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칠 수 없던 눈동자(일러스트 수록)
사방으로 흩어져있던 눈동자를 빠르게 훑어 개수를 세어보았다. 두 개의 눈에서 4개의 눈동자를 보았던 날의 일이다.
바깥쪽 창가자리에 앉으니 지나가는 모든 사람과 눈을 마주쳐야 했다. 눈과 가슴, 눈과 머리를 마주치기도 했지만 대부분 눈과 눈이 마주쳤다. 몸이 피곤한 날엔 술과 음식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헤집어놓았다. 늘 집에서 지내다 가끔 밖에서 일을 보게 되면 인간관계에 대한 피로감을 해결하지 못하곤 한다. 집에서 길을 하나 건너면 대부분 처음 겪는 메뉴를 술과 함께 내놓는 식당이 있다.
식당이 생기기 전,
장사가 그럭저럭 돼 보이는 일본식 술집이 그 자리에 있었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 사장이 혼자 해내는 메뉴가 종류가 많아 안주를 먹으려면 비교적 오래 기다려야 했고 간간히 손님을 응대하는 식으로 함께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렇게 약간의 정이 기울어지던 곳이 사라지고 30대로 보이는 두 명의 남자들이 만들어내는 낯설기도 새롭기도 한 신메뉴들이 가득한 술집식당으로 바뀌었다. 창가자리, 동네 사람들 모두가 지나다니며 눈을 마주치는 곳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바질페스토를 베이스로 한 알리오올리오에 순대가 올라간 요리와 꿀에 달콤하게 저며진 토마토 안주를 시켜 맥주로 입가심을 하고 소주를 서너 잔 마시던 참이었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온 부부, 유모차에 아기를 태운 젊은 아빠, 코끝에 두꺼운 검정 안경테를 걸치고 가방을 뒤지며 퇴근길을 걷는 여자, 반바지 차림에 등과 겨드랑이가 젖은 남자와의 마주침을 끝으로 잠시동안 지나가는 시람이 없었다. 낮은 언덕길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오히려 안쪽에서 그림 삼아 구경하는 것도 안주거리의 하나가 돼주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언덕을 천천히 걷는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했다.
다시 한번 사내의 두 눈에서 눈동자를 찾아내려 짧은 시간 동안 흰자를 여기저기 뒤적거렸지만, 마주칠 눈동자를 골라내기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그 사내는 분명히 나를 보고 있었다. 2,3초의 짧은 순간 내가 찾아낸 잔상에서 사내의 눈동자가 4개였고 사방으로 흩어져있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해두고 싶었다. 가슴이 두근거려 앉아만 있기 초조한 나는 음식과 소지품을 내버려 두고 가게를 나갔다. 사내의 한쪽 손에 흔들거리며 매달려있던 검정봉지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따라 언덕의 오른쪽 끝에서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사내를 뒤따랐다. 뛰듯 빠른 걸음으로 그를 쫓아올라가 모퉁이를 돌아보니 사내는 어기적대는 걸음으로 다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는 참이었다. 약간 빨라진 호흡을 정리하고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멈추지 않고 그가 가는 길을 따라갔다. 동네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사내가 골목을 빙빙 돌아 어딘가를 찾아냈는데, 갈수록 작고 더 작고 어둡고 더 어두운 골목의 막다른 담장이었다. 담장 아래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고양이들이 사내를 기다렸다는 듯 울고 있었다. 사내의 그림자가 닿자, 더욱 칭얼대는 소리를 내고 날씬한 다리를 왔다 갔다 하며 사내가 코앞까지 다다를 때까지 멈추지 않고 울음을 터뜨렸다.
사내가 세 마리의 고양이를 향해 몸을 숙였다.
고양이들은 차례를 기다렸다. 내가 첫 번째 본 것은, 흰 바탕에 누런 얼룩이 군데군데 흩어지고 덩치가 꽤나 큰 고양이가 물어온 무언가를 사내가 받아 들고, 어깨를 들썩이고, 으드득거리며 씹는 모습을, 나머지 고양이가 태연하게 지켜보던 것이다. 참을성 있게 순서를 기다리며 애교 섞인 몸을 비비 꼬면서. 내가 두 번째 본 것은, 자기 차례가 된 코 아래 검은 점을 가진 고양이가 물어온 것을 사내에게 차려내자 사내는 수준 있는 안주에 만족이나 한 듯 검정비닐 안에 있던 녹색 소주병을 꺼내 입안에 콸콸대고 털어 넣던 모습이다. 두툼한 손이 계산서를 지불하듯 고양이들을 쓰다듬었다. 내가 세 번째 본 것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한 다리에만 흰색 얼룩이 있어 온통 검은색이나 다를 바 없는 고양이가 사내 앞에서 뒷다리를 단단히 고정하고 서서 추던 기이한 춤의 진행이었다. 그 춤은 순서가 정교하게 짜인 수준 높은 발레 같기도, 현대무용 같기도 했으나 감격스럽게도 전통을 잇는 감각을 갖추고 있었다. 내가 네 번째 본 것이 이 담벼락 고양이식당의 대미를 장식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다. 담벼락을 향해 앉아있던 사내가 방향을 틀어 담벼락을 등지고 얼굴을 보였다. 담벼락을 무대 삼아 단단히 서서 노련한 서커스 단장처럼 온 힘을 얼굴로 옮겨 눈알을 굴렸다. 네 개의 눈알! 이 순간을 위해 기다렸다는 듯 나의 입이 탄성을 토해냈다.
내가 다섯 번째 본 것은, 나에게로 향해 오는 고양이들의 눈동자와 내게 술친구가 필요하다는 듯 손짓하는 사내의 불확실한 얼굴이었다.
나의 눈동자는 네 개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