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영의 Jul 19. 2024

20. 홍시 전쟁

 우리 교회 목사님의 이야기다. 설교하다 말고 문득 홍시 이만 개 조공 이야기를 언급하신다. 듣는 순간, 홍시 이야기를 보기는 봤다마는 뭔 이야기에 나왔는지는 생각이 안 난다. 목사님도 참 신기하시지, 열하일기의 그 하 많은 이야기 중에서 홍시 하나를 또렷이 기억하시다니. 결국 궁금한 건 못 참는 나는 홍시를 찾아 첫 페이지부터 훑어 내려갔다. 마음 한켠에서는 자기 철학이 분명하게 서 있다면 홍시 같은 하찮은 소재에 주목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라고 켕기는 심정이 없지 않았지만 그냥 눈에 들어온 소소한 소재를 이참저참 찾아다녔다. 그런데, 중국에도 홍시가 없지 않다. 중국, 조선, 일본에는 이전부터 홍시가 다 있었다.  

   

  8월 19일에 조선사신단은 건륭제의 만수절 행사를 마치고 연경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 남석교에서 점심을 먹으며 비로소 중국산 홍시를 맛본다. 네 골이 졌는데다 또 턱이 생긴 것이 우리나라의 반시(盤柹)와 비슷하나, 다만 달고 연하고 물이 많다. 계주(薊州)의 반산(盤山)에서 나는, 그곳 울창한 숲이 모두 과일나무라 한다. 저절로 으~ㅁ, 중국산 홍시는 우리나라 것보다 못 생구나, 생각이 든다. 그리고 홍시와 함께 떠오르는 기억. 아마도  서유기다. 감나무 무성한 숲열매를 거두는 자가 없다. 감은 뚝뚝 떨어져 깨지고 해마다 쌓여 홍시 늪을 이룬다. 물론 손오공이 조치를 취해 홍시 늪을 해결하고 일행을 구출한다.     


  이야기에서는 손오공이 해결했다지만 그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도 무척 애를 먹었다던데 조선도 한참 홍시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 그리고 여진의 발상지 만주에서는 감이 나지 않는다. 조선의 달디단 홍시를 한번 맛보고는 황제가 그 맛에 푹 빠진다. 홍시(紅柹)란 감나무에 열리는 붉은 열매다. 홍시를 먹다가 이가 빠지기도 하고(속담)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홍시 떨어지기를 기다리기(속담)도 할 만큼  먹음직한  과일이다.

조선인 6백여 명의 목숨값이 넉넉히 되기도 했다(인조 6년) 아예 청 사신이 홍시와 배를 사려고 은 85냥을 가져온다. 은자(銀子) 9백여 냥으로 배 3만 개와  2만 개황제가 사오라고 했으니(인조 12년) 지난번에는 약소하여 이번에는 수를 맞춘다. 심지어는 해마다 홍시 3만 개를 요구한다(인조 13년)      


  연암은, 정해진 진상품 외에 별도로 홍시 30바리를 바쳤건만 다시 2만 개를 더 바치라던 요구를(인조 15년) 떠올린다. 여기서 바리란 바리바라 싸 간다고 할 때의 그 바리다. 말 한 마리가 양껏 운반할 수 있는 무게가 한 바리다. 다른 거 다 빼고 홍시 하나만으로도 말 30마리가 추가로 동원되어야 한다. 그리고 운반은 청나라 사람들이 하게 되어 있다. 말 30마리에다가 더 보내라는 홍시 2만 개를 얹으려면 얼마나 더 많은 말이 동원되어야 할까? 연암이나 되니까, 이번에 가져온 조공물품에 비해 중국 측 경비 10여만 냥이 오히려 민폐임을 인정한다.     


  인조 17년에는 홍시 20태를 요구받는다. 어쩔 수 없이 달라는 대로 보내야 한다. 여기의 단위 駄(실을 태)는 馬(말마)와 太(클태)가 합친 것이다. 말 한 마리에 몽땅 실을 만큼의 무게를 의미한다. 앞에서는 바리, 여기에서는 태를 썼다.해마다 3만 개를 보내는 걸 상상하니 마치 수십 냥을 달고 달리는 화물열차 를 보는 듯하다. 인조 20년에는 홍시 2천 개와 곶감 20을 보내야 한다. 貼(붙일 첩)은 貝(조개패)와 점→첩(占)이 합쳐 이룬 글자다. 곶감 100개가 한 첩이니 홍시 이천 개와 곶감 이천 개다. 인조 21년에도 홍시를 보내는데, 그놈의 지긋지긋한 홍시 타령은 건륭제 때에 극성을 부리고 또 그 황제가 최장수 재위기간을 기록한 나머지 효종 때도 이어지다가 뜸해진다. 건륭제가 최애 간식인 홍시를 하도 먹다가 물렸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나라들에서 홍시를 바쳐 조선의 부담이 줄어든 것일까?      

 

  치명적인 매력으로 천하의 주인인 황제 건륭제를 매혹했던 이 과일은 오늘날 우리 교회 목사님도 매혹하여 이만 개의 조공으로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단풍이 불타오를 때쯤 우리 고장의 명소인 백양사 인근 점포들 깎은 감을 노끈에 꿰어 줄줄이 발로 걸어놓는 풍경을 연출다. 애기 주먹 만한 진홍빛 열매가 마지막 남국의 햇살을 받아 안으로만 안으로만 단맛이 밀려들어 절정에 이를 때면 베란다에는 풋감이 진을 친다. 추위에 조금씩 물드는 감을 아침마다 슬쩍 눌러보며 안달하다가 이윽고 선홍빛으로 무르익으면 준비가 됐다. One big bite! 역시 이 맛이야. 조선 홍시가 최고야. 건륭제 말고 나라도 병자호란을 일으켰겠다. 임진왜란이 도자기 전쟁이라면 병자호란은 홍시 전쟁이라더니. 아무려면 국가의 운명 홍시 같은 하찮 소재 우했으리요마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