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헨님 Apr 17. 2022

친애하는 나의 90년대생 동료들

나타나 주어서 고마워!

 어쩌면 권위 있는 선배는 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근 1년간 열 살 이상 차이나는 후배를 줄줄이 3명이나 받는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각각 함께 한 기간은 길지 않았고 모두 아주 가까운 감정을 주고받는 친구가 되어 버렸다. 96년생 수연, 97년생 지혜, 그리고 지금의 인턴사원인 98년생 지은이까지 각각 약 3개월의 기간을 선후배로 지내면서 자유로운 농담을, 애정의 말을, 거침없는 감정 표현을 진하게 나누었다. 함께 일할 때는 꼭 커피를 함께 사러 가고 서로가 출근하기만을 고대하는 사이로, 물리적 거리가 멀어진  이후로는 따로 만나 식사를 하고 시시하고 웃긴 일들을 메시지로 시시콜콜 주고받으며 지낸다.


 지난 화요일 저녁, 지혜를 만나 두 시간 동안 저녁을 먹고 밤이 깊어질 때까지 벚꽃나무가 이어지는 캠퍼스를 구경하며 드라이브를 했다. 서점에 갔다가 수연을 생각하며 캐릭터 굿즈를 사 두었다. 오늘 지은이는 주말과 밤 시간임을 개의치 않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곧바로 기분이 좋아지는 우리 만의 유머 코드를 나누고 현실 웃음을 터뜨리며 몇 번 메시지가 오간 후에 나는 다시 저녁식사로 돌아갔다. 그러다 갑자기, 이렇게 경계 없이 애정을 나누는 후배들이 줄줄이 나타난 것이 꽤나 신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연은 작년 내 생일에 첫 출근을 했다. 면접을 통해 직접 뽑은 계약직 조연출이었다. 취준생이었고, 대학 후배였고 나보다 열 살이 어렸고 처음엔 이토록 어린아이 앞에서 어떤 콘셉트의 사람이어야 할지 몰랐다. 회사의 과장님으로서의 스스로를 그럭저럭 꾸며내는 내 앞에서 그 아이는 아주 자연스러웠는데 그 덕분에 나도 힘을 주어야 할 필요를 잊어갔다. 그러다 보니 아주 편안해져서 그 아이의 예쁘고 사랑스러운 면이 정확히 보였다. 촬영을 나갈 때 차 안에 자신이 시간을 들여 모은 근사한 플레이리스트를 틀어 두는 것, 쓸데없이 잘하려고 한껏 애쓰지 않는 점, 취업준비를 하면서 미래의 걱정을 하나도 끌어다가 하지 않는 모습이 모두 모두 대견했다. 나는 매일 수연이 있어서 회사가 한창 더 좋았다. 대화를 주고받는 리듬감, 좋아하는 것에 호들갑을 떠는 정도도 비슷했다. 수연의 짧은 계약이 끝난 뒤에도 우리는 아지트 같은 카페를 하나 만들어 한 테이블에서 각자 일도 하고 마음껏 수다도 떨곤 했다.


 지혜는 수연이 나가고 곧바로 들어온 신입이었다. J시라는 작은 동네에서 온 그 애는 너무 말랐고 너무 위태로워 보였다. 그 아이를 아무도 찌르지 않게 매일 손을 잡고 다녔다. 회사 정문을 나가면 있는 한적한 전원마을, 그곳을 둘이서 크게 크게 동선을 잡아 돌았다. 낯선 서울 생활의 고단함과 첫 회사의 설렘에 관하여 듣고 공감하곤 했다. 나는 퇴직 인사를 하면서 선배들과 동료들 앞에서 참 많이 울었지만 소리를 내어 엉엉 울어 버린 것은 지혜 때문이었다. 손바닥만 한 카드 양쪽을 꼭꼭 채운 편지글을 집에 도착하자마자 꺼내어 읽고 바닥에 눈물을 뚝뚝 떨구며 울었다. 짧은 시간 우리가 나눈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서로에게 어떤 형태의 위안을 받았는지를 전심을 담아 쓴 글은 너무 강력했다. 그 애가 일의 실체를 알아갈 때쯤 나는 다른 회사로 떠났고, 지나고 보니 서로가 나약해지던 시절을 함께여서 무사히 관통했던 게 분명했다. 그 애에게 무리하게 비싼 밥을 사 주는 게 하나도 안 아까운 걸 보니, 나는 이 아이를 오래 볼 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새 회사에서 만난 나의 사랑스러운 후배, 지은. 네가 없으면 언니는 할 수 없었을 거야, 라는 말을 어쩐지 자주 하게 된다. 새롭게 이끄는 프로젝트를, 정말로 지은이 없었다면 놓아버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필요한 일을, 생각한 것 이상으로 해내는 아이. 그 노력을 꼭꼭 기억해 두었다가 큰 소리로 모두에게 알리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나를 보완해 주는 동료가 나타나기도 한다는 점에서 때로는 회사가 기적 같고 축복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라면 해낼 수 없다. 나는 절대로, 동료가 필요하다.


 회사를 오랜 시간 다니는 동안, 나를 채워 줄 조각이 어떤 모양이어야 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지은이 온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지. 이직 첫 주에 인턴 면접에 참석했을 때 갓 입사한 나처럼 긴장한 이 아이를 보고 얼마나 마음이 갔던지. 눈을 반짝이며 멋진 포트폴리오를 소개하는 모습에 살짝살짝 눈을 맞추어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지은은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내가 어디서든 마음껏 해맑을 수 있는 건 그런 사람들 덕분이다.

 다음에 만나면 주고 싶은 선물을 자꾸만 사 모으게 되는, 예쁜 구석만 자꾸 발견해 버리는 고마운 나의 에센셜 인물 리스트. 그중에서도 함께 일을 해도 온전히 순조로운 사이라는 한 차원 높은 검증을 거친 이들. 그 얼굴들을 생각하면 매번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이 하나도 괴롭지 않았다. 덕분에 월요일도, 목요일도 모두 억지로 일터로 끌어내지는 기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후배들의 이름은 모두 끝 음절을 변형해 작성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메일함을 열면서 생각한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