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바람은 나에게로 불어주었다.

거평 플라자 14층 조그마한 창고에서 시작된 화려한 비상

by kseniya

KSENIYA CO.

나의 러시아 이름으로회사다. 러시아에서 공부하던 시절 나의 생일에 맞춰 교수님이 직접 만들어 준 나의 또 다른 소중한 이름.. 지금까지도 나는 이 이름을 사용한다.

내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나의 두 번째 이름이다.

이제 나는 한 회사를 책임지고 이끌어 가는 사람이 됐다.

나를 필두로 해서 나의 사람들이 모여 나의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까지는 절반의 책임을 나누어지고 살아왔다면, 이제는 온전히 나의 능력 하에 모든 것이 좌지우지될 것이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뒤돌아 볼 시간이 없었다.



회사를 움직이는 사람들과 우리 집 식구가 모두 모여 개업 떡을 돌리고 있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 밥을 먹으려던 순간, 세 명의 러시아 남자들이 찾아왔다. 이상했다...

오늘부터 개업식을 하느라 우리는 회사에 대한 그 어떤 홍보도 시작하지 않았다. 며칠간 발 빠르게 준비해서 급하게 얻은 사무실이라 조금은 외진 거평 플라자 14층의 창고로 쓰고 있던 한 곳을 계약하고 준비를 해 왔던 것이다.

내가 이 곳에 사무실을 열은 것을 알만한 사람들이 아직 없을 텐데....


일단 나를 찾아온 손님을 어수선한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이제까지의 상인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이 사람들은 아에로 플로트, 즉 러시아 항공의 기장과 그 승무원들이었다. 그중 나머지 한 사람은 러시아 항공에 원료를 공급해 주는 회사 오너의 아들이었다. 여담이지만, 그는 후에 모스크바 출장 때 내가 팔은 차를 몰고 마중을 나와 주었고, 모스크바 시내의 지하철을 타고 붉은 광장 옆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방문하게 되기도 했다.


개업식에 축하해 주러 왔던 가족들과 오빠의 친구들은 밥을 먹다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밖으로 내쫓아졌고, 나 또한 밥을 먹다 말고 첫 오더를 받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날 개업을 축하해 주러 온 손님들 역시 이 광경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들은 크세니아를 찾아왔다고 했다. 차를 사기 위해서....

어찌 알고 이 곳에 왔냐고 물었다. 우리는 오늘 사무실을 열고 내일부터 정식으로 일을 하려고 하는데, 이 곳을 아는 사람이 아직까지는 없을 텐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고 하니, 건너편 내가 일하던 카라반 밑에 있는 규모가 아주 큰 회사의 러시아 직원이 이 곳을 알려주었다고 했다. 알고 보니 이미 사샤가 자신들의 동료들에게 회사를 연다는 걸 알린 거였다. 사샤가 명함을 들고 미리 자기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아무튼 밥 먹다 말고 오더를 받는 진풍경을 만들어졌다. 가슴속이 벅차올랐다. 먹다만 음식들이 배속에서 꾹꾹 눌려지는 느낌이었다.

왠지 이 모습이 엄청난 출발을 가져다 줄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들은 중고차와 새 차를 섞어서 사기를 원했고, 그 결과 나의 첫 오다로 인해 회사에 적지 않은 수입을 안겨주었다. 그 이후로도 계속 그들은 나의 단골손님이 되어주었다.


그 당시 러시아 사업은 누구라도 뛰어들 수 있도록 모든 것이 열려 있던 사회였다. 한국이나 러시아 양쪽 모두에게....

이렇듯 러시아 기장들까지도 가세해서 차를 사 가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30프로라는 세금 감면 혜택이 있었던 것이다.

달러가 올라가는 메리트를 감안하고라도 엄청나게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 사람들을 필두로 서서히 나의 사업장은 줄줄이 러시아 항공 직원들이 연결되는 계기가 되었다. 본격적인 비즈니스를 열어가게 하던 첫출발을 이들이 만들어 준 것이었다.

정말 마술 같은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그 후로도 마술 같은 일들은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거평 플라자 14층에 관계자 외엔 오는 사람이 별로 없던 공간에 러시아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들기 시작하면서 우리들의 공간은 쉴 새 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 무렵 동대문 일대에 차동차로 업종을 바꾸는 무역회사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기 시작했다. 치열한 가격경쟁이 시작되었지만 나는 절대 두렵거나 불안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불안할 시간이 없었다. 쉴 새 없이 밀려오는 러시아 바이어들은 자신들의 생명인 달러를 거침없이 풀었고, 우리는 그에 필요한 모든 업무로 각자의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가고 있었다.

나는 오너라기보다는 여동생이었고, 누나였고, 동료였다.

어느 누구라도 할 것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역할을 최상의 능력으로 끌어내고 있었다.

나의 사무실에 들른 사람들은 그 분위기 만으로도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성행하던 더러운 접대 방식의 판도를 나는 바꾸어 놓았다.

비지니스를 하다 보면 술이 따르고 밤의 유흥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거상들의 대량의 주문이 걸러있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여자로서 불리할 수 있는 접대 방식을 바꾸기 위해 정면돌파를 했다. 이미 나를 아는 바이어들은 내 성격을 알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식사를 대접하고 술은 사무실에 사다 놓고 그들은 수다를 떨면 나는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일을 해 나갔다.

그들에겐 접대보다 산뢰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내가 일하는 모습은 바로 그들에게는 믿음이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사무실을 열면 직원인지 오너인지 모르게 항상 일을 하고 있는 모습과 오너가 직접 오더를 받고 그들과 의견을 나누는 모습은 그들에게도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시장에서 오너란 통역에게 오더를 맡기고 접대가 필요할 때만 밤에 나타나는 모습과는 정말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나는 바이어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내가 너희들과 어울리는 사간이 길어지면 너희들의 차는 그만큼 늦게 도착을 할 것인데 , 하루하도 빨리 받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겠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그 말을 이해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 일대의 난잡한 접대 방식에서 벗어나 내 방식으로 그들과의 유대를 지켜나갔다.

차의 대금과 운송비를 100% 선금으로 지급하고, 모스크바의 경우 배로 운송을 할 경우 핀란드를 거쳐 그 차를 받으려면 45일의 시간이 걸렸던 그 당시 상황으로 봐서는 우리 쪽에서 사업의 패를 쥐고 사업을 할 수 있는데 아주 유리하게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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