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자리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 갓 사귄 오랜 시간 친하게 지낸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소식이 끊길만하면 만났고, 내가 제주도에 가서 8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다 다시 서울살이를 하게 되면서 자주 시간을 갖게 되었어요.
며칠 전 k와 h를 만났습니다. 늘 비슷한 고민을 하는 나와 k는, h에게 일방적인 잔소리를
듣습니다. 이러한 포지션은 세 명의 친구가 만나지 못한 공백 동안에 만들어진 모양입니다.
잔소리를 들어도 자연스러운 모양새가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좋거나 나쁘거나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친구라는 이름으로 만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친구는 a는 b와 같다는 등호로(=) 잘 설명이 됩니다.
언제 보아도 정직하고 편안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k와 나.
20대에 각자가 가진 기술로 먹고살고, 잘한다 칭찬을 듣고, 프라이드가 생기고, 그 일에 익숙해졌습니다.
한편, 기술과 감각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영글어, 흔히 말하듯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그 나이에 맞는
위치에 데려다 놓을 줄 어렴풋이 믿고 있었어요.
예상했던 결과와 다르거나, 전혀 다를 때 원인은 수백 가지를 찾을 수 있겠지요.
k와 나처럼 기술과 감각을 동시에 지녀야 하는 직업은 시절을 탈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 그렇지요.
수백 가지 이유로 k와 나는 정체구간에 끼어버렸습니다.
당장. 지금. 조만간에.
정체구간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 h조차 알 수없습니다.
이러한 정체구간은 운명적인 성격을 띠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노력이 때로 운명을 거스를 수 없을 때도 있으니까요.
k가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지만 나는 지독한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 쓰고, 그리기로 했어요.
바뀌는 세상에 흔들리지 않기로 합니다.
삶은 여행이라고 노래했던 가수의 시처럼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기로 다짐해요.
삶은 여행이라는 말속에 둥근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내가 떠나는 여행이 직선이 아닌, 둥글게 둥글게 돌아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것임을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