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성의 허구
여자에게 자리 잡은 어떤 이와 모든 이를 병렬하여 누가 진짜 너. 인가 물었다.
누구를 지명할까.
그럴 듯 한 하나를 골라 새총에 알맞은 돌을 넣어 쏘았다.
그는 내가 아니었다. 총에 맞은 그는 상처를 입고 당분간 모습을 감췄다.
여자에게 자리 잡은
모든 너를 원 안에 넣어서 이렇게 한 명이요. 하고 말해볼까.
그러면 눈 한 송이였던 죄가 덩어리로 불어 커다란 눈사람 죄인이 될 것 같다.
차라리 흩어져 여자 안과 밖에 사는 이 어느 누구도 때로 짐승인척하고
때로 미지인이라 해서 나도 헷갈린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그는 누구일까.
나는 누구였을까.
어떤 글을 쓰게 되었는데, 누군가 보고 또 나도 글이 '상실감'을
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 글을 지을 때 '상실감'을 딱히 주제로 하지 않았지만 그 마음의 상태에 가까웠다.
상실감에 대해 들여다보았다.
삶은 예상과는 빗나가게 <얻는 것>, 그리고 더 많이 <잃는 것>이었다.
얻는 물성이 인생인 줄 알던 나에게 잃고 소멸되는 과정이 삶의 성질이라고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싫다고 거절하고 몇 번 더 거절했지만.
무엇을 잃을 때, 내가 잃은 것을 누군가는 누릴 때
그 감정의 뿌리는 상실감이었다.
더 많은 감정들 역시 그 원천은 상실에서 비롯된다고 떠올렸다.
질투, 좌절, 모욕감, 비참함, 외로움, 실망, 분노, 비애.
이런 것들의 모든 어머니는 상실이라고, 일깨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