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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seniya Jul 27. 2020

어차피 갈 거면 고행처럼 가지 말고 여행처럼 가보자

5. 휴스턴을 지나  재즈의 도시 뉴올리언스로 가다.

잔잔한 강바람과 함께 좀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아름다운 도시였던  안토니오에서 하루를 더 머물고 싶었지만 남편은 차라리 이 곳에서 다지 멀지 않은 휴스턴으로 가서 아이들에게 바다를 보여주자고 했다. 생각해보니 바다가 신물 나게 여기저기 사방에 널려 있는 캘리포니아에서만 살던 아이들이 줄곧  사막바람만  콧등이  시커머질 정도로 쐬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싶어 말없이 동의하고 곧바로 짐을 싸서 모텔을 나섰다.

텍사스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 휴스턴

3시간을 달려 늦은 밤에 휴스턴에 도착해 캄캄한 밤에 모텔을 찾아 들어가야 했다. 네비를 따라 모텔을 찾아 들어가는 길은 늦은 밤에 인적 드문 으슥한 곳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캄캄하고 인적이 드문 낯선 곳에서의 공포감은 등골이 오싹하게 겁이 났다.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 우리 앞을 가로막을 것 생각이 들자 마음은 더 초조해졌다. 원체 미국이란 나라는 대도시의 다운타운들이  밤이 되면  무법천지로 변하는 곳이 많아서 되도록이면 늦은 밤 운전을 하려고 하지 않는데 오늘은 어째 일이 꼬였다.

성질 급한 나의 재촉에 남편도 성질을 낸다.

급하면 돌아가라 했는데 정말로 돌아간 격이 되어버렸다. 가까운 곳에 목적지를 두고 한참을 돌아간 것을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모텔에 들어와 겨우 안도감을 느꼈다. 이상하게 이 대도시가 겁이 났다. 운전 중에 경을 곤두세운 남편과 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늦은 저녁을 준비했다. 아이들은 이미 지쳐 쓰러져 깨워도 일어나질 않았다. 어색한 부부의 침묵만 남았다.

다음날 아침 휴스턴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갈배스톤 섬을 가기 위해서 서둘러 모텔을  나섰다.

그런데...........

갈배스톤을 가는 길이 움직이질 않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이 주말 아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갈배스톤 섬은 휴스턴 시민들이 주말 휴식처로 이 섬을 주로 이용한다고 했다. 휴스턴 사는 사람들이 전부  다 나왔나 보다. 다려도 길은 뚫릴  생각도 안 했지만  끝없이 달려 처음으로 바닷바람을 쐬며 내가 좋아하는 해산물을 먹을 생각에 기다림을 지속했다.

남편은 그 지루한 기다림 속에서 내의 한계를 보였지만 나는 아쉬움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줄이 들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드디어 남편은 차를 돌리기 시작했다. 길이 막힐 때는  솔직히 차를 빼내서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것도 쉽지 않다. 가까스로 차를 돌려 다음 목적지인 뉴올리언스로 향했다.

나의 아쉬움은 가는 내내 침묵으로 대신했다.


남부의 중심 뉴올리언스로 들어서다.

휴스턴에서  6시간 정도 걸려 들어선 올리언스들어서는 순간 침묵이 흥분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까지 지나온 여정이 주로 볼거리에 치중한 자연환경에 여행이었다면 지금부터는 남부 도시의 매혹적인 문화 예술이 복합되어 먹거리까지 충족시켜주는 매혹적인 여행이 같았기 때문이다. 역시 도시는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어놓고  뉴올리언스의 모든 것이 다 모여있는 프랜치 쿼터가 있는 구시가지로 향한다.

프렌치 쿼터라는 이름이 말해 주듯이 이 도시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식민지 시대의 도시였다. 그러나 이름과는 달리 오히려  도시 곳곳의 색채는 프랑스풍이라기보단  스폐인풍 색채가 많이 묻어났다.  도시 전체가 불에 타 건물을 다시 짓기 시작하면서 도심에서 살고 있던 스페인 사람들이 건물을 짓기 시작했기 때문이란다.  주말이라 그런지  차들이 빼곡히 주차되어 있어  같은 골목을 몇 바퀴 돌아서야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할 수 있었다. 도시는 치 과거로 돌아온 거처럼   분위기 있고 낭만적이었다. 그러나 그 낭만적인 도시 이면에는 도시의 인구 과반수가 넘는 1800년대 노예시대에 끌려 온 아프리카 흑인들의 정착지인만큼, 그 노예들의 후손들이 이 곳에 정착하며 살면서 그들의 삶의 애환을 남부 특유의 끈적끈적한 날씨에 비견될만한   상업적인 음악 장르의 하나인 재즈로 탄생시킨 도시이기도 하다.  재즈를 대중적인  하나의 장르로 정착시키는데 크게 기인한 루이 암스트롱의 고향이기도  했다. 지금 귓가에 그의 노래 what a wonderful  world 가 들리는듯했다.

재즈와 함께  남부 문화의 또 하나의 특징인  뉴올리언스식 음식을 빼놓을 수가 을 것 같다.

바로 검보와 잠발라야다.

지난 시절 여러 나라를 떠돌던 덕에 각 나라의  음식들에 일가견이 있는 나는 그 나라 특유의 음식들을 흉내 수 있는 정도의 력을 가졌지만 나라마다 그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내 입맛에는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아서 주로 한식고집하는 내 까탈스러운 입맛 때문에 여행을 할 때 항상 음식의 한계를 느끼곤 했다.

그런데 예전에 캘리포니아 식당에서 먹었던 잠발라야 파스타는 내 맛에 잘 았던 기억이 있어 해산물이 들어간 남부 음식 검보에 대해 내심 기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검색 결과 검보샵이라는 유명한 식당을 찾아 나섰다.

아직 때 이른 저녁이라 유명한 식당 치고는 줄을 서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었다. 그러나 밖한가한 모습과는 달리 넓은 식당 안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내심 음식 맛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뉴올리언스의 대표적인 음식문화에두 가지 양식있는데 케이준 양식과 크레올 양식이다.

그중에 우리가 들어온 이 식당은 크레올 양식의 음식들이  서빙되는 곳이다.

크레올 양식은 역사적으로 복합적인 문화에 기인된 음식 방식인데 프랑스인과 흑인 노예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들을 부르는 호칭이었는데 이 복합적인 문화가 음식에서도 적용되어 크레올 양식이  탄생된 것이다. 즉 유럽과 아프리카 문화가 복합된 새로운 음식문화 형태인 것이다.

음식이 나오자마자 큰 아들은 연신 맛있다며 하나기지 않고 꾸역꾸역 도 먹었다. 절대미각의 소유자답게 다양한 음식을 참 잘도 소화시킨다.

음식 앞에서는 사춘기도 맥을 못 추는 신기한 요술이다.

내 입맛에도 잘 맞았고 곁들여 시킨 피냐 콜라다 역시 달달한 치기를 올려주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잠시 접어두고 자금 이 순간의 감정에 충실해야겠다. 적당한 취기는 적당한 행복감을 가져다주었다. 모처럼 내 정신도 무장해제되는 느낌이었다.

저녁을 마치고 검보샵을 나와  여기저기 골목을 둘러보기로 했다. 사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하며 도시는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밤의 문화를 준비했다.

미국 생활에서 밤의 문화는 한국 사람들의 밤의 문화와는 사뭇 다르다. 낮이나 밤이나 화려하기에 별 차이가 없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맘 놓고 밤에 다니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기 문에 특별한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밤은 조용한 편이다.

다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골목을 보니 분위기가 화려하다. 스토리빌이란 거린데 남편이 이 곳이 예전에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암묵적으로 합법화된 홍등가였다고 한다. 이 거리를 중심으로 그 유명한 재즈가 탄생 한 곳이기도 해서 지금도 이 거리에 많은 거리 재즈 공연이 이어지기도 한단다.

오랜 운전과 오랜만의 여유 있는 식사의 포만감으로 빨리 숙소로 들어가 쉬고 싶었다. 조금만 더 젊었다면 밤문화를 만끽했겠지만 몸이 말을 안 듣는다.

다음날 아침  일찍 뉴올리언스의 중심인 프렌치 쿼터를 돌아보기 위해 서둘러 짐을 쌌다.

뉴올리언스는 프렌치 쿼터를 중심으로 많은 관광명소가 이루어져 있다. 마차를 타고 시내 주변을 돌 수 있도록 군데군데 마차도 있었지만 걸어도 그리 힘들지 않게 구석구석 돌아다닐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여러 블로그마다 빠지지 않고 기록하고 있는 유명한 도넛 집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카페 드 몽드라는  이 곳은 쫀득쫀득한 네모난 도넛에 슈가파우더를 듬뿍 뿌린 베네라는 도넛의 원조 가게다. 여기서 나오는 카페 드 몽드라는 커피는 시중에서도 판매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프렌치 마켓  옆에 크게 자리하고 있는 이 레스토랑은 이미 레스토랑 밖에까지 연장된 노천식의 테이블까지도 꽉 차서 른 시간임에도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솔직히 줄을 서야 할 정도로 맛이 흡족하지는 않았지만 유명세도 있는 거 같았다.

음식은 아무런 격식 없이 한 시에 도넛 몇 개가 전부다.

베네와  같이  마시는 카페 오레도 유명하다는데 내 입맛엔  두 가지 다 그저 그랬다. 차라리 시장통에서 파는 설탕 묻힌 꽈배기와 믹스커피의 맛이 훨씬 우월하다고나 할까..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그래도 이들은 얼굴에 설탕가루 혀가며 잘도 먹는다.

도넛 가게를 나와 그 옆에 꼭 둘러보라는 프렌치 마켓을 가 보니 오래됐다는 거 말고는  그렇게 사고 싶은 것도 없어 서둘러 나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세인트 루이스 성당을 둘러보기로 하고 잭슨 스퀘어 쪽으로 걸어갔다. 개인적으로 천주교 신자 이기도해서 가는 곳마다 성당은 꼭 들리는 편이라 이번에도 역시 발길이 저절로 그리로 간다. 성당은 그리 크지 않았고 오래된 성당이지만 정갈한 분위기였다. 성당 앞에  잭슨 광장 쪽에 거리의 화가들이 자신의 그림이나 지나가는 관광객의 초상화를 그려주기 위해  나란히 앉아있었다.

짐 하나 더 보태기 싫어 그때 그림을 하나 사 오지 못한 게 아직도 아쉬운 일이긴 하다.

역사적인 구시가지인 프렌치 쿼터와  쇼핑센터나 초현대식 딩들이 들어서 있는 지역을 구분하는 대로인 카날 스트리트에는 버스가 아닌 빨간 전차가 다니고 있었다.

거리의 빨간 전차를 보니 내가 좋아하는 두 명배우 비비언 리와 마론 브란도가  출연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라는 유명한 영화의  배경이  도시라는 생각이 났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1950년대 이전에 실제로 운행되었다고 한다.

젊은 날에 너무나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비비언 리의 늙음이 온몸에 반항기를 가득 담은 젊은  브란도의 아름다움과 대비돼서 슬펐던 영화였다.  옛 영화의 향수가 느껴지는 너무나 매혹적이었던 뉴 올리언즈

이번 여행이 순수하게 여행의 목적이 아니라 살짝 반쪽짜리 여행을 하고는 있지만 뉴 올리언즈는 다시 한번 와야 제대로 보고 느낄 것 같았다.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이 도시를 제대로 방문하고 싶을 정도로 도시는 매혹적이었다. 그 아쉬움과 다시 올 기대감을 가지고 자유로운 이 도시를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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