나온 말이 학생들의 말을 건너 건너 옆 반 선생님 귀에 들어갔을 때 나는 화장을 권유하는 교사가 되어있었다.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의 화장에 대한 나의 지도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으셨으나, 화장과 학생의 본분에 관한 본인의 확고한 생각을 설명하시기 시작했다. 동료 교사인 나를 존중해 정중하게 '화장 금지'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으시다는 걸, 내가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학교를 다닐 적에 화장은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그때 당시 외모에 관심이 많던 학생들이 연한 연두색 빛을 띠는, 바르면 얼굴이 하얘지는 '컬러 로션'이라는 걸 구해다가 바르기 시작했고, 중학교에 들어가자 샛 빨간색의 립밤과 BB크림을 애용했다. 그때 당시만 해도 화장은 교칙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에, 화장품을 압수하는 선생님들과 숨기면서 어떻게든 화장을 해 보려는 학생들의 줄다리기가 매일 일어났다.


그러던 화장이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서 공식적으로 허용되는 세상이 왔고, 이제 교사가 학생의 화장품을 압수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화장에 대한 관심은 초등학교까지 불어와서 빠른 아이들은 이미 초등학교 이삼 학년만 되어도 콤팩트 모양을 한 선블록을 가지고 다니며 얼굴을 톡톡 두들기고, 색이 들어간 립밤을 바른다. 학생들에게 이 화장품 어디서 났어? 하면 보통은 엄마가 사줬어요, 한다. 하지만 가끔 문구점에서 사 온 천 원, 천 오백 원 짜리 립글로스를 입술에 바르는 학생들을 마주할 때면 덜컥, 겁이 난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직면한 현실은 중고등학교와는 또 다른 고민이다. 이것은 화장을 해도 된다, 안된다의 문제가 아니라, 교사들도 전문가가 아닌지라 안에 뭐가 들어갔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정체불명의 화장품을 얼굴과 입술, 그리고 심지어 눈에 바르는 모습을 보며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학생이 화장을 하고 말고의 여부는 이제 더 이상 학교에서 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아직도 많은 선생님들은 화장을 막아보려 노력하신다. 특히 학생의 생활 지도에 열심히이신 선생님들이실수록 그렇다.


나는 화장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마음과 화장을 막으려고 하시는 선생님들의 마음이 동시에 이해가 돼 난감하기 그지없다. 실은 모르는 척하고 지나치면 교사도 편하다. 지적하면 '선생님도 화장하잖아요', 라거나 '저희 화장 못하게 하는 거 불법 아니에요?' 하는 머리 큰 소리를 하는 학생들을 보면 더 그렇다. 가끔은 학부모가 전화해 '저희 애한테 뭐라고 하셨어요?' 하며 항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어린아이들의 화장을 막아보려는 선생님들의 노력은 옆에서 내가 지켜보기에도 감동적이다.


학부모들 의견도 제각각인지라 고학년 담임을 할 때면 몇몇 엄마가 상담을 하러 와서 '아이들 화장 좀 막아주세요', 하고 몇몇 엄마는 '저희 아이는 화장에 너무 관심이 많아서 제가 그냥 사줬어요~ 이해해 주세요 선생님', 한다. 교실에서 'ㅇㅇ이는 화장해도 되고 ㅁㅁ는 안돼~' 할 수 없는 나는 또 난감해진다.


아직은 옆 반 선생님보다는 우리 반 아이들과 나이가 더 가깝던 나는 혹시 공감대를 형성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열심히 설명해보았다. 너희에게 화장을 못하게 하는 옆 반 선생님은 혹시나 질이 좋지 않은 화장품을 발랐다가 약한 너희 피부에 해가 될까 봐 걱정돼서 그러신다고. 그러니 너희를 걱정하시는 옆반 선생님 앞에서도 굳이 화장을 하는 건 걱정하시는 선생님에 대한 배려가 아니지 않겠냐고.


실은 그 말을 하는데 나는 내 의견과는 별개로 내가 조금 비겁하다고 느꼈다. 양 쪽 모두에게 내 주관을 확실하게 말하지 못하는 비겁함. 두 개의 강력한 주장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중재해보려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것도 웃겼고, 괜히 회색 종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그 기분을 누르며 어떻게든 선생님과 학생의 갈등을 막아보려는 내 속도 모르고 학생들은 '네~'하고 이해하나 싶더니 돌아서서는 또 누가봐도 하얗게 백탁이 온 얼굴에 어색하도록 빨개진 입술을 하고 옆반 주변 복도를 종종종 누빈다. 모두를 만족시킬 능력이 없는 교사는 무력감을 느낀다.


그래서 내 의견을 묻는다면, 타인의 입장에서 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학생들이 화장을 하는 것에 자체에 대해서는 나는 별 생각이 없다. 티브이에서 모든 사람들이 온갖 방법으로 화장을 하고 나오고 주변 사람도 다 화장을 할 텐데 아이들이 화장에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어른들이 그렇게 만들어놓고 아이들에게 화장을 해도 되네 안되네 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이 문제는 전적으로 학생이 선택할 문제이고, 법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내가 참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선생님의 마음으로 학생들에게 항상 설명한다. 화장을 금지하지 않는 건 너희의 의견을 존중하기 때문이지만 또한 너희를 걱정하기에 되도록 안 했으면 한다고. 너무 이른 나이의 화장은 너희 피부에 좋지 않다고.


솔직한 심정은, 그냥 교육부와 어느 실력 있는 화장품 회사가 손을 잡아 '어린이가 써도 무해한 화장품'이라도 공식적으로 내놓았으면 좋겠다. 막을 수 없으니 안전할 수 라도 있게 말이다. 교사로 산다는 것, 정말 녹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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