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림이 무엇인고?
색을 칠하는데 한쪽 면을 점점 연하게 만드는 것.
무엇이 생각나는가
그러데이션.
가장 유사하며 널리 쓰이는 말이다. '바림'이라는 단어는 머릿속 어디에도 있지 않다. 민화를 배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이 단어는 참으로 예쁘고 분위기가 있었다. 반면 너무나 생소했다. 이는 내가 강의를 하는 동안에 수강생들의 첫 반응이기도 했다.
"바림붓을 쓰임을 알려드릴게요."
"발림이요?"
"아뇨, '바림'이요. 기본 붓 중에 까만 허리띠를 매고 있는 붓이 있죠. 바림붓이라 쓰여 있어요."
"아! 바림~."
"이게 무슨 말이에요?"
"순우리말인데요. 그러데이션이라고 보면 돼요. 아시겠죠? 점점 색이 흐려지게 하는 거예요."
그러데이션이라는 영어 단어에 모두 끄덕이지만 바림은 입에 붙지 않는지 두 달이 넘어도 "발림"이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종종 계신다.
단어 검색을 해봤다.
바림 : 명사
1. [미술] 색깔을 칠할 때 한쪽을 짙게 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차츰 엷게 나타나도록 하는 일.
-비슷한 말 : 바림질, 운옹(暈滃, 그러데이션
2. [미술] 그림을 그릴 때 물을 바르고 마르기 앞서 물감을 먹인 붓을 대어, 번지면서 흐릿하고 깊이 있는 색이 살아나도록 하는 일.
-비슷한 말 : 그러데이션, 선염
바림-하다 : 동사
1.[예체능 일반] 색깔을 칠할 때 한쪽을 짙게 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차츰 엷게 나타나도록 하다.
2.[미술] 그림을 그릴 때 물을 바르고 마르기 앞서 물감을 먹인 붓을 대어, 번지면서 흐릿하고 깊이 있는 색이 살아나도록 하다.
-활용형
바림하여(바림해) [바림하여(바림해)]
바림하니 [바림하니]
-원형 : 바림
<표준국어대사전>
민화에서의 바림은 '1.'을 의미한다.
단어의 생소함에
나는 얼마나 우리의 것을 알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특별한 이름이 없었지만 조선후기 전성기를 이루었고 실생활에 깊이 파고들어 있어 명맥은 유지되었다. 이 그림을 체계화했던 최초의 인물이자 '민화'라는 이름을 붙여 준 사람이 일제하에 강제수탈한 우리 문화재를 이용한 왜곡에 앞장선 일본인이라는 것이 슬프다. 좋은 뜻을 품은 품은 그림은 상서로운 것으로 갖는 것만으로 없는 형편에 부려본 사치, 소확행 아이템이었다. 좀 사는 이들은 장인이 그린 것으로 무게가 나가는 돈주머니를 건네었을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기뻐했을 조선시대 중인 이하의 백성들. 민화라는 이름으로 부르면서도 기뻐하기는 지금도 매한가지다.
그리고 민화를 그리는 사람들도 괴로움보다는 기쁨과 희망과 축복을 떠올린다. 몰입의 자유를 느낀다. 저주는 없다.
수업할 때면 바림은 '민화의 꽃'이라 표현을 자주 한다. 어떤 색이든 어우러지게 만드는 마법이다. 부드럽게 또는 거칠어도 바림으로 표현된 색감은 독특함을 자아낸다. 캔바스나 수채용 종이와는 다른 얇은 한지인 순지에 아교처리를 하고, '나'라는 주체를 만난다. 색을 쌓는 과정에서 바림으로 색과 색을 연결했기 때문일까?색은 항상 하루 자고 나면 의외성을 선물로 보여준다. 완전히 말라야만 보여주는 색의 융합과 완성. 층층이 쌓인 색과 바림의 효과가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에 희열을 느낀다.
그것을 실감하시는 수강생들의 모습에 나는 이렇게 말을 한다.
"이거 누가 했게?"
"선생님이 도와주셔서 그렇죠."
이런 비슷한 답을 주시면
나는
"본인이 하신 거예요. 색깔 누가 골랐어요? 누가 색 올렸어요?
난 조언만 했어요."
망치는 그림은 없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 눈으로 손으로 완성이 된다. 나는 강사로 조언할 뿐이다. 몰랐으면 어떠랴? 이제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부끄러울 것이 무어랴? 예술은 행하는 것이고 작가도 중요하시지만 보는 사람의 해석도 증요하다. 똑같지 않으면 어떠랴. 예술을 느끼는 모두가 재각각 같은 둣 다르게 자기화하는 것은 더한 성과이다.
민화룰, 바림을 하면서 느끼는 몰입과 성취감이 중요하다.
다만 아쉬운 것이라면
스스로 만족하기보다는 우선 나를 낮추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좀 더 확신을 가지고 나와 우리의 것을 표현하고 대화하는 자유로움과 품위가 자리 잡았으면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훌륭함을 선생인 내가 콕 짚어주기를 비라는 것인가?
아직 우리는 새로 할 이야기가 많다.
새로이 느껴야 할 것도 많다.
바림으로 풍요로워진 모란과 연약하지만 다정한 날갯짓의 나비처럼.
민화수업의 풍경은 점점 경계 없는 어울림, 바림을 닮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