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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예지 Oct 06. 2021

9화_허리 통증으로부터 달리기를 지켜라!

바른 걷기 자세와 달리기 자세에 대하여


"어, 허리가 심상치 않은데?"


달리기를 시작한 지 70일쯤 되었을 때, 허리를 다쳤다. 오전에 3Km  달리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하는데, 허리가 묵직하고 시큰거렸다. '설마'하는 불안감이 온몸에 퍼졌다. 샤워를 마치고 최대한 조심하며 살살 움직였으나 상태는 점점 나빠져만 갔다. 결국 나는 '악'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허리를 붙잡은 채 주저앉았다. 6개월 된 둘째를 혼자 돌봐야 하고, 오후에는 첫째를 데리러 어린이집에도 가야 하는데 너무 아파서 걸을 수도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결국 핸드폰이 있는 곳까지 기어가서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구조 요청을 했다.



사실 허리 통증은 15년 간 나를 괴롭혀 온 고질병이다. 23살 때 주방 바닥에 밥상을 내려놓다가 처음으로 허리를 삐끗했다. 돌아눕지도 못할 만큼 극심하게 허리가 아팠고, 일주일 정도 일상이 마비되었다. 첫 경험 이후 2-3년에 한 번씩 잊을 만하면 허리를 다쳤다. 임신 5개월 때는 이사 후에 책을 정리한다고 애쓰다가 허리를 다쳐서 응급실에 가기도 했다.






러닝화로 '무릎 통증'을 극복했더니 이번엔 '허리 통증'이라는 허들을 만난 것이다. 허리를 다친 이유가 허리가 약해서인지, 달리기로 무리한 탓인지, 육아와 가사 노동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허리 통증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건 두려움이었다. '30분 달리기'라는 목표가 곧 손에 잡힐 듯했고, 달리는 게 너무 즐거워 매일 경쾌하게 달리는데, 허리를 회복하느라 며칠 쉬면 그동안 쌓은 노력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겨우 조금씩 만들고 있는 몸의 감각, 근육, 내 몸이 기억하는 운동량, 심폐 기능 등이 모조리 제자리로 돌아갈까 봐 전전긍긍했다.



생각해보니 허리 통증은 그동안 내가 잘못 산 청구서였다. 달리는 일상을 지키기 위해 내게 책임을 물어야 했고,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렇게 자주 허리를 다치는 이유가 뭘까?'라는 질문을 품고 일상생활의 자세를 살피는 것부터 시작했다. 구부정한 자세, 다리를 꼬거나 양반 다리로 앉는 습관, 짝다리를 짚어 몸에 부담을 주는 자세, 허리만 숙인 채 무거운 물건을 드는 습관 등 고구마 줄기 캐듯 나쁜 자세들을 줄줄이 발견할 수 있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허리가 약한 탓, 운동을 안 한 탓으로 여겼는데 기본적으로 평소 자세가 엉망이니 허리가 버티다 힘겨우면 팡하고 망가져 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운명처럼 그때 읽고 있던 책 <삶이 버거운 당신에게 달리기를 권합니다>에서 두 번째 깨달음을 얻었다. 저자 마쓰우라 야타로도 달리기를 시작하고 한 번은 부추상골증후군(복숭아뼈 부상)에 걸리고, 한 번은 허리를 다쳤다고 했다. 특히 저자는 첫 번째 부상으로 '걷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무려 반년이나 달리지 않고 빨리 걷기에만 전념했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평소 걷는 건 잘하는 편이라 딱히 바른 자세로  걸어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허리에 부담을 주지 않고 바른 자세로 달리기 위해서는 '바른 자세로 걷기'부터 몸에 익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이번 허리 통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3일이 지나자 슬슬 회복되어서 '바른 자세 걷기'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달리기 이론서, 유튜브 영상을 통해 바르게 걷는 자세를 파악했다. 턱은 몸 쪽으로 당기고 시선은 정면을 향한다.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귀, 목, 허리, 복숭아뼈가 일자가 되도록 한다. 걷는 동안 허리와 척추를 세운다는 느낌으로 등을 펴고, 복근에 힘을 준다. 발은 뒤꿈치, 발바닥, 발가락 순으로 중심을 옮기되 보폭을 너무 크게 하지는 않는다. 바르게 걷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릎, 발목, 고관절, 허리에 불필요한 부담이 가지 않게 신경 쓰고, 팔을 열심히 흔들며 걷다 보면 20분쯤엔 제법 땀이 났다. 그렇게 매일 30분씩 바른 자세로 걷는 것을 몸에 익혔다.



하지만 걷다 보니 달리고 싶은 마음이 동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루는 빨리 걷기를 하고, 하루는 달리는 걸로 일정을 바꿨다. 워낙 천천히 달릴 때라 걷는 것과 뛰는 것이 크게 차이는 없었지만 가슴을 위로 내밀고, 엉덩이가 뒤로 빠지지 않게 앞으로 밀고, 발로 힘껏 땅을 차려고 애썼다. 모든 움직임은 균형감 있게 앞으로만 향하도록 했고, 팔은 90도 각도를 만들어 상체 뒤로 보내는 느낌으로 일명 '팔치기'를 하며 경쾌하게 흔들었다.



바른 자세로 달리는 것에 집중하니 전과 다르게 뚜렷하게 느껴지는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힘들면 자세가 무너진다는 것! 달리는 동안 배에 힘을 주고 자세를 유지하려고 계속 신경 쓰지 않으면 어느 순간 자세가 허물어져 버렸다. 목은 앞으로 빠지고, 등과 허리의 긴장은 느슨해지고, 발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끌렸다. 나뿐만 아니었다. 공원을 달리는 러너 중 꽤 많은 사람들이 단단하고 균형감 있는 자세를 잃고 몸이 처진 채 미세하게 좌우로 흔들리며 달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깨달음은 삶으로 이어졌다. 달릴 때도, 걸을 때도, 일상생활에서도 순간순간 배에 힘을 주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감동을 주는 고전 영화이다. 유태인인 주인공 귀도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아내, 조시아와 함께 나치 강제 수용소에 끌려간다. 귀도는 아들 조시아에게 수용소 생활이 '탱크를 얻기 위한 재밌는 게임'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순간순간 유머와 재치를 발휘해서 어려운 상황을 넘긴다. 귀도는 견디기 힘든 노동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아들 조시아를 지키기 위해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으며, 지혜를 발휘한다. 아들을 지키고, 아내와 다시 만나기 위해 애쓰는 귀도의 모습은 가슴 뻐근하게 뭉클했고, 눈물겹게 아름다웠다.



귀도처럼 우리도 살다 보면 내게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것을 걸고 삶에 최선을 다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귀도에게 조시아가 세상 소중한 존재였듯, 어느덧 달리기도 잃고 싶지 않은 내 일상의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그 당시 달리기는 정말 절박한 선택이었다. 몸과 마음을 돌보기 위해 계속 달리고 싶었고, 달려야만 했다. 허리가 아픈 걸 극복하고 다시 달리면서 달릴 때, 걸을 때, 생활 속 바른 자세를 몸에 익히게 되었다. 긴장이 풀려 구부정해진 허리를 빳빳하게 세울 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이건 오로지 달리기 덕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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