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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플래닛 Nov 18. 2021

직장인의 쌀(rice)끌로 밥 짓는 시간

영끌하듯 쌀끌!


얼마 전 미니 밥솥을 장만했다.

햇반을 먹으며 그럭저럭 버텨 왔는데 이번에 본가에 내려가 따뜻한 집밥을 먹고 다시 서울로 올라온 후 밥솥 없이 올 겨울을 날 자신이 없어졌다.

그렇게 밥솥이 생기니 쌀이 필요하게 됐다.

서울 사는 동생이 부모님께 쌀을 받아먹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일인 가구가 먹어봤자 얼마나 먹겠냐며 이커머스앱을 켜서 여러 브랜드의 쌀을 둘러보았다. '지역별로 쌀이 이렇게나 많구나...' 그러나 금액을 살펴보고는 이건 아니다 싶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저 밥솥 샀어요. 쌀 좀 보내 주세요."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엄마는 당일 특송으로 낯익은 쌀 포대에 쌀을 보내 주셨다.

퇴근 후, 포대에서 쌀을 꺼내 모두 옮겨 담았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손 닿지 않는 깊은 바닥에 남은 쌀 여러 톨들이 보였다.

예전이었으면 한 줌도 안 되는 쌀 정도쯤이야 포기해 버렸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차마 쌀 한 톨마저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우리 집은 평생 쌀을 사 먹어본 적이 없다.

농부이신 할머니와 할아버지 덕분에 필요할 때마다 할머니 댁에 가서 쌀포대를 업어 오기만 하면 됐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 할머니 댁 곳간에는 아주 커다란 쌀 포대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아마 '풍년'이라 불린 해들이었을 것이다.

긴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신 아빠와 할아버지의 두 다리가 논밭에 푹 빠져 있는 장면, 할머니가 경운기를 모시는 장면, 내가 농부의 챙모자를 쓰고 경운기 뒤에 타고는 배시시 즐거워하는 장면들이 뇌리에 어렴풋이 남아 있다.

아, 그리고 설 명절이나 추석 때 밥그릇에 밥을 한 숟가락씩이나 남긴 누군가에게 한소리 하시는 할머니 모습도 기억한다.

"이 아까운 쌀을 남기면 어떡하니! 이거 하나하나 할머니가 힘들게 농사 지은 거야. "

그 당시에는 할머니 말씀은 잔소리일 뿐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와 다른 사촌들이 무슨 말인지 이해했을 리가 없었다.

내가 성인이 되고 부모님이 할머니 댁에 밭일을 도와드리러 가실 때면 나도 밭일이란 게 해보고 싶어 따라가고는 했다.

땅콩을 심기 위해 흙에 구멍을 파기도 하고, 억센 고구마 줄기 넝쿨 속에서 고구마도 캐고, 끝없이 이어진 고추밭에서 땀에 젖으며 고추도 따고 깻잎을 뜯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밭일을 도왔다.

그러면서 한 여름 땡볕 아래 땀 흘려 딴 고추 산더미가 겨우 한 팩의 고춧가루가 되어버리는 그런 허무함도 맛봤다.

몸과 마음을 완전히 쏟아야 하는 농사라는 일은 내가 종사하는 사무직과 달리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러 나온 것도 그때부터였다.


You are what you eat.

햇반, 밀키트처럼 준 완성된 음식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빠르게 먹어치워 배를 불리는 요즘, 재배지부터 내 집까지 공급 과정을 꿰뚫는 식재료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쌀을 씻으며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떠올리고 밥 짓는 밥솥 위로 김이 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올 겨울을 조금 더 따뜻하고 힘차게 해 주기를 바라본다.





영끌

'영혼까지 끌어모으다'를 줄인 말로, 주로 급여를 계산할 때 각종 수당까지 모두 끌어모아 계산하였다는 말로 쓰인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을 하나로 모은 행위를 강조하는 말이다.

-네이버 오픈사전-


쌀끌

'쌀을 끌어모으다'

- 내 오픈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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