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과 욕망, 라캉, 아담
어린 메뚜기의 큰 눈이 부풀어 오른다.
어린 메뚜기가 성충을 보고 어른이 되고 있다.
어린 메뚜기가 보는 것만으로 어른이 되듯이,
아직 자아가 없이 어릴 때에, 눈에 맺힌 상들과 잔상들은 그것이 타인의 소유라 할지라도
곧 '본 자'의 자아가 된다.
어린 주체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동안 타인을 모방하고, 거울에 비친 타인의 이미지를
확실성을 가진 단일한 자아로 받아들인다.
타인의 모습 속에서 완성된 자아는 결핍되고 자아는(주체) 영원히, 죽음이라는 해방을 맞기 전까지
만족하지 않는다.
최초의 인간.
온몸을 가리지 않아도 부끄러움에서 자유했고, 부르는 모든 것들이 그것들의 이름이 되는 지위를 가진
완벽한 인간 '아담'을 추구하는 것은 내면 깊숙이 내재된 유전적 본능 때문일까.
추구는 또 다른 대상을 필요로 할 뿐 끝없는 결핍은 계속된다.
완벽한 아담을 추구하는 인간은 욕망에 폐배 하고 실패할 것을 족히 알고 있지만 멈출 수 없다.
욕망은 결핍으로부터, 결핍은 욕망으로부터.
결핍과 욕망은, 이렇듯 서로를 완벽하게 증명하고 있다. 이 도식에 숨어있는 모순을 들춰내 보려 해도
찾을 수 없다. 앞에 것이 맞다면 뒤에 것이 모순이어야 하고, 뒤에 것이 맞다면 앞에 것이
모순이어야 한다는 결론은 절박하다.
욕망이 결핍에서 온 것이라면, 결핍을 채우면 된다. 결핍이 욕망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욕망을 해소하면 된다. 그러나 이 관계는 끊어질 수 없는 띠로 연결되어 있다.
완벽한 아담을 추구하려는 욕망은 결핍된 자아로부터, 결핍된 자아는 완벽한 아담을 추구하려는 욕망으로부터 온다.
뿌리 깊은 완벽으로의 추구를 목적이라 부르고, 목적이라는 완벽한 거울이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한 후 자신이 본래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이었음을 기억해 낸다.
거울은 산산이 조각나고 태곳적 원죄를 기억해 낸 것만으로(본 것만으로) 아담은 결핍과 욕망의 연결된 고리를 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