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기: 찰나의 쾌감을 밀수하는 일

구태여 쓸모없는 글을 끝끝내 낳는 마음에 대하여

by 방구석 룸펜

시를 쓰는 일이 내게는 늘 고통스럽다. 에세이는 본질적으로 내가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들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기에, 각 낱말의 요철이 딱 맞아떨어질 때까지 올바른 표현을 찾으면서 문장을 깎는 일조차도 어느 정도는 즐거움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나 같은 한낱 범부에게 있어서 시 쓰기란, 아주 긴 시간의 고통을 지불한 대가로써 한 편의 시를 완성한 찰나의 쾌감을 밀수해 오는 일이다. 즉, 내게 있어서 시 쓰기는 기본적으로 기쁨을 주는 행위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오로지 내 의지로 그것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초고를 완성하고도 개고를 밥 먹듯이 하고, 끊임없이 더 나은 표현을 찾아서 백스페이스를 연타하도록 하는 충동의 정체는, 기실 소리와 리듬에 대한 일종의 병적인 집착이다. 다시 말해, 내가 쓰는 모든 문장과 단어들은 이런 강박의 산물이라고 봐도 거의 틀리지 않다.


애석하게도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훌륭한 시를 쓰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객관적으로 나쁘지 않은 글을 써내는 것만 해도 내게는 충분히 힘에 부치는 일이다. 내가 그토록 오랜 시간을 들여서 조사를 고르고 국어사전을 뒤지는 것도, 최소한 조금이나마 덜 나쁜 시를 쓰기 위함이다.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작품 내적으로 볼 때 그 시가 반드시 쓰여져야만 할 이유를 나는 찾아내지 못했다. (반대로 외재율-작가론적 측면에서는 아마도 몇 편인가 존재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유서 대신 남겼던 시라거나.)


이러한 역량 부족이 과연 연습의 문제인지 아니면 필연적인 것인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도, 그 모레도, 나는 영원히 나 자신을 제외하면 그 어떤 누구도 읽지 않을 시를 쓸 것이다. 하릴없는 결과로서. 늘 그랬듯이. 구태여 쓸모도 없는 글을 끝끝내 낳게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월 4만 원에 AI 과외선생을 고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