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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퍼스타 Jun 09. 2023

16. 애플파이

트레킹 일지 Chap.3 하늘을 향한 길, 안나푸르나 트레킹


 ABC를 찍고 다시 내려오는 길. 이미 한번 갔던 길을 또다시 지나는 일은 지루함을 유발하는, 여행에서는 극히 피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어쩌겠는가? 마유처럼 헬리콥터라도 불러서 타고 가지 않는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임을. 그래도 히말라야의 경치에 위안을 받으며 산을 내려가는데, 반대로 힘들게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불과 하루 이틀 전의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짠한 마음과 동시에 슬며시 올라가는 입꼬리. 역시 남의 고통은 나의 행복인가? 미리 과제를 마친 후 홀가분한 심정으로 다른 이들을 바라보는 학생의 기분이 왠지 모를 승 리감과 여유를 주었다. 


 이런 자아도취적 버프에 더해 ABC에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생각했던 ‘그것’ 때문에 나와 ‘석’동생은 단번에 ‘촘롱(Chhomrong)’까지 내달렸다. 그건 바로 촘롱에서 맛본 애플파이! ABC를 향해 올라가던 며칠 전, 우리는 내리는 비도 피할 겸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눈에 보이는 빵집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배낭을 내려놓고 빵과 차나 한 잔 하면서 쉴까 했고, 진열대에 있던 바삭바삭~ 맛있어 보이는 애플파이를 골랐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나의 동공은 빅뱅의 순간처럼 확장됐다. 


 이럴 수가! 도……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맛있는 거지? 그냥 시골, 그것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시골 마을의 그냥 단순한 동네 빵집이지 않은가? 나는 나의 혀를 믿을 수 없었고, 필시 히말라야의 맑은 물과 공기로 인해 나의 혀가 오류가 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맞은편에 앉아있던 석이 역시 뭔가 잘못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난 그제야 나만의 생각이 아님을 알게 됐고 우리는 뜻밖에 접하게 된 신의 애플파이에 오만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 자리에서 하나씩 더 사 먹은 우리. 내가 만약 미슐랭 가이드의 평가원이었다면 당장에 별을 붙였을 것이다. 우리의 칭찬에 빵집의 자매로 추정되는 주인들도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그 애플파이가 있는 촘롱에 도착했다. 우리는 숙소를 잡기도 전에 빵집으로 들이닥쳤다. 마라톤을 마친 선수가 갈증을 달래듯 한입 베어 문 애플파이. 어무이…… 바로 이 맛입니다! 다행스럽게 애플파이의 맛은 건재했다. 뭐 고작 며칠 만에 맛이 바뀔리 없었지만, 혹시나 그때의 그 맛이 안 나면 어쩌지 하는, 첫사랑의 환상을 깨기 싫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음식이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그 맛을 좌우하니, 산 정상에서 먹는 컵라면과 회사 점심시간 편의점에서 때우는 컵라면의 맛이 본질적으로 다름을 우리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아주 애플파이 하나에 꼴값을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만약 내가 안나푸르나를 다시 오른다면 반은 이 애플파이 때문일 것이다. 하여튼 그렇게 애타게 부르짖던 애플파이를 먹고 촘롱에서 하루를 묵었다. 그리고 다음날 길을 함께 했던 아저씨와 누나는 아침 일찍 산을 내려갔다. 하지만 나와 석이는 그러지 않았다. 우리에겐 기다릴 게 있었다. 바로 빵집의 오픈 시간. 우리는 마지막으로 빵을 한 번 더 먹기 위해 기다렸다. 설산을 바라보며 애플파이 한입과 차 한 잔. 하…… 그냥 여기서 살았으면 싶었다. 우리는 그렇게 마지막 애플파이를 먹고서야 길을 나섰다. 정말이지 아직도 그 빵집이, 그 자매가, 그 애플파이가, 그 맛이 그대로인지 확인해보고 싶다. 오늘 간식은 애플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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