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일대에 나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인 나의 경쟁자에게도, 러시아 바이어들 사이에서도 역시 나의 이름은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나와 거래를 하던 친구들은 자신들의 동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해 주었고, 그들은 그렇게 해서 나의 바이어가 되기도 했다. 나의 사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사업을 시작할 때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운영비와 직원들 월급이 나오지 않을까 봐 노심초사했던 기우는 말 그대로 더 이상의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자리를 단단히 잡아 나가기 시작했다.
쉴틈도 없이 바쁜 나날 속에서도 내가 직접 하는 일이 두 가지가 있었다.
서류가 오타가 나지 않도록 최종 점검은 나의 손을 거쳐야 했고, 서류에 이상이 발견되면 평상시와 다르게 나는 불같이 화를 냈다. 그리고 차가 부산항에서 통관이 되는 경우 나는 직접 부산에 가서 그 차가 컨테이너에 안전하게 들어가 있는 모습까지 확인을 하고 그 날 바로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과정을 이어오고 있었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야 안심을 할 수 있었고, 바이어가 원하면 그들과 함께 부산을 동행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의 일신상의 주변은 실수가 많은 헛점투성이었지만, 상대방의 돈이 개입되는 경우에는 까칠하다 못해 엄청 철저하게 행동했다.
일을 하다가 잠이 부족하면, 종원이나 사샤는 우리 위층에서 운영하는 찜질방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에 일어나 다시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하루였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하나도 불평하는 일이 없었다.
수많은 바이어 중에 러시아 여자가 나의 사무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눈빛이 다른 사람과 달리 불안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차 가격을 물어봤다. 잠시 머뭇머뭇거리더니 저쪽 회사에서는 너의 회사 가격보다 이백 불이 더 싸다고 내게 너도 그렇게 해 줄 있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그 차 가격을 이백 불이나 싸게 해 주면 솔직히 남는 게 없는 장사였다. 그 당시 경쟁은 돈 백 불에도 차 가격을 내리쳐서 사실상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이상한 가격이 나온 것이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그 가격에 줄 수 없다고 말이다.
나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지 적선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그쪽에서 그 가격을 제시했다면 너에게는 엄청난 이득이니 그 회사에 가서 얼른 차를 사라고 말해 주었다.
그다음 날 그녀가 다시 나의 사무실을 찾았다.
사실은 어제 온 이유는 가격을 알아보러 온 것이었단다.
카라반에서 크세니아네서 제시한 가격에서 이백 불을 더 깎아 주겠다고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곳에서 사지 않고 다시 나에게 왔냐고 물어보니 그녀는 나의 말을 듣고 그 회사가 믿음이 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결국 이백 불을 더 주고 나에게서 차를 사 가게 되었다.
부산을 다녀오고 난 그다음 날 카라반은 난리가 났다고 했다.
내가 그렇게 일사천리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데리고 실행에 옮길 줄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사실 러시아어만 조금 할 줄 아는 여자애와 아무것도 모르는 김전무의 동서만 덩그러니 남아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나에게 당했다고 생각을 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더러운 방식으로 등에 칼을 꽂은 인간들이 꼭자신들이 가한 것처럼 당하는 것은 못 참는 법이었다.
내가 그렇게 세게 나올 줄 몰랐던 것이다. 힘없는 여자가 그렇게 대차게 행동을 하리라고는 그들은 생각도 못하고 당한 것이었다.
나는 또 한 번 밤길을 조심해야 했다. 길에 나가 있던 사샤에게 김전무 동서는 내가 보이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사샤가 달려와 내게 전했지만, 나는 그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다.
지척에 그 사무실이 있었지만 나는 그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내 할 일만 하고 있었다.
나에게서 그 어떤 반응도 나오지 않자, 그들은 가격으로 나를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내가 나가고 난 후 그들은 거금 이천만 원을 들여 사무실을 꾸미고 야심 차게 사무실을 정비하였다고 했다.
나도 나지만 김 과장과 이 소장이 떠난 자리가 쉽지가 않았을 것이다. 김 과장 같은 상주직원이 없으면 솔직히 나도 이 사업을 이어나가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그는 유능한 사람이었다. 또한 그가 다니고 있던 현대자동차의 이태원 지점은 전국에서 거의 탑을 달리던 지점이었고, 그 지점에서 탁월한 세일즈 실력으로 탑을 달렸던 이소장은 그 댓가로 자신의 딜러점인 한남동 지점 영업소를 운영하던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의 자리로 인해 승패가 갈라지기도 했다. 자신의 실적과도 연결되어 있던 김과장은 마치 자신의 일인양 밤을 새면서 거의 동고동락을 했는데 서로에게 윈윈이었다.
그들은 서울의 판도를 너무나 몰랐다. 부산과 같은 방식으로 해 나가면 쉽게 돈이 벌릴 거라고 생각을 했었나 보다. 그러기엔 러시아 사람들도 만만치 않게 의리가 강했다. 나의 바이어들은 장사꾼이기도 했지만 나의 친구들이기도 했다. 김전무는 그것을 간과했던 것이다.
내가 카라반을 떠나자 나의 바이어들은 그곳이 아닌 나를 따라와 주었다.
의리는 나에게도 있었지만 러시아 친구들에게도 있었다.
나의 회사가 승승장구하자 김전무는 나를 질투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자신의 판단 미스에 대한 분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검은 세력을 이용하여 나를 무너뜨리려 했지만 나는 그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의 방식대로 나의 길을 묵묵히 갔을 뿐이었다.
신은 내편이었다.
사샤가 뛰어들어왔다. 숨을 가쁘게 내쉬고 나에게 말을 전한다.
카라반이 문을 닫았다고..... 망한 것이다. 온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이렇게 빨리 무너질지 몰랐다. 그 능구렁이 같은 고단수가....
부산 남자가 서울 여자에게 진 것이었다.
서울에서의 사업을 철수하고 돈을 들여 꾸몄던 회사는 문을 닫은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그 거리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나의 야심 찬 희망이 들어 있던 곳.. 그곳은 문이 닫힌 채 다른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믿기지 않은 일들이 내게 일어났다. 나를 무너뜨리겠다고 하는 순간부터 나는 밖을 나가지 않았다. 새벽에 사무실에 나와 새벽에 집을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나는 혼자서 움직이지 않았고, 사샤나 종원이가 항상 나를 데려다주곤 했었다.
부산에서의 그 모멸감을 안고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나는 복수하고 싶었지만, 사실 복수라는 게 영화에서처럼 쉬운 것이 아니지 않은가? 상대방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나도 같이 망가져야 하는 것이 복수다. 복수는 나의 영역이 아니었다. 신의 도움이 필요한 운명적인 영역이었다.
차라리 잊고 나의 일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나은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다행히도 그때의 운명은 분명 내 편이었다. 신의 도움과 함께 시간과 나의 인내심이 나를 대신하여 복수를 해 준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 날 판 차의 대수에 맞게 임시 자동차 등록판 다섯 장을 챙겼다.
나무로 된 임시등록판은 새 차를 팔고 나서 수출을 할 때 수출면장과 함께 제출해야 하는 품목 중 하나였다.