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잠든 사람

(5) 빈대떡과 소쿠리

by Zwischenzeit



가파른 계단을 올라오면 문도 닫지 않고 항상 열려있던 삼촌 방 옆은 창이 하나 있었는데, 이 창은 그 건물에서 열 수 있는 유일한 후면 창문이었다. 철도 바로 옆이라 전철이 시도 때도 없이 지나갔고 너무 가까워 때로는 진동이 마구 느껴졌다. 나는 그 창문을 좋아해서 창문을 열고 전철이 지나가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기다리기도 했다. 창을 내려다보면 1층짜리 집들의 지붕만이 보였으나 나는 무서워하면서도 곧 내려가 보기라도 할 것처럼 어떻게 내려갈 수 있을지 생각하기도 했다. 집은 좁아도 명절이면 가족들이 터질 듯이 모이기도 해서 빈대떡을 온종일 내 부쳐 이제는 소쿠리를 놓을 공간이 없을 때쯤 그 창가에 얹어 놓았다. 잘 식혀진 빈대떡은 아슬아슬하게 놓여있었고 굳이 나는 창 아래를 내려본다고 하다가 그만 소쿠리를 쳐서 통째로 밑으로 떨어뜨려 버린 적이 있다. 빈대떡은 허공을 날아 더러운 지붕들 위로 흩어졌는데, 그 장면이 그때나 지금이나 슬로우모션으로 재생된다. 그때의 나는 그 순간의 장면이 특정 필름 구간이 무한 재생되듯 기억하게 될 줄 알았을까. 그 아까운 빈대떡을 버리고도 많이 혼나진 않았지만, 그 이후로 그 창문 가까이 가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빈대떡들은 어떻게 되었을지 뒤에 장면이 끊겨있어서 의문으로 남아있다. 먹을 순 없지만 잘 주워왔다면 빈대떡을 주울 수 있는 사람은 삼촌들뿐이었을 텐데, 그 창을 통해 내려가 주웠을지 그 지붕 밑 사는 사람에게 양해를 구해 주섬주섬 주웠을지 아니면 그냥 버려두었을지 모르겠다.


대학생때 동기들과 광장시장에 간 적이 있다. 작업재료나 빈티지 옷들을 구경한다는 명목으로 갔다가 입구에서부터 강하게 진동하는 기름 냄새에 친구들은 이끌려갔다. 건어물이나 약, 잡화들을 취급하는 점포들과 달리 막걸리와 전을 파는 광장시장 길 가운데의 점포들은 사람들로 붐볐다. 결국, 그곳을 지나치지 못하고 찰랑거리는 기름에 거의 튀겨지듯 부쳐진 빈대떡을 한 장 받아 모르는 사람들과 어깨가 닿을 정도로 붙어 앉았다. 내가 명절 내내 부치던 것보다 훨씬 크고 두꺼웠으며 찢은 달력 종이 위에서 기름을 빼며 식히던 할머니의 빈대떡과는 달리 기름을 한껏 머금고 있었다. 친구들은 맛있게 먹었다.


나는 빈대떡이 있어도 잘 먹지 않았다. 술 한잔을 하러 가도 빈대떡이나 지짐이는 잘 시키지 않았다. 전을 부치는 집과 전에서 나는 기름냄새에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가스버너 앞에 앉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부터다. 명절이면 눈을 다 뜨지도 못한 채 대충 옷을 주워입고 아빠 차를 타고 할머니 집에 가야 했다. 아침부터 전을 부쳐야 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많이 모였을 때는 그게 그렇게 고역인지 몰랐다. 할머니 집에 모이는 사람들 수가 줄어도 이상하게 부치는 빈대떡의 양은 줄지 않았다. 동인천 현대시장이나 중앙시장에 가서 미리 곱게 갈아온 녹두에 썰은 김치와 돼지고기를 섞는 것을 시작으로 밤이 깊을 때까지 온종일 부쳤다. 그 많던 빈대떡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것들은 봉지에 나누어져 누군가에게로 전해졌다. 부디 맛있게 남김없이 먹었기를 바란다. 왼쪽 다리를 깔고 오른쪽 다리는 무릎을 앉은 자세로 한 국자에 적당한 양을 담아 후라이팬에 쉴 새 없이 날랐다. 빈대떡이 잘 부쳐지려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기름이 필요했다. 그렇게 부친 빈대떡, 동태전, 호박전, 고기전을 일주일간 반찬 삼아 밥을 먹었다. 전을 다 부치고 일어나면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그러다 잠시 동안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만두를 한참 빚었다. 명절 당일 아침부터 모두가 모여서 먹을 만둣국을 위한 것이었다. 이북식 대형 만두는 아이든 어른이든 한 사람 앞에 못해도 두 개 이상은 의무였다. 그렇게 꾸역꾸역 먹었던 나는 지금 만둣국을 웬만해선 잘 안 먹는다.


생각해보면 빈대떡을 부치는 행위가 의식과도 같은 일이었다. 할머니도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것 같진 않은데 그럼 누가 좋아했던 걸까. 밥상에서도 빈대떡은 인기가 없었고 늘 고기전부터 동이 났다. 게다가 할머니는 명절에 질 좋은 고기로 볶은 불고기를 더 좋아했다. 배를 썰어 넣은 국물이 자작한 불고기. 빈대떡은 맨 첫 장을 부칠 때 간을 보겠다고 먹은 게 전부인 때도 있었다. 언젠가 딱 한 번 할머니가 미리 챙기지 못한 재료들을 가지러 가겠다고 아빠와 현대시장에 간적이 있다. 구불구불한 시장길을 따라 미리 전화로 주문해 놓은 재료들을 받으면서 참 무겁다는 생각을 했다. 할머니의 걸음과 악력과 팔힘을 생각했을 때 며칠에 걸쳐 하나씩 가져다 놓아야 가능한 양이었다. 그게 꼬박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된 거다.


지금 할머니 집에 가면 소쿠리들은 한편에 포개져 먼지가 덮여있고 달력은 더 이상 찢겨질 필요가 없다. 그만한 양을 부칠 이유가 사라졌다. 다만 여전히 빈대떡과 전들을 부쳐 먹는다. 명절마다 났던 기름 냄새가 끊길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가끔 별미로도 먹는데, 이런 현상이 조금은 기묘하다. 다른 가족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약간의 반가움으로 먹을 때도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어찌 됐든 이어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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