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받느냐 안 받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by 정영의

조선 사신단은 열하에서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는 미션을 클리어합니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황제의 스승인 반선(班禪)도 만납니다. 그에게서 구리불상과 서역 융단, 합달과 붉은 양탄자 그리고 서장 향과 계협편을 선물로 받습니다. 이렇게 받을 정도라면 빈손으로 가지는 않았을 텐데 드린 것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말이 날까 봐 슬쩍 빼먹은 느낌입니다.

구리불상은 키가 한 자인 휴대용 불상입니다. 중국에서 흔히 선물로 주고받는데, 먼길 떠나는 이에게 무사히 다녀오라고 비는 폐백이랍니다. 여행자는 불상에게 아침저녁으로 공양하고, 부적처럼 소중히 간직합니다. 하지만, 부처에 관련되면 평생 오명을 뒤집어쓰는 조선에서는 그냥 승려도 아닌 서번의 승려가 준 물건을 어쩌면 좋겠습니까? 천자의 스승이 준 걸 안 받으면 무례하다고 할 것이요 받자니 명분이 없습니다. 더구나 공자를 모시는 태학관 숙소에 불상이 웬 말입니까?


절에 버리자니 청나라가 분노할 것이요, 귀국할 때 가져가면 말썽이 될 것입니다. 그래도 보고(報告) 차원에서 가져옵니다. 당장 성균관 유생들이 권당(학생 시위)소동을 벌입니다. ’사악하고 더러운 물건을 가져와 국가에 치욕을 끼치고 후세의 비웃음을 받을 짓을 했다‘는 겁니다. 정조임금이 불상의 처분에 관해 묻자, 평안북도의 어느 절에 봉안했다"는 기록이 실록에 나옵니다. 이것이 그 구리불상인지 모르지요. 이게 발견되면 국보급 보물이니, 북한만 아니라면 당장 쫓아가 확인할 텐데요.


합달은 비단 폐백입니다. '폐백'이란 비단을 선물로 올리는 행위입니다. 원래 반선에게는 옥색 비단 한 필을 폐백으로 가져가야 합니다. 반선의 전신(前身)이 팔사파이고 팔사파의 어머니가 헝겊을 삼키고 팔사파를 낳았기 때문에 반선을 만나면 헝겊을 잡아야 한답니다. 황제도 예외가 아닙니다. 황제도 황족과 부마도 반선 앞에서는 비단 헝겊을 드리며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합니다. 비단은 조선 사신들이 바쳤지만, 청나라 입장에서는 공금 처리로 목록한 듯합니다.


제독이 조선 사신들을 반선 앞으로 인도하면 군기대신이 두 손으로 비단을 받들어 건네줍니다. 사신들은 비단을 넘겨받아 반선에게 드립니다. 반선은 앉은 채로 비단을 받아 무릎에 둡니다. 그 비단은 다시 공손히 받들어 놓습니다. 마지막으로 제독이, 남은 비단 조각을 반선에게 바칩니다. 비단을 바치는 동시에 머리를 땅에 대고 조아려 절하는 고두례(叩頭禮)가 뒤따릅니다. 사신들은 머리를 꼿꼿이 한 채 절을 안 했답니다. 하지만 예전에 절을 못한다고 버티던 조선사신이 두들겨 맞고 강제로 무릎 꿇린 적이 있느니만큼 절을 안 하고 배겼을지는 모를 일입니다.


서역 융단은 벼슬의 높낮이에 따라 각각 18장, 14장 그리고 10장을 받았습니다. 붉은 양탄자는 각각 2필, 1필, 2필을 받았습니다. 융단이나 양탄자나 비슷합니다. 둘 다 표면에 보풀이 일게 양털로 짠 두꺼운 모직물인데 마루에 깔거나 벽에 겁니다. 개수로 보아 붉은 양탄자는 방바닥에 까는, 널찍하니 크고 무거우며 서역 융단은 벽걸이 액자처럼 좀 더 작고 가벼운 것이겠네요. 서장 향은 피우는 향입니다. 벼슬의 높낮이에 따라 각각 다르게 받습니다. 향은 제사 의식에 요긴한 물건이지요. 마지막으로 계협편은 정사만 한 부대를 받습니다.


여기에는 ’일종의 메모지‘라는 주가 붙었습니다. 서류나 문건에 따로 적바림하여 붙인 쪽지가 협편(夾片)인데, 이 협편은 ‘정사각형’ 또는 ‘사각형’이라는 뜻의 우즈베키스탄어인 까탁(katak)이라고도 하고 ‘목에 둘러 축복해주는 까탁’이라고도 합니다. 메모지라면 가장 먼저 포스트잇이 떠오르는데, 종이류라면 연암이 뭔지 모르겠다고 주를 달았겠나 싶어 의혹을 풀 길이 없네요.


사신들은 불상은 물론 반선의 어떤 물건인들 지니고 싶지 않아 죄다 역관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역관들도 이를 더럽게 여기고 팔아치워 은자 90냥이 생겼어요. 그 은자조차도 마두(馬頭)들에게 줘버리니, 마두들조차 그 돈으로는 술 한 잔도 안 마셨답니다. 깔끔을 떨어도 여간 떨지 않네요. 연암의 말에 따르면, 결백하기는 하지만 따져 본다면 (외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물정이 어두운 촌티(결례)를 면하지 못할 일입니다. 남 얘기가 아니네요. 나부터라도 우물 안 개구리 티를 좀 벗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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