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의 다른 이름은 '차복'?
오랜만에 잠자리에서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중2 아들에게.
옛날에 마을의 가장 높은 언덕에 있는 허름한 초가집에 건실한 총각이 살았어. 나무꾼이었지. 아침 일찍 나가서 해가 넘어갈 무렵에야 산에서 내려왔어. 지게에 쌓아 올린 나무은 웬만한 사내들의 양을 훌쩍 뛰어넘었지. 매일매일 그는 그렇게 열심히 나무를 해 날랐다. 그날 해 온 나무는 다음날 장에 내놓을 요량으로 저녁에 알맞게 묶어 헛간에 차곡차곡 쌓았어. 많이 한 날은 스무 묶음이 되기도 하고 적게 한 날은 다섯 묶음이 되기도 했지. 그런데 그는 노총각이 되도록 초가집을 벗어나지 못하는 거야. 총각이 돈을 펑펑 쓰거나 노름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지?
이유가 있었어. 다음날 아침, 헛간 문을 열면 그 많은 나무짐들이 어디로 갔는지 딱 세 개만 남아 있었던 거야. 매일 그랬어. 처음엔 누가 장난을 치나 했지. 도둑인가 싶어 뜬 눈으로 헛간 문 앞에서 보초를 선 적도 있었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피곤하지만 나무짐이 사라지는 기이한 일을 해결하고자 애를 썼어. 하지만 딱 세 개만 남기고 가져가는 도둑을 잡을 수 없었어.
그러다 문득 묘수 하나를 생각해 냈지. 나무짐 안에 들어가 있으면 분명히 나무짐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낼 수 있겠다. 총각은 스스로 나무짐으로 위장했어. 부릅뜬 눈은 밤이 깊어짐과 함께 느슨해지고 잠이 빠졌어.
그러다 몸이 위로 들어 올려지는 거야. 화들짝 놀라 눈을 떴지. 위로위로 나무짐에 올라가고 있었어. 아래를 봤더니 나무짐 딱 세 개만 놔두고 나머지는 동아줄에 메여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거야. 허공에 있으니 어이없다가 혹시나 떨어지면 어쩌나 겁이 나는지...
'도둑 잡으려다 내가 죽겠구나!'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는데 '이것이 마지막이네!' 하는 소리와 함께 총각이 숨은 나무짐이 폭신한 구름 위에 올려졌어. 총각은 재빨리 동아줄을 푸는 사람의 손목을 붙들고 "이 도둑놈! 이제야 너를 잡는구나!" 했어.
그리고 앞을 보니 나른하고 고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놀라서 총각을 보고 있고, 창과 칼을 찬 무서운 얼굴의 사람들이 뛰어오고 있는 거야.
무섭지만 잡은 손은 놓지 않았고 큰소리로 말했지. "이 도둑놈아, 내 나무짐을 돌려놔라! 내가 뭔 억하심정이 있기에 도둑질이냐?" 악을 썼지.
"하늘이 이렇게 시끄럽다니 무슨 일인가?"
딱 봐도 높으신 분이 여러 사람을 이끌고 나와 물었어. 그리고 총각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야..
"나는 하늘님이다. 여기는 하늘나라고, 산 자가 있을 곳이 아니다. 그리고 네가 타고난 복이 딱 나무짐 세 개여서 어쩔 수 없이 나머지를 하늘로 가져오게 되었다. 그러니 마음을 접고 땅으로 내려가거라!"
억울함이 복받친 총각은 울며불며 하늘님의 옷자락을 잡고 하소연을 했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하늘님을 보고는 벌러덩 누워서는 팔다리를 흔들며 '억울합니다. 이대로는 못 내려갑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억울해요!' 하며 고래고래 울부짖었습니다. 난감한 하늘님은 총각을 진정시키고 어딘가로 데려갔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각자 자신의 복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너의 타고난 복이 너무 박복하고 가엽다. 이미 태어난 이의 복은 안되니 태어나지 않은 이의 복은 빌리기로 하자!. 저 앞에 있는 여러 곳간 중에 하나를 선택하거라!"
하늘님의 말씀에 제일 크고 멋진 곳간을 선택했어.. 그러자 하늘님은 "이 곳간은 차복이라는 이의 것이다. 너는 이제 빌린 복으로 일한 만큼 잘 살 것이니 잊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하였어.
하늘나라에서 큰 소통을 일으켰던 총각은 지상으로 내려와 매일매일 열심히 일했지. 나무짐이 없어지는 일도 없었고, 점점 부자가 되었지. 초가집은 기와집이 되고 점점 많은 논과 밭을 가지게 되었어. 그리고 빌린 복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새겼어.
어느 날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거야. 만삭인 아내와 비를 그대로 맞으며 마을을 지나던 거지부부가 총각네 기와집 처마에서 잠시 비를 피하게 됐어. 아내가 오들오들 떠는 것이 안쓰러운 남편은 대문을 두드렸지.
"비 좀 피하게 해 주십시오. 헛간이라도 좋으니 비를 좀 피하게 해 주십시오!"
총각은 만삭의 거지부부를 따뜻한 방에 들이고 깨끗한 옷과 따끈한 밥상을 대접했지. 깨끗하고 포근한 이불을 덮고 누은 부부는 행복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를 하는 거야..
"이렇게 친절한 분을 만나다니 뱃속 아기가 복이 많은가 봐요!"
"그러게 말이요. 곧 아이가 태어날 텐데, 아이의 이름을 차복이라 지으면 어떻겠소?"
"차복이요?"
"빌릴 차에 복 복자를 써서 차복. 어떻소?"
"복이 없어 거지로 떠도는 우리에게 이런 복을 내어주시고. 이 집의 어른께서 주신 복으로 우리 아이가 잘 살 것 같습니다. 차복으로 해요."
그리고 새벽에 진통이 시작되고 건강한 사내아이가 태어났어.
"차복"이었어.
다음날 총각은 거지부부의 방을 찾아갔어. 그리고 부부에게 큰절을 했지. 그리고 지난밤 부부의 대화를 들었다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 했어. 도둑을 잡으려다 하늘나라에 갔다가 '차복'이라는 태어나지 않은 이의 복을 빌려 재산을 모아 부자가 된 이야기를 했지. 그리곤 빌린 복을 돌려드린다며 집을 비롯하여 전재산은 태어난 아이의 것이라 말했어. 그러니 이제 돌려주겠다고.
총각과 거지부부는 서로 고마움과 거절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함께 사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잘 살았대.
아들은 오랜만에 구전을 듣고 '좋았어' 한마디 하고 바로 잠들었다. 나무꾼들은 주로 하늘로 올라갈 때 끌려 올라간다. 그중에서 나는 '차복' 이야기를 제일 좋아한다.
복을 빌려 산다는 것이 복을 비는 것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가다 보면 잘 풀리기도 하고 안 풀리기도 하고, 힘들게 하던 것이 나중엔 좋은 결과로 또는 그 반대로 되기도 한다. 우리는 어쩌면 태어나지 않은 이들의 복을 잠시 빌려 살다가 돌려주고, 빌려 쓴 복을 되돌려주기도 하는 삶을 살아서 그런 것일까? 사람은 자기의 일에만 빌지 않는다. 타인의 복도 빌어준다. 욕심이 아닌 바람을 빈다. 선한 영향을 바라는 마음을 소원하며 빈다.
2025년 현재 K-컬처라는 이름으로 많은 민화인들이 생기고, 전 세계가 새로운 그림에 흥분하고 있다. 그러나 한때 민화는 천한 그림, 베낀 그림이라는 말로 터부시 할 때가 있었다. 유물, 전통의 가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수치심으로 보았다. 정규교육으로 서예와 수묵화는 배웠어도, 전통채색화인 민화는 이름만 거론되는 정도였다. 내 나이 마흔 즈음에 민화를 우연히 배우면서 새로웠고, 그림마다 담긴 이야기들에 신났고, 독특한 색감에 신기했다. 그리고 그리는 사람들의 마음들에 민화의 진정한 힘을 알게 되었다. 민화는 순수하고 순응적인 인간의 욕구를 가득 담고, 배려심과 사랑이 넘친다.
도안을 대고 초를 뜨면서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문턱이 낮고, 자신이 원하는 색을 올리는 과정에서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의 소재마다 소원의 상징이 다르고 자신이나 누군가를 위한 마음을 수행하듯 그리는 것이 이 민화다. 이는 강의를 하면서 수강생들의 모습에서 찾아낸 깨달음이다.
소원을 빈다.
노력하는 일의 완성을 바라며, 이룰 수 없는 바람을 위해, 누군가를 위해, 단순한 행운을 위해. 단순히 또는 절실히 빈다. 특정한 성인을 부르거나 세상에 있는 모든 신들을 호명하기도 하고 때론 비는 것에 집중하기도 한다.
이른 새벽 정안수를 떠 놓고 하늘에 청초히 떠있는 달을 보면서 손바닥을 마주하고 동글동글 원을 그리며 비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방학에 할머니댁에서 이른 새벽 할머니가 스텐으로 된 국대접에 물을 떠서는 상위에 올려놓고 중얼중얼 빌던 것이 기억난다.
사악 사아악! 붓질하는 소리는 소원을 비는 소리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