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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퍼스타 Apr 21. 2023

01. 가난과 풍요의 나라

트레킹 일지 Chap.3 하늘을 향한 길, 안나푸르나 트레킹


 히말라야와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앞서 네팔에 대해 몇 가지 얘기해 보겠다. 먼저 네팔의 첫인상을 말하자면 '가난'이다. 공항에서 ‘타멜(Thamel)’ 거리로 오는 동안 느낀 교통체증은 ‘카이로’의 '혼돈'을 연상케 했으나, 그것과는 냄새가 달랐다. 카이로의 혼돈은 건조했다. 회색 도시의 삭막함과 도로의 교통신호 체계의 부재로 인한 무질서였다면, 네팔은 다채로운 색과 함께 북적이는 사람, 삶의 생기가 더해진 곳이었다. 다만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생기로 인해 에너지와 더불어 불편함도 느끼게 하는 혼돈이었다.  


 힌두교의 나라답게 거리 곳곳에 소가 지뢰처럼 도사리고 있었으며, 포장되지 않은 길에서 뿜어져 나오는 먼지와 온갖 오물들로 인해 공기는 탁했다. 속옷조차 입지 않은, 완전한 알몸에 먼지가 퇴적층을 이룬 것마냥 눌어붙은 어린 아이들이 엄마를 따라다니고, 팔이나 다리가 없는 거지들이 동냥을 하며 돌아 다니고 있었다. 눈을 마주치면 손을 모아 입에 가져다 대며 먹을 것을 구걸했고, 때로는 먹고 있는 음식을 빼앗기다시피 준 적도 있었다. 전봇대 사이사이 심해의 해초처럼 뭉쳐있는 전깃줄 밑을 지날 때면 불안함이 들었고, 하루에 몇 번씩 반복되는 정전에 나의 동력도 같이 꺼졌다가 돌아오곤 했다. 


 3개월여 만에 돌아온 아시아에서 내게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단어, ‘가난.’  네팔은 가난을 숨길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곳이었다. 그저 함께해야만 하는 일상. ‘카트만두’에 머무는 동안 곳곳에서 마주하는 이런 가난은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하지만 이런 가난과 반대로 그들의 문화와 유적, 신에 대한 믿음은 풍요로웠다. 신과 관련한 상품을 파는 상점이 거리 곳곳에 넘쳐났으며, 곳곳에 위치한 예배당과 같은 곳을 지날 때면 사람들은 종을 돌리고 기도를 올렸다. 마치 길을 걷다 마주친 어른에게 인사하듯 자연스럽고도 예의롭게 이뤄지는 행동에 신에 대한 네팔 사람들의 믿음과 동경심, 사상을 엿볼 수 있었다.  


 유적을 대하는 모습 또한 남달랐는데, 우리의 유물, 유적이 그저 바라만 보고, 보존하는 대상이라면 네팔은 만지고 생활하는 현시대의 공간이었다. 유적지 안에서는 실제로 제사 행렬이 지나고 있었으며, 아이들, 어른들 할 거 없이 유적에 오르고 걸터앉아 마치 동네 공원에 온 듯, 생활공간처럼 대하고 있었다. 지금은 펜스가 쳐져 들어갈 수 없지만,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가 불국사 돌계단에 걸터앉아 찍은 수학여행 사진처럼, 네팔의 유적은 아직 그 시대를 보내며, 현역으로서의 수명을 늘려가고 있었다. 


 이처럼 신에 대한 믿음과 유적처럼 먹거리 또한 풍요로웠는데, 네팔의 음식은 나의 먹성을 자극했다. 어딘가 친근하면서도 독특한 네팔의 음식은 "역시 음식은 아시아지!"라는 자부심과 나의 고정관념을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했다. 그중 가장 친근하면서도 자주 먹었던 음식 하나만 소개하자면, '머머'라 고 부르는 만두와 같은 음식인데, 속에 닭고기를 넣은 평범한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버팔로 고기를 채운 것도 있어 신기했다. 머머는 매콤달짝한, 탕수육 소스와 떡볶이 소스를 합친 것과 같은 소스를 부어 먹는데 이 맛이 기가 막히다. 가히 혁신적인 소스라 할 수 있겠다. 다만 위생은 장담하기 어려우니, 네팔의 음식 맛에 취해 닥치는 대로 먹다가는 나처럼 탈이 날 수 있으니 조심하기 바란다. 6개월의 여행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배탈이 났던 네팔이다. 


 마지막으로 네팔 상인의 캐치프레이즈를 말해 보자면 바로 "Right now!", " 지금 사라!"였다. 여행자, 상인의 표적이 되는 존재로서 느낀 각 나라마다의 특징이 있었는데, 네팔 바로 전 나라인 이집트는 "You know how much?"였다. 이런 상인들의 말과 태도는 어느 정도 그 나라의 성향을 드러내는데, 능글 능글한(개인적인 의견!) 이집트인들은 슬며시 다가와 물건을 내밀곤 "이거 얼만지 알아?"라며 관심을 유도함과 동시에 자신의 패는 내놓지 않은 상태에서 협상을 붙인다. 이집트 상인들은 정말 끈질기게 들러붙는데 이에 스트레스를 받는 여행자들이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화를 내는 것처럼 멍청한 일도 없으니, 그저 그들처럼 똑같이 능글능글하게 맞장구를 치며 넘겨야 한다.  


 이와는 달리 네팔은 "Right now!"와 같은 강렬한 말로 순간의 선택을 하게 만들었는데, 등산용품이 밀집한 거리 특성상 비슷비슷한 물건과 가격의 장사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신을 등에 업은 그들의 영적인 힘을 순간적으로 뿜음으로써 사람을 혹하게 하는 기술인지는 몰라도 이집트처럼 능글능글하면서도 집요함은 없었다. "나는 패를 던졌으니 이후 일은 너와 신이 결정할 것이다"란 느낄 이랄까? 하여튼 정신적인 소모는 이집트보다는 훨씬 덜했기에 쇼핑하기에는 더 편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물리적 가난과 믿음의 풍요가 공존하는 네팔은 여행 중 도착한 아시아의 첫 나라로, 아시아인으로서 공감과 교감이 크게 느껴지는 여행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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