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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퍼스타 Jun 12. 2023

17. 에필로그

트레킹 일지 Chap.3 하늘을 향한 길, 안나푸르나 트레킹


 파란 하늘이 천장처럼 놓여있고, 태양의 빛도, 바람의 흐름도, 계곡의 물줄기와 폭포도, 거침없고 막힘없이 흐르는 히말라야. 흔들리는 수만의 잎사귀와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는 돌덩이, 무질서하고도 변화무쌍한 강물, 좌우 오르락내리락 정처 없이 이어 나가는 길까지. 무엇하나 정형화되지 않았지만, 대자연의 등에 얹힌 만물의 움직임과 태곳적부터 이어져 오는 형태는 평화롭고도 자연스러웠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마치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왔다. 저 멀리 신화 속 구름 위의 도시처럼 펼쳐져 있는 히말라야를 보니 “내가 정말 저곳에 있었나?” 싶었다. 마치 한바탕 진하고 거하게 꾼 꿈처럼, 현실을 벗어나 잠시 신선놀음을 하다 온 기분이랄까?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과 튀르키예의 ‘리키안 웨이’를 거쳐 네팔의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ABC 코스’까지, 나의 ‘걷기’는 이렇게 끝났다. 이제 더 이상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비몽사몽한 정신에서 침낭을 말지 않아도, 무거운 배낭을 메고 수 킬로씩 걷지 않아도 됨에 기뻤다. 하지만 이 모든 고역으로부터의 해방과 동시에 허전함이 몰려왔다. 정말 이렇게 끝인 건가? 진짜? 좀…… 아쉬운데…… 걷는 운동에 중독된 것인지, 아니면 매일 밤 사람들과 나눴던 술인지, 걸음에 피어오르는 흙냄새인지, 금단 현상처럼 또다시 길로 돌아만 가고픈 욕망이 치밀었다. 


 결국 이 모든 게 '길'이었고, 그렇게 길을 걷는 시간은 내 여행에서 가장 밀도 있는 행복과 깨달음을 선사했다. 앞으로 또 언제 이렇게 긴 시간의 트레킹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만약 그런 기회가 온다면 난 벅찬 기쁨으로 맞이할 준비가 돼 있다. 이 글을 쓰며 나의 발끝부터 무릎, 어깨, 눈과 호흡, 모든 곳에 스며 든 그날의 길을 추억한다.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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