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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사나수

지나가는 시간 같았던 경기

2025.8.9. vs. 안산 @수원월드컵경기장

by nasanasu


여름을 이제 막 즐기려고 하는데 이미 계절의 많은 부분이 왔다 건 것처럼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이다. N석에는 물을 뿌려준다고 하던데 이런 날씨에 물을 맞으면 춥지 않을까 우려도 되었다. 그러나 빈 공간에서 홀로 찬공기를 감당할 때와는 다르게 N석에 밀집한 사람들 틈 속에 있으니 서로의 온기로 금세 여름을 얻는다. 제법 땀도 흐른다.


안산에게 진 적이 있었던가. 그래서 당연히 이길 거라는 위험한 생각이 도사려있고 승리가 기본값인 듯 관람하는 건 별다른 긴장감을 만들어내지 못해 시시한 기분까지 들게 하는 것이다. 이 역시 경기가 시작되기 전의 기우일 뿐 일단 우리 선수들의 이름이 불리면 전쟁터가 조성되고 피치는 다시 뜨거워진다. 이기지 못하면 인천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류첸코가 오래간만에 돌아왔다. 그가 축구 자체를 잘하는 선수라는 건 여러 번 언급했었다. 그가 없는 동안 그의 역할이 얼마나 방대하고 강력했는지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공격의 흐름을 생성하고 골을 결정지을 수 있으며 심지어 주도적인 수비수의 역할까지 해내는 선수이다. 그런 기대에 부흥하듯이 그가 첫 골을 터뜨렸다. 박지원의 스피드 있는 크로스도 일품이었고 일류첸코는 단 몇 뼘의 틈으로 공을 침투시켰다. 그것도 머리로.


최근 선발 출전이 거의 고정화된 세라핌은 여전히 저돌적이고 에너지가 넘친다. 다소 둔탁한 움직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스피드를 수비가 따라잡기가 어렵다. 수원 득점의 지분이 상당히 높은 선수이다. 양형모 대신 출전 중인 김민준 골키퍼도 빅버드의 실전이 많지 않을 텐데 시종 안정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때로는 최종 수비수로서 공격 라인을 전체적으로 올려주는 역할까지도 수행해 주었다. 전반을 무실점으로 마무리했다.


팬들이 그를 기다렸다는 걸 알았다는 듯 후반전의 첫 골도 일류첸코로부터 나왔다. 그전까지의 공격의 흐름이 괜찮았고 세라핌의 날카로운 크로스가 일류첸코의 발을 스치고 골문 구석으로 들어갔다. 이 경기 승리를 직감한 N석에는 물이 뿌려졌고 젖은 몸들이 함성을 질렀다. 그 함성에 일상의 스트레스를 얹어 배출해 낸다.


팬들에게 서비스를 해주듯 세 번째 골까지 터져준다. 김민우의 과감한 돌파로 코너킥을 얻어냈고 팬들의 환호에 박수로 화답했던 김민우가 올린 코너킥을 수비수 레오가 정확한 헤딩골로 성공시켰다. 레오의 수원삼성 데뷔골이다. 전반전 일류첸코의 골처럼 그 틈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곳으로 정확하게 찔러 넣어서 놀라웠다.


경기가 끝나고 한바탕 물놀이가 벌어졌다. 그 순간에는 선수도 감독도 어린아이가 되어 기쁨을 만끽했다. 이길 것을 예상했고 기대했던 그림처럼 경기가 마무리되었다. 그냥 지나가는 시간을 쳐다보는 것처럼 순조로웠다. 그러나 긴장해야 한다. 일류첸코는 다시 두 경기를 뛰지 못한다. 고의가 아니었겠지만 상대 선수를 팔꿈치로 가격하여 퇴장을 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승리에 취해있을 수가 없다. 그가 없더라도 앞으로의 두 경기 또한 그저 시간이 흐르는 일처럼 스무스하게 진행되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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