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기억 한 점
심하게 아팠다.
사실 올 겨울내내 피로감과 가벼운 근육통을 느끼며 일상생활을 겨우 이어오고 있었는데 그 마무리가 강력했다. 설 연휴가 끝나고 사흘을 꼼짝하지 않고 침대와 식탁을 오갔더니, 살짜기 일어나 내 인생을 도모하고 싶어졌다. 어떤 방식으로든.
도서관에서 빌려온 성해나의 <두고 온 여름>을 펼쳤다.
이렇게 술술 읽히며 마음을 무심하게 툭 건드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쓸 수 있는 것일까, 한참을 곱씹어본다.
글 속에 등장하는 다른 사람의 무안함과 어색함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느낌이 든다.
내 상황이라면 어쩔 줄 모를 당혹감에 숨기고 싶은 마음이겠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타인의 내면을 코끝이 찡해지는 아련함으로 바라보게 된다.
얼마나 세심해야 이걸 다 담아낼 수 있을까, 또 다시 읽어본다.
내가 느끼는 위로라는 건 이런 거다.
누구나 아프고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재하의 아버지라는 악당 한 사람으로 인해 무참하게 훼손되는 주변 인물들의 여린 감정이 보인다.
허술하고 불완전하고 다 잃은 것 같은 사람도 소중한 여름 기억 한 점이 가슴 깊히 남아있다면 살아가는 용기가 된다.
지나온 시간과 그 과거의 해묵은 감정을 반추해보면서 느껴지는 안정감은 조금은 단단해진 내면과 함께 이해가 선명해지는 기분이다. 나에게도 그 정도의 따뜻한 기억은 있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드는 거다.
너에게도 한 조각은 있을거야, 하고 말을 걸어 온다.
사진으로 남기는 추억 한장이 마음 한켠에 여유를 가져다 주는 것 처럼, 나에게도 고마운 따뜻한 기억은 있다.
햇살 좋은 날 아버지가 우리의 기억에 담고 싶어 찍어준 그 사진들의 마음이 이제서야 짐작이 간다.
그 무뚝뚝하다고만 기억하던 아버지도 참 애틋하던 사람이었구나.
읽는 내내 나는 재하 쪽일까? 기하 쪽에 더 가까울까? 생각해보지만 나는 기하인 것 같다.
우위에 있다고 느끼고 싶어 행동하지만 그만큼 박탈감을 심하게 느끼는 사람.
스스로 잘 지내는 척 불편한 사람을 찾아가 돕는 듯 행동하고, 이 정도의 여유는 된다고 믿고 싶어하지만 가난한 마음의 바닥이 쉽게 드러나 한없이 초라한 사람.
기하도 가식의 껍질을 벗고, 동정하려던 마음을 내려놓고 회복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비로소 햇빛이 길어지고 바람이 보드라워지는 계절이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