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남매의 소울푸드
초등학생 4학년인가 5학년인가 난 인생 첫 가출을 결심했다. 그리고 실로 실행에 옮겼다. 난 그동안 꿍쳐놓은 전 재산 2만 원을 들고 집을 나왔다. 엄마는 내가 그냥 학원에 가는 줄 알았겠지만, 난 그 길로 가출을 한 것이었다. 가을이었고 날은 제법 쌀쌀했다.
주머니에 든 2만 원은 나에게 더 없는 든든함을 주었다. 가출한 와중에도 난 학원을 갔다. 왜냐면 학원은 가야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이후 난 바로 빵집으로 향했다. 호기롭게 빵집 문을 열어젖히고 소보로빵과 팥빵을 하나씩 집어 계산했다. 무려 빵 두 개를 한 번에 산 것이다. 평소라면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손에 꼭 쥔 채 좌판을 수없이 서성이며 세상을 구하기 위한 난제를 마주한 지구의 마지막 도전자와 같은 고심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내 주머니엔 무려 2만 원이나 있었고 난 이 돈을 쓰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난 무려 가출을 했으니까! 빵 두 개를 들고 빵집을 나서는 기분이란. 달려오는 차를 주먹으로 날려버리고 가로수를 뽑아 달까지 던져버릴 것만 같은 힘이 차올랐다.
난 벤치로 향하며 빵 하나를 먹어 치웠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 또 하나를 먹어 치웠다. 그렇게 순식간에 빵 두 개를 먹어 치우자 빵빵해진 배와는 달리 허탈함이 몰려왔다. 자... 이제 뭘 어쩐담? 가을밤은 제법 쌀쌀했고 어두웠다. 초등학생이 집을 나와 뭘 할 수 있겠는가? 가출은 그저 집을 나가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지, 이후 ‘생존’이라는 문제까지는 미처 예상치 못 했다.
난 그렇게 입안에 감도는 빵 맛에 입을 쩝쩝거리며 한동안 벤치에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왜 이렇게 늦게 오냐며 한마디 했고, 난 그냥 어물거리며 줄어버린 나의 전 재산을 다시 책상 밑 상자에 꼬깃꼬깃 구겨 넣었다.
가출까지 해놓고는 한다는 게 고작 빵이나 사 먹는 거라 코웃음 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난 소위 빵 처돌이었던 것이다. 고소한 기름이 발려 맨들맨들하면서도 바삭이는 식감의 표면 속 달짝지근한 팥이 든 팥빵.
거북이 등껍질처럼 조각진 표면은 고소하면서도 달달하고, 안에는 폭신한 새하얀 빵이 있으며 이를 더 뚫고 내려가면 고소한 노란 빵가루의 조화가 일품인 소보로빵. 이는 마치 지각, 맨틀, 핵으로 구성된 지구 하나를 먹는 느낌이랄까?
적란운처럼 몽글몽글하게 쌓아 올려진 빵 안에 달달하면서 진득한 초코가 듬뿍 들어있는 소라빵.
이렇게 팥빵, 소보로빵, 소라빵은 내가 애정하던 삼대장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빵들을 차별한 건 아니었다. 그저 작고 소중한 초등학생의 용돈 범주에서 고르다 보니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저들이 최애가 된 것이었을 뿐.
난 빵을 먹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빵집 앞을 지날 때면 나는 냄새에도 환장을 했다. 빵집 앞에 서서 냄새를 맡으며 진열된 빵을 바라보기도 했는데 어렸기에 가능했지 지금 그런 짓을 했다간 변태로 신고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이상형이 뭔지도 모를 나이에 막연히 빵집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을 정도로 빵에 진심이지 않았나 싶다.
내가 이렇게 빵에 환장했던 반면 여동생은 라면 처순이였다. 어렸을 때 난 라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여동생은 고 어린 게 일찌감치 라면 맛을 알아서 고사리손으로 라면을 뚝딱뚝딱 끓여서 호로록거리며 먹었다. 당시 난 가스불도 못 켜던 때라 그런 동생의 모습이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동생의 라면 사랑은 가족들로부터 건강을 걱정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라면이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이란 인식이 더 강했었기 때문이다. 동생의 라면 섭취의 절정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1년여의 백조시절이 아닐까 하다. 일을 나가는 부모님의 감시 없이 홀로 집을 지키며 삼시세끼 라면을 끓여 먹는 날이 허다했다.
당시 내가 기억하는 동생의 모습은 방에 누워서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과 라면을 먹는 모습, 둘 뿐이다. 진지하게 동생의 다리가 퇴화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들었으니, 가히 백조의 표본과도 같았다.
먹는 횟수도 횟수이거니와 동생의 라면에 대한 아가페적 사랑은 기이한 조리법으로도 나타났는데, 흔히 오빠를 둔 여동생의 라면 사수를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백조 당시 동생은 그야말로 귀차니즘의 인간화였는데, 동생의 라면 조리법은 다음과 같다.
일단 누워서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부엌으로 향한다. 냄비에 물을 한가득 받고 라면의 면과 수프 모두를 때려 넣는다. 그리고 불을 올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누워서 애니메이션을 본다.
보통 라면 조리가 5분 남짓이면 끝나는데 반면 동생의 라면 조리는 애니메이션 한편이 끝날 때까지 지속된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다 보고선 나와 불을 끄고 라면을 먹는다. 난 이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곤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동생의 라면은 팅팅 불어있었다.
결국 참지 못한 나는 동생에게 라면을 왜 이렇게 끓이느냐 물었다. 그리고 돌아온 동생의 대답은 “라면은 불어도 맛있어” 였다.
동생은 라면에 대해선 가히 예수, 부처, 알라와 같은 포용력을 지닌 아이였다.
그렇게 빵과 라면을 사랑했던 남매는 어느새 영양제를 공유하고 가늘어지는 머리칼을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동생네 놀러 간 어느 날.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우리의 얘기 주제는 자연스레 건강으로 이어져 있었다.
무릎이 아프네, 허리가 안 좋네, 그리고 소화가 예전 같지 않다며, 난 이전처럼 빵을 잘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의 고백에 동생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리고 동생 역시 이전처럼 라면을 잘 먹지 못한다고 했다. 이번엔 내가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서로의 고백에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옛날에 치킨이나 피자 같은 거 시키면 ‘엄마 아빠는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한다’라면서 우리보고 많이 먹으라고 했잖아. 그때는 우리 더 먹으라고 그러는 줄 알았거든? 근데 진짜 안 좋아하는 거였어. 나이 먹으니까 이런 음식이 잘 안 들어가.”
“큭큭큭. 맞아. 왜 ‘G.O.D’의 ‘엄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도 사실 알고 보면 진짜 짜장면이 싫었던 거라니까. ‘엄마는 소화 잘되는 미역국에 밥 말아 먹는 게 좋다~’.”
“맞아. 나도 요즘 그냥 밥에 나물 올려 먹는 게 제일 맛있어.”
그렇게 우리 남매는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마음을 매도하며 낄낄댔다. 어느새 남매의 최애 음식은 노화를 가늠하는 가늠자가 되어있었다. 아... 세월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