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옛날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리영 Jan 21. 2018

(인사이드아웃) 우리 안에는 어떤 섬이 있을까

<옛날 일기>

출처 : 네이버 무비


2015년 7월 19일


이 영화는 경이롭다.


첫째, 인사이드아웃은 인간의 수만 가지 복합적인 감정을 기쁨, 슬픔, 소심, 버럭, 까칠 5개로 심플하게 분류해 시각화했다. 둘째, 뇌과학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직접 경험은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이 인격을 만든다는 일관된 스토리텔링을 했다. 열두 살이 된 라일리의 핵심 기억이 어릴 때와 달리 기쁨과 슬픔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의 기억이 됐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라일리의 머릿속에 가족섬, 엉뚱섬, 하키섬, 우정섬 등 '핵심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섬'들이 난 참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서른 살 황수영의 인격을 만든 내 안의 섬은 무엇일까.. 하고 하루 종일 고민했다.


그리움의 섬


11살, 라일리만 했을 때 내 안에는 '그리움의 섬'이 형성됐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전학을 왔다. 라일리처럼. 엄마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모든 게 두려웠고, 싫었다. 초등학교 시절 내 머리에 남아있는 '핵심 기억'은 주로 엄마와 연결돼 있었다.


"니가 스무 살이 되면 엄마가 살아서 돌아오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던 이모 말만 믿고 장례식장에서 뛰어놀다가 큰 이모부한테 혼났던 기억, 병원에서 "우리 엄마 어디 갔어요?"하고 물었는데 "이XX씨, 돌아가셨습니다"하고 어린 나에게 차갑게 말했던 개싸가지 여자 간호사 (그래서 한동안 모든 종류의 간호사를 싫어한 적이 있었다), 교회에서 여름 성경학교에 올 초딩들을 모집하러 학교에 왔는데 어떤 남자애 하나가 "쟨 엄마가 없어요!!!"라고 나를 놀린 기억, 같은 미술학원에 다녔던 친구 오빠가 "너는 엄마도 없잖아!!"하고 놀려서 울었던 기억. 그리고 나와 내동생을 따뜻하게 챙겨줬던 미술학원 선생님. 또 집 장농에 못으로 누군가 새겨놓은 '보고싶다'라는 글귀. 그건 아마도 엄마가 보고싶어 어린 내가 남겨놓은 흔적이었던 것 같다. 아빠가 아무리 잘해줘도 채워줄 수 없었던 그런 빈자리가 있었다. 그건 어린 내가 혼자서 이겨내기엔 너무 큰 짐이었다.



독립의 섬


그리움의 섬은 독립의 섬으로 발전했다. 그리워한다고 만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했고, 대학 진로도 드라마 '광끼'를 보다가 허파에 바람이 들어서 광고홍보학과를 가야겠다고 스스로 정했다. 10대 딸내미들이 아빠한테 유난히 까칠하다지만 그 당시 나는 사춘기 경보음이 내 안에서 약 2년 동안 울려대 아빠를 괴롭게 만들었다.. "내가 알아서 할게!!" 이 말은 지금도 우리 아빠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다ㅋㅋㅋ 고등학생 때 입에 달고 살았던 말. 연애할 때도 이 말이 자주 튀어나와서 옛 남친이랑은 엄청 싸웠었다. 그렇게 잘하면 니 혼자 살라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국 그놈은 다른 여성(나보다 안 예쁘다고 믿고싶다)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그 뒤 나는 웬만한 일은 혼자서 다 해결했다. 물론 경제적으로는 대학을 졸업해 취업하기 전까지 아빠에게 의존했지만 정서적인 독립은 이미 일찌감치 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꾸준히 '혼자' 여행하는 것도 이때 만들어진 독립의 섬 때문인지도. 사실 한 번은 대학 때 엄청나게 '큰 일'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아빠한테 말 안 하고 혼자 처리하다가 아빠가 뒤늦게 아신 적이 있었다. 그때 아빠는 술에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거셨고, 내게 "니는 혼자서 다 알아서 하면 아빠가 왜 필요하노? 부모는 뭐하러 있는거고?"라고 화를 내셨다. 참 많이 울었다 나도. 혼자서 뭐든지 잘하는 게 부모를 기쁘게 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때... 나는 내 안의 독립의 섬 기능을 조금 무너뜨렸다.


+영화의 섬


하키를 좋아하는 라일리처럼, 고딩 때 나는 PC방보다 비디오 가게를 더 자주 갔다. 500원짜리부터 1500원짜리 최신 영화까지 일주일에 2개 이상 빌려봤고, 방학 땐 하루에 2~3개씩 보기도 했다. 하도 자주 가니까 비디오 가게 아줌마가 '짱구는 못 말려'는 공짜로 빌려줬다. 쉬엄쉬엄 보라고...ㅋㅋㅋㅋㅋ


지금도 '로버트 저맥키스'라는 영화감독 이름이 기억난다. (무슨 영화 찍었는지 기억 안나서 네이버에 쳐보니까 캐스트 어웨이 감독이다ㅋㅋㅋ) 유주얼 서스펙트, 시네마 천국, 인썸니아, 메멘토 등 지금 영화 내용은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지만 허세 쩌는 고딩이어서 그런지 유명하다는 영화는 죄다 다 빌려봤다. 일급 살인도 빌렸었는데 그건 누가 2002년 한일 월드컵 스페인전을 거기다 녹화하는 바람에 돈 날린 기억도 난다..ㄱ ㅅ ㄲ..... 핵심기억이다.


그때 본 외화 영화들은 세계를 동경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 배경의 영화를 보면 꼭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참 좋았다. 그래서 지금 어른이 된 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여전히 혼자 보는 영화를 좋아한다.   


서른이 된 내 안에는 지금 셀 수 없이 많은 섬들이 있겠지만, 어린 시절 만들어진 저 두 섬들이 내겐 가장 중요하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그리움을 극복하는 법을 배웠고,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실용적인 교훈도 얻었다. 또 적당히 독립하며 한국 사회에서 자녀에게 헌신적인 부모와 균형 잡는 법도 배웠다. 지금도 내 안에는 수많은 섬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고 또 생기기를 반복하겠지. 이 긴 글을 읽은 사람이 있다면, 당신도 자기 안의 섬을 찾아 적어보시길. 그 섬들이 지금 우리의 인격을 완성한 것인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